경찰은 석 씨 모녀가 사실상 절연한 사이라고 했지만 실제 각별한 관계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애초 경찰은 ‘구미 3세 여아 사건’을 단순히 재혼한 엄마 김 아무개 씨가 아이를 빈 집에 홀로 방치해 사망한 사건으로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의문은 어떻게 같은 빌라 아래층에 사는 석 씨 부부가 손녀(실제 친딸)의 사망 사실을 6개월 동안 몰랐느냐였다. 경찰은 ‘김 씨가 10대 후반 가출해 동거하면서 부모와 사실상 인연을 끊은 사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아니었다. 가족 사이에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 여러 사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 사망한 3세 여아의 친모가 석 씨로 밝혀지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게다가 이후 석 씨와 김 씨가 인연을 끊은 사이가 아닌 매우 각별한 모녀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 씨가 출산 직후 석 씨 집에서 지내며 산후조리를 했으며 수개월 동안을 김 씨와 딸이 석 씨 집에서 지냈을 정도다.
#내연남 vs 연락처 속 남자
석 씨가 친모로 드러나면서 경찰은 친부 찾기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내연남으로 추정되는 남성을 상대로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빠르게 친부가 밝혀질 것처럼 보였지만 내연남으로 추정된 이는 친부가 아니었고 경찰은 바로 또 다른 남성을 상대로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심지어 택배기사까지 포함해 3년 동안 연락을 주고받은 남성 100여 명을 상대로 광범위한 유전자 검사를 벌였지만 결국 친부를 찾지 못했다.
석 씨 가족은 입장문을 통해 내연남이 아닌 휴대전화 연락처에 저장돼 있는 남성을 상대로 경찰이 DNA 검사를 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아니었다’ ‘석 씨 내연남을 상대로 유전자 검사를 했다’ 등의 얘기로 석 씨 가족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팽배하자 그제야 경찰은 “석 씨는 제조업 회사에 근무하는 평범한 한국인 회사원으로, 남편 역시 회사원”이라고 밝혔다.
#셀프출산 검색 vs 회사에 개인 PC 없다
석 씨가 숨진 3세 여아를 출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2018년 초를 전후해 자신의 휴대전화 등으로 ‘출산 준비’ ‘셀프 출산’ 등을 다수 검색했으며 그 즈음 평소 입던 것보다 큰 치수의 옷을 입고 다녔다는 증거를 경찰이 확보했다고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씩 경찰의 말이 달라진다. 경찰은 “개인용 컴퓨터(PC)에서 검색했다. 3년 전 휴대전화는 확보하지 못했다”고 하더니 며칠 뒤에는 다시 “자신이 일하고 있던 회사 컴퓨터에서 검색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석 씨 가족은 “(석 씨) 회사에는 (생산직이라) 개인 PC가 없어 경찰이 회사 공용 PC를 가져가서 조사했다”며 “집에 있는 PC는 워낙 낡아 최근엔 켠 적도 없다”고 밝혔다. 휴대전화는 2020년에 교체했다.
#O형 vs AB형
3월 26일 경찰은 석 씨가 김 씨가 출산한 구미 소재의 한 산부인과에서 신생아 채혈 검사 전에 두 신생아를 바꿔치기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그 근거는 혈액형으로 산부인과 의원 기록에는 신생아 혈액형이 A형인데 김 씨와 전남편 홍 씨는 각각 B형, O형이라 A형인 신생아는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이 부분 역시 틀렸다. 홍 씨 측 지인이 홍 씨 혈액형이 AB형이라고 밝힌 것이다. BO형과 AB형 사이 A형이 나올 수 있지만 김 씨가 BB형이라 A형이 나올 수 없어 결과적으로는 발표 내용이 맞지만 경찰은 사건 주요 인물의 혈액형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뒤늦게 드러났다.
김한탁 구미경찰서장이 ‘구미 3세 여아 사망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왕절개 vs 자연분만
경찰 발표 내용은 아니지만 오보가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한 매체는 석 씨 가족이 석 씨가 두 딸을 제왕절개로 출산해 세 번째 아기를 낳았다고 하더라도 자연분만이 어려워 출산 3∼4일 만에 걸어 다닐 수 없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석 씨 가족은 “석 씨는 두 딸을 모두 자연분만으로 낳았다”며 “(가족들은) 언론에 석 씨가 제왕절개로 자녀들을 낳았다고 말한 적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경찰 수사를 통해 뭔가가 드러날 때마다 석 씨 가족이 더 신빙성 있는 반박을 이어가면서 경찰 수사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한 신뢰도가 거듭 추락하고 있다. 석 씨 가족을 둘러싼 각종 의혹 가운데 유전자 검사 결과만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다. 여기서 경찰이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헛걸음질 하고 있는 동안 사건은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