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경기도 제공
[일요신문] 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대패로 끝났다. 민주당 자신도 예상치 못한 참패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민심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선거 전 언론은 승리하면 이낙연 체제가 유지되고 패배하면 이재명 지사가 반사효과를 얻을 거로 예측했다. 하지만 선거로 드러난 민심이 단순 이낙연 체제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재명 부상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선거는 국민들이 민주당과 현 정권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 소속의 이재명 지사도 이 같은 정서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지사는 그동안 당내에서 꾸준히 공격받으며 민주당 주류가 아니기는 했다. 하지만 핍박받았다는 이유로 민주당의 얼굴 중 하나인 이 지사가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온전히 피해가기는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계와 언론이 선거 참패의 원인을 LH 사태로 꼽지만 민주당 몰락의 전조는 그 전부터 있었다. 민주당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공수처 표결에 기권했다는 이유로 금태섭 의원을 징계했다. 의원 개개인이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을 당론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하고 내쳤지만 그때만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고공행진을 하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소신을 지킨 국회의원을 징계하고 스스로 만든 선거법을 꼼수로 무산시키며 위성 정당을 만들어 의석을 쓸어 담았다.
뇌물수수와 강요 등으로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고 황교안 체제의 야당이 무너져 내리자 민주당은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87년 개헌 이후 총선에서 역대 최다인 180석을 얻었을 땐 이미 지방단체장과 지방의회까지 거의 독식한 상태였다. 당시 이낙연 총리는 40% 지지율을 기록하며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180석이 문제였을까.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이후 급격히 보수화됐다. 국민을 바라보겠다던 약속은 지지층만을 향했고 노동자보다 기업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정부 정책과 국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민주당은 정의당과 노동계가 1호 법안으로 정해 추진하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목이 끼어 사망한 24세 노동자 김용균의 어머니와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무기한 단식을 하며 법안 제정을 촉구했지만 민주당은 야당(국민의힘) 탓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게다가 민주당은 중대재해법에 기업 입장을 대폭 담으며 법의 실효성을 무력화시켰다. 총선 전까지만 해도 노동계의 요구를 들어줄 것처럼 보였던 민주당이라 충격은 더 컸다.
재난지원금 지급에서도 민주당의 보수화는 두드러졌다. 평소였으면 당연히 보편 지급했을 재난지원금을 민주당은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선별 지급했다. 보편 지급한 한 차례도 이해찬 대표 시절이었다. 계속되는 선별 지급에 정가에서는 “이낙연 당대표와 민주당 최고위가 이재명 지사를 견제하느라 선별 지급을 고수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민주당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안희정, 박원순, 오거돈 등 민주당 단체장들이 성범죄 의혹으로 사퇴했지만 ‘단체장의 귀책 사유로 재보선이 이뤄질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후보를 냈다. 문 대통령은 “제가 만들었다고 당헌이 신성시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약속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것임을 확인시켜줬다.
더 심각한 건 현직 국회의원들이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며 피해자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과 지지자들의 계속되는 물타기와 의혹 제기에 피해자는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했지만 민주당 관계자들은 선거 직전까지 박원순 미화에 나섰다. 피해호소인이라는 호칭을 두고 민주화운동을 폭동 취급하던 신군부와 제주 4·3 유족을 빨갱이 취급하던 정권과 뭐가 다르냐는 얘기가 나왔지만 민주당은 ‘호소인 3인방’을 서울시장 선거 캠프에까지 합류시켰고 이들은 캠프를 떠나서도 선거 막판까지 지원 유세에 등장했다.
민주당은 염치도 없었다. 선거 막판 박영선 후보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 같은 분이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4월 6일 새벽에는 노회찬 의원을 상징하는 6411번 버스를 타며 넌지시 진보 지지층에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노동계와 진보 진영은 민주당을 더는 진보정당으로 여기지 않았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박 후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국회 논의과정에서 기업 입장을 대변해 법의 실효성을 무력화시킨 당사자”라고 했고 민주당에는 “국민의힘과 기득권 정치 동맹을 공고히하며, 정치 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정의당에 정치 테러를 가했다”라고 일침 했다.
중도, 진보 민심이 완전히 돌아서게 만든 LH사태는 이번 선거에 치명타를 안겼다. TBS라디오 진행자인 김어준은 3월 11일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는 언제나 있어 왔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도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저 사람들(LH)만 가져가니까 분노하는 거잖아요”라는 발언으로 민심을 들끓게 했고, 박범계 법무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부동산 투기는 2~3년 전부터 사회적 문제가 됐다”며 “(검찰이) 수사권 있을 때 적극 대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검찰에 책임을 돌렸다.
반성하지 않는 민주당에 민심이 악화되고 여론조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뒤늦게 이낙연 공동 선대위원장이 “무한책임을 느끼며 사죄드린다”며 사과했고 김태년 원내대표도 “국민의 분노와 실망이 크다는 것을 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민주당이 부족했다”고 사죄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뭘 잘못했는지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선거가 코앞에 다가오자 읍소 전략에 나선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2016년 새누리당의 ‘사죄의 절’ 퍼레이드가 연상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사과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지도 못했다.
이처럼 민주당 집행부만이 아닌 민주당 정권 전체에 대한 실망이 가득한 상황에서 이재명 지사가 바로 전면에 설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당장은 이 지사가 당의 얼굴이 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선거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낙연 대표의 하락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지사에게도 리스크는 있다. 지금 당 간판을 지면 국민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점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원팀”을 강조하며 자신이 민주당 구성원임을 부각해왔던 이 지사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지나친 당 옹호에 “성남시장 시절 보였던 기개는 사라지고 당원 눈치만 본다”는 지적도 나왔던 터다.
일각에서는 선거 책임을 묻는 동안 이 지사 쪽으로 민주당 내 세력 개편이 일어날 거라는 예측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지사가 전면에 나서 개혁 드라이브를 주문할지 차분히 경선을 기다릴지 그의 앞에 여러 선택지가 놓인 셈이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