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는 전력의 송배전과 판매를 독점하는 공기업으로 국내 전력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라남도 나주시 한국전력공사 본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한전은 1989년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했다. 4월 7일 기준 시가총액은 15조 5000억 원 수준이다. 한전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32.9%의 KDB산업은행이고, 2대주주는 18.2%의 대한민국 정부다. 한전의 2020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기간제를 제외한 직원수는 2만 3396명에 달한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8381만 원이다. 특히 한전 사장의 연봉은 2억 원대 중후반으로 국내 공기업 수장 중 최상위권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측 지분이 과반이 넘는 만큼 한전 사장 선임에는 정부의 의중이 중요하게 반영된다. 그런데 한전의 경우, 적지 않은 공기업이 전문성 없는 여당 인사를 수장으로 선임해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이는 것과 달리 대부분 행정고시를 통과한 전통 공무원 출신들이 역대 사장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한전 사장을 살펴보면 강동석(행시 3회), 한준호(행시 10회), 이원걸(행시 17회), 조환익(행시 14회), 김종갑 사장(행시 17회) 등이 행시 출신이다. 예외적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한전 사장을 역임한 LG그룹 부회장 출신 김쌍수 전 사장과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김중겸 전 사장은 기업인 출신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업인 우대 정책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사장의 임기는 정권의 명운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한전 사장의 임기는 3년이지만 공기업 특성상 정권 교체 후 사장이 사퇴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2007년 취임한 이원걸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4월 사장직에서 사퇴했다. 조환익 전 사장 역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임기 만료를 3개월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사실 조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막바지인 2012년 12월 취임했기에 이미 박근혜 정부 출범 때부터 사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조 전 사장은 예상을 뒤엎고 자리를 지켰고, 연임에도 성공하면서 5년간 한전을 이끌었다.
문재인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전 사장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2018년 3월 취임한 김종갑 현 한전 사장은 정부 정책에 맞춰 신재생에너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전은 2019년 말 전라남도, 신안군, 전남개발공사와 ‘신안지역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개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주요 내용은 2028년까지 11조 원을 들여 신안군에 1.5GW 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와 3GW 규모 송·변전 설비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 한전 및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은 2030년까지 신재생발전에 35조 원가량을 투입할 계획이다.
한편에서는 한전의 대규모 투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한전은 국민이 낸 돈으로 운영되는 만큼 투자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시장형 공기업인 한전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기세’라고 표현하듯 전기요금은 일종의 세금으로 인식된다. 전기는 현대 생활에 필수적인 것으로 사실상 공공재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몇 년간 한전의 실적은 부진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1조 1745억 원, 1조 2765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8991억 원의 흑자를 거둬 한숨 돌렸지만 재무구조는 여전히 악화하고 있다. 한전의 부채비율은 2018년 말 160.57%에서 2019년 말 186.83%로 늘었고, 2020년 말에는 187.46%로 올랐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전이 전기 판매업체로서 최근 2년간 적자 운영되고 있고, 급격한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앞으로의 전기료 인상에 대한 부분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며 “향후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고 사업성도 낮은 풍력발전 사업은 영업이익에 도움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2020년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김종갑 사장은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실적 및 주가 악화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김 사장의 임기는 2021년 4월 12일까지로 퇴임을 앞두고 있으며 정부는 그의 연임 대신 교체를 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전은 지난 3월 사장 공모를 진행했지만 지원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한전 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복수로 추천해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한다. 즉 복수의 사장 지원자가 있어야만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 말기라는 점이 사장 지원자가 없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그간의 사례로 보아 정권 교체 후 사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한전은 사장 재공모를 실시했고, 복수의 지원자가 나타나 선임 절차 진행이 가능해졌다. 유력한 후보로는 정승일 전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차관이 꼽힌다. 정 전 차관은 행정고시 33회에 합격해 산업부 반도체전기과장, 에너지산업정책관, 자유무역협정정책관, 무역투자실장, 에너지자원실장 등을 거쳤고,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2018년 1월에는 한국가스공사 사장에 취임했고, 같은 해 9월 산업부 차관으로 임명돼 2020년 11월 퇴임했다. 정 전 차관은 퇴임 후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정 전 차관은 문재인 정부와 소위 ‘코드’가 잘 맞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신재생에너지 등의 정책을 이끌었고, 2019년 1월 수소경제에 대한 로드맵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당시 정 전 차관은 수소 위험성 논란에 대해 “수소연료 사용 과정에서 폭발 가능성의 염려는 지나치다”라며 “수소를 담는 저장 용기는 탄소 섬유로 제작되고 강도 실험을 해본 결과에 따르면 7000톤(t) 에펠탑 무게를 견딜 수 있다”고 전했다.
한전 임추위는 지난 4월 5일 사장 공모를 마감하고, 서류 심사 등 선임 절차에 돌입했다. 임추위가 심사를 통해 최종 후보군을 추천하면 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를 열어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 최종 후보가 결정되면 산업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전 사장을 임명하게 된다. 당초 임추위는 4월 중순께 사장 선임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재공모로 인해 일정이 늦어지면서 4월 말에야 최종 선임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