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동상면 박병윤 면장(왼쪽)이 구술채록에 참여한 주민과 시집 ‘동상이몽’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일요신문=완주] “깊은 산골 작은 고장 동상면에 왜배기 대짜 물건이 돌출했다. 친숙한 농경 언어와 토착 정서의 때때옷을 입혀놓은 시편 하나하나가 사뭇 감동적인 독후감을 안겨준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제10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작가인 소설가 윤흥길의 서평이다.
국내 8대 오지(奧地)로 불렸던 전북 완주군 동상면 주민들을 시인으로 만드는 시집이 출간돼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로부터 산세가 험악해 삶이 녹록치 않았던 완주군 동상면 주민들이 고된 삶과 구구절절한 사연을 직접 구술한 시를 채록한 ‘구술채록’ 시집 ‘동상이몽: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가 바로 그것이다.
시집 ‘동상이몽’은 270쪽에 ‘호랭이 물어가네’와 ‘다시 호미를 들다’ 등 6부로 나눠 150여 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으며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속삭임으로 담아내 울림이 더욱 크다.
이 책의 출간은 박병윤 동상면장(52)이 시작하고 마무리했다. 시인이기도 한 박 면장은 지난해 면장 취임 후 “동네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소용없으니 살아온 이야기를 채록해 놓으라”는 제안을 받고 구술채록을 시작했다.
처음에 박 면장은 작가나 출판사에 용역을 주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수 천 만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데다 코로나19로 주민들이 외지인 접촉을 꺼려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 신분으로 자신의 업무를 소홀할 수 없는 처지여서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발품을 팔며 마을 곳곳을 찾아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기록하며 녹음했다. 그러다 탈진해 두 차례 병원 신세를 질만큼 힘든 작업이었다.
그리고 구술채록에 나선 지 6개월 만에 원고가 만들어졌고 전국 최초의 구술채록 시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영감 산자락에 묻은 지 수년 지나 /
백 살에 초승달 허리 이마 주름 뒤덮는데 /
왜 어찌 날 안 데려가요이, 제발 후딱 데려가소, 영감/’
올해로 101세인 백성례 할머니의 ‘영감 땡감’이란 시(詩)의 한 부분이다.
‘참 곱다 // 붉은 사과처럼 / 참, 곱다 // 내 / 젊은 청춘 // 저 바닥으로 / 채운 삶 // 황혼에 그린 / 텃밭.’ - 김형순 ‘여뀌’ 전문
마디풀과에 속한 한해살이풀인 ‘여뀌’를 바라보며 인생을 관조하듯 읊은 시는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밤티마을의 다섯 살배기 채언이는 ‘강아지’라는 시를 통해 ‘우리 집 강아지 미오는 / 안아달라고 멍멍멍 // 우리 집 강아지 딸기는 / 안아달라고 월월월’이라고 썼다. 친구가 많지 않은 산골에서 강아지와 함께 뛰노는 동심을 느낄 수 있다.
다섯 살배기 어린이부터 100세 어르신까지 말문을 연 글에는 고향 홍시감을 먹다 톡톡 뱉어낸 다양한 사연들이 하나의 시가 되어 감동을 준다.
박병윤 면장은 “가슴 속 깊이 맺힌 어르신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직접 담고 싶었다”며 “시집의 주인공은 바로 완주군 동상면 주민 모두”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서평에서 “시를 읽는 동안 내내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세대에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 글에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울먹였다”며 “이제 동상면은 시인의 마을이 됐고 삶이 시꽃으로 피어나 그 꽃향기가 오래도록 퍼져나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완주군(군수 박성일)은 14일 오후 2시 동상면 학동마을에 있는 여산재에서 국내 최초의 주민 채록 시집 ‘동상이몽 :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 출판회를 갖고 수록 시 낭송과 시집 후일담을 발표할 예정이다.
동상면은 시집에 그려진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고종시 마실길’에 ‘주민 시 감상길’을 만들고 100세 어르신 등 다섯 가정에는 ‘시인의 집’ 이야기가 있는 시골테마 사업, 여산재를 중심으로 한 ‘시인의 마을 아카데미’ 사업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신성용 호남본부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