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무리한 시도를 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수사로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입증하기 전에 검경과 기소권을 놓고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인 게 마이너스가 됐다는 비판이다. 자연스레 ‘판사 출신’들의 한계라는 검찰의 시각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모양새다.
김진욱 공수처장(사진)이 초대 공수처장이라는 명예로웠던 자리에서 3건의 고발 사건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놓고 ‘공수처의 위기’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처음 논란이 시작될 때는 수사 대상이 될 줄 몰랐다. 앞서 김진욱 공수처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관련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3월 7일 면담을 했다고 밝혔고, ‘피의자와의 부적절한 면담’이라는 비판 수준에서 이슈는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김진욱 처장이 이성윤 지검장을 사무실로 부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용차를 이 지검장에게 보내 태워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황제 조사 논란으로 불거졌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CCTV 영상에는 이 지검장이 BMW 차량을 타고 청사 인근에 도착한 뒤 김 처장의 관용차인 제네시스로 갈아타는 모습이 담겼다.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이 지검장과 굳이 일요일 면담을 진행하면서 관련 조서 및 출입기록조차 남기지 않아 비판이 나오던 상황에서 공개된 CCTV는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특히 면담 사실을 기록해야 하는 수사 보고서에 구체적인 면담 내용이 기재되지 않은 것은 물론 면담 장소와 시간, 담당 수사관 입회 여부 등이 허위로 작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김 처장에 대한 사퇴 및 수사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논란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처장이 이 지검장에 관용차를 제공할 당시 해당 관용차를 운전한 5급 김 아무개 비서관 관련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김 비서관은 지난해 4월 변호사 시험을 합격해 지난 1월 공수처에 특별 채용 됐는데, 김 비서관과 그의 아버지 모두 추미애 전 장관과 한양대 법과대학 동문으로, 아버지는 추 전 장관의 사법연수원 동기로 알려졌다. 이에 변호사단체와 시민단체 등 3곳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김영란법) 위반, 공무집행방해죄 등 혐의로 김 처장을 고소했다.
공수처는 “관용차가 두 대 있는데 2호차는 피의자 호송용으로 뒷좌석 문이 열리지 않아 김 처장 관용차를 보냈다”고 했고, 특혜 채용 논란에 대해서는 “규정에 따라 채용됐다”고 해명했다.
일단 대검은 공수처가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내 위치한 점을 고려해 관할지인 안양지청에 사건을 배당했다. 김 처장은 이 밖에도,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을 처음 제기한 공익신고자가 김 처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고발해 관련 수사도 받아야 한다.
다만 검찰 수사가 아니라, 경찰 수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공무집행방해죄가 검찰의 직접수사 개시범위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이에 초대 공수처장이라는 명예로웠던 자리에서, 3건의 고발 사건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놓고 ‘공수처의 위기’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고 있다.
문제는 더 있다. 검찰과 경찰이 공수처와 갈등 양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공수처로 당초 이첩됐던 이규원 검사,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개입 여부 사건에 대해 공수처는 다시 수원지검으로 사건을 보내면서 조건을 달았다. 공수처는 ‘수사는 검찰이, 기소 판단은 공수처가 하겠다’며 수사 완료 후 다시 공수처로 사건을 넘기라는 공문을 첨부했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검찰 수사 결과를 놓고 공수처가 판단하겠다’는 통보에 수원지검은 물론, 검찰 전체가 팔짝 뛰었다. 검사들 사이에서 “공수처가 검찰 위에 있다는 거냐”는 반발이 커졌다. 그리고 수원지검은 4월 1일 공수처 공문을 무시하고 이규원 검사에 대해 불구속기소를 결정했다. 공수처에, 사전 통보는 없었다.
김진욱 처장에 대한 검·경의 수사가 예정된 가운데, 이규원 검사 사건 기소권을 놓고 검찰과 공수처 간 갈등 양상이 주목받는 이유다. 일단 공수처는 침묵하고 있다. 이성윤 지검장 소환조사 과정에서 거센 비난을 받자 기소권을 놓고 다투기보다는 규정으로 권한 확보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검찰과 경찰에 이첩한 고위 공직자 사건을 수사 완료 후 되돌려 받아 기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사무 규칙’ 제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당연히 대검찰청은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정리해 공수처에 보내며 갈등을 벌이고 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정확한 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공수처가 능력 밖에 권한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입장을 내놨다.
김창룡 경찰청장을 예방한 김진욱 공수처장. 사진=최준필 기자
하지만 김진욱 처장은 검찰뿐 아니라 경찰로도 ‘우위 조직’임을 과시하기 위한 확전에 나섰다. 4월 1일 향후 경찰이 수사하는 고위직 판·검사 관련 사건에 대한 영장 청구는 검찰이 아닌 공수처가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공수처 수사 대상 사건이 경찰에 있을 경우, 이를 공수처가 지휘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경찰 역시 반발했다. 경찰은 수사 종결권이 생긴 상황에서 공수처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지휘를 막 벗어난 상황에서 공수처가 새로운 수사 지휘를 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김진욱 처장의 공격적 권한 확보 행보를 놓고 법조계에서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공수처가 제대로 된 수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검찰의 수사 종결권에 대해 ‘기소권을 가지고 가겠다’며 싸움을 걸어온 것”이라며 “피의자를 황제 소환 조사하는 곳에서 어떻게 기소권을 다 가지고 가겠다는 건지, 누가 그런 공수처를 믿고 사건을 맡기겠냐”고 비판했다.
법원 관계자 역시 “헌법재판소도 처음 생기고 나서 법원과 갈등이 있었지만 사건마다 헌재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잡아가면서 권한도 커진 것인데 김진욱 처장이 수사로 공수처의 자리와 역할을 보여주기도 전에 너무 공수처 권한에 집중한 것은 분명한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