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만 기다리고 있던 법조계도 예상 밖 야당 압승에 깜짝 놀란 분위기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8일 새벽 당선이 확실시되자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현재 문재인 정부로 칼끝이 향해 있는 수사는 △수원지검이 수사 중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 △서울중앙지검이 수사 중인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작성·유출 사건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사건(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포함)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대전지검이 수사 중인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은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 관련 수사들(수원지검, 서울중앙지검)과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작성 및 유출 사건 등이다. 선거 개입 비판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에 대한 소환도 선거 일정 이후로 조율해 왔는데, 선거 결과가 ‘민심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다’고 나오면서 강도 높은 수사가 예상된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정치검찰’이라고 누군가는 비판하지만, 그 얘기는 거꾸로 검찰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잘 읽고 이에 발맞춰 가는 수사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며 “국민의 여론이 정권에 등을 돌렸다고 한다면, 더더욱 원칙대로 수사를 하려 하는 게 검사의 본능”이라고 설명했다.
대전지검 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사건도 다시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산업부 등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으로 시작한 수사는 지난 2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영장 기각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퇴와 맞물려, 수사는 추가 소환이나 기소 등의 진전이 없이 멈춰 있었다. 수사팀은 해당 공무원들에 대한 추가 혐의 입증에 주력해 추가 기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선거를 앞두고 숨 고르기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정치에 개입했다고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은 선거를 앞두고 절대 속도를 붙이지 않는다”며 “대전지검 사건은 이미 감사원에서 넘어온 자료만으로도 충분하게 입증할 여지들이 있었던 사건”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를 겨눈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는다면, 그만큼 차기 검찰총장 자리는 중요해진다. 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1년에 두세 건의 사건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점을 감안할 때, 검찰의 손에서 문재인 정부 정책이나 인사가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보궐선거 결과는 자연스레 문재인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검찰총장으로 더 몰아가는 분위기다. 청와대 내 흐름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을 적폐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선거 완패가 더해지며,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은 개혁에 협조할 ‘믿을맨’이 필요한 상황이 돼 버렸다”며 “이성윤 지검장(사법연수원 23기)이 조금은 더 유력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여권이 보궐선거에서 궁지에 몰리며 ‘믿을맨’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존재감이 더 커지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전북 고창 출신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인 이 지검장은 대통령의 신뢰를 받고 있다. 줄곧 총장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에 연루되면서 검찰 내에서는 ‘피의자가 총장으로 자기 사건을 처리하는 게 말이 되냐’는 비판이 나왔지만, 보궐선거에서 여권이 궁지에 몰리며 ‘믿을맨’인 이 지검장의 존재감이 더 커지고 있다. 선거 전까지만 해도 전남 해남 출신의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사법연수원 20기)이 유력했지만, 여권의 완패로 인해 온도가 달라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수사는 검찰이 ‘정치적으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과거 적폐의 모습이 이번 정부에 그대로 반영된 파급력이 큰 사건이다. 이광철 민정비서관까지 수사팀의 소환 대상에 오른 상황에서 믿을맨은 이성윤 지검장 아니겠냐”며 “이 지검장이 차기 총장이 된다면 검찰 내부는 뒤숭숭해지겠지만 정부는 믿을 수 있을 것이고, 만일 김오수 전 차관을 고른다면 검찰은 안정감을 찾겠지만 정부는 이 지검장보다는 찜찜해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법무부는 조만간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를 열어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할 3명 이상의 최종 검찰총창 후보를 결정해 제청하고, 문 대통령은 이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게 된다.
검찰 안에서는 총장 직무대행을 무난하게 소화하고 있는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4기)를 희망하지만,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100% 믿을 수 없다’는 게 약점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과정에서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등, 검찰의 목소리를 대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이성윤 지검장 관련 사건이 검찰에 있다고 하더라도, 공수처로 사건을 넘기면 이 지검장이 검찰총장을 하는 데 문제가 없어지게 된다”며 “혹, 김오수 전 차관을 총장으로 임명하고 대신 주요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이성윤을 계속 앉혀두는 식으로라도 ‘믿을맨’을 활용하려고 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