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 계획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르면 4월, 늦어도 5월 중에는 구체적인 개편안이 공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SK하이닉스 이사회는 지난 3월 30일 박정호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현재 SK텔레콤 대표이사인 박정호 부회장은 그동안 SK하이닉스에선 부회장 직함만 가지고 있었는데, 대표이사도 겸하게 됐다. 이번 인사로 SK하이닉스는 박정호·이석희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이석희 대표(사장)는 제품 개발·생산을, 박 부회장은 경쟁력 강화 전략과 새로운 비즈니스 발굴 등을 맡을 것으로 전해진다.
박정호 부회장의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선임 배경에는 SK텔레콤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있다. 개편 작업의 핵심 회사가 SK텔레콤과 자회사인 SK하이닉스라서다. 박 부회장에게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겨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올해 끝내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냈다는 해석이 SK그룹 안팎에서 나온다.
박정호 부회장은 2017년 SK텔레콤 수장에 오를 때부터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올해 3월 SK텔레콤 주주총회에선 “개편을 올해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증권가와 통신업계 등에선 SK텔레콤이 이르면 4월, 늦어도 5월 중에는 공식적인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SK그룹 지배구조는 SK(주)가 SK텔레콤을 지배하고, SK텔레콤이 SK하이닉스의 지분을 보유한 형태(SK(주)-SK텔레콤-SK하이닉스)다. SK(주)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공정거래법상 경영권 확보를 위해 투자할 때는 지분 100%를 사야 한다. 그동안 그룹 핵심인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인수합병(M&A) 등 자유로운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다. 이 때문에 지배구조를 개편해 SK하이닉스의 위치를 끌어 올리고, 곳간에 쌓아둔 현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올해 들어선 개편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통과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새로 설립되는 지주사가 자회사 지분을 최소 30%까지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내년부터 적용된다. 현재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지분 20.1%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를 넘기면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 지분 10%를 추가로 사야 한다. 지분 추가 매입에 필요한 비용은 현재 시가 기준 9조 원이 넘는다.
지배구조 개편은 SK텔레콤을 이동통신 사업을 하는 T1(가칭)과 지주회사 T2(가칭)로 쪼개는 형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T1은 유선통신 사업을 하는 SK브로드밴드 등 통신 관련 회사를 자회사로 편입하고, T2는 SK하이닉스와 11번가, 원스토어, ADT캡스 등 비통신 사업 회사를 자회사로 두는 것이 큰 그림이다. 이 경우 T1은 오롯이 이동통신 사업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T2는 현금 창출력이 큰 SK하이닉스를 앞세워 반도체 소재·장비 등 분야에서 그동안 못했던 공격적인 M&A에 나설 수 있게 된다.
박정호 부회장의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선임 배경에는 SK텔레콤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있다.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행사에 참석한 박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SK텔레콤을 쪼개는 방식은 인적분할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박정호 부회장도 최근 지주사에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인적분할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적분할은 SK텔레콤을 T1, T2 수평관계로 나누는 것으로, 주주들은 기존 회사 지분율대로 2종목을 보유하게 된다. 대주주인 SK(주)는 지분율 희석을 최소화할 수 있고, 자사주 등을 활용해 지배력도 높일 수 있다.
또 이번 지배구조 개편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SK하이닉스를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끌어올리는 것인 만큼 SK텔레콤 쪼개기에만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SK(주)가 T2와 합병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경우 그룹이 SK하이닉스를 직접 지배하게 되고 배당이익도 기대할 수 있다.
SK텔레콤 분할에 대한 득실을 두고 증권가 분석은 엇갈린다. 특히 SK그룹 안팎에서 개편 작업의 핵심은 기업가치 제고라는 점을 앞세우고 있는데, 이에 대해 중진급 증권사 연구원 2명의 주장이 최근 팽팽히 맞서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들은 분할 이후 SK텔레콤 기업가치를 두고 현재 수준보다 높을지 낮을지에 대해 정반대로 전망했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실장은 최근 일련의 보고서를 통해 “순진하게도 일부 투자자는 SK텔레콤의 인적분할이 기업가치 향상 목적이라고 주장한다”며 “올해 안에 SK텔레콤이 인적분할 작업을 완료하는 것이 SK(주)가 하이닉스를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게 오너에게도 유리하다”고 밝혔다. 그는 SK텔레콤 분할 이후 T1과 T2의 합산 시가총액이 지금(20조 원)보다 불어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T1은 정체기에 접어든 사업을 하는 순수 통신사가 되기 때문에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T2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룹 지배력을 높여야 하는 최태원 회장으로서는 T2의 시가총액을 최대한 낮게 유지하고, SK(주)가 추후 현물출자나 합병 등을 통해 T2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시나리오가 이상적라는 점을 짚었다. 시장도 T2가 SK(주)와 합병될 처지인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만큼 SK텔레콤 자회사들의 IPO(기업공개·상장) 영향이 T2가 아닌 최종 귀속자인 SK(주)에 돌아갈 것으로 봤다. SK텔레콤은 올해 원스토어를 시작으로 ADT캡스, SK브로드밴드, 웨이브, 11번가 등 주요 계열사들의 IPO를 향후 수년간 추진할 계획이다.
반면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SK(주)와의 합병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며 이러한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은 SK(주)에만 유리하고 SK텔레콤에는 불리할 것이라는 식의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배구조 개편 이후 SK텔레콤의 예상 시가총액이 T2 15조 원, T1 14조 원으로 29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 연구원은 SK텔레콤이 보유한 자회사 가치를 중요하게 봤다. 자회사 IPO를 통해 극단적 저평가를 받는 SK텔레콤 사업부에 대한 개별적 재평가가 진행되면서 시총이 자연스레 확장돼 기업가치가 향상될 것이라는 견해다. 최 연구원은 “SK그룹이 SK하이닉스 등 핵심 자회사들의 사업 잠재력을 억제하면서 의도적으로 T2의 가치를 낮출 것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편향적”이라고 지적했다.
두 연구원의 주장과 같이 외국인과 기관의 매매도 엇갈린다. 기관은 올해 들어 SK(주)를 순매수하는 반면 SK텔레콤은 순매도하는 추세다. 반대로 외국인은 SK텔레콤을 사고 SK(주)는 팔고 있다.
별개로 제3의 시나리오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SK텔레콤이 통신부문을 100% 자회사로 물적분할하고, 존속법인으로 남을 투자부문을 통해 통신부문과 함께 SK하이닉스, 원스토어, 11번가 등 자회사와 피투자사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박정호 부회장이 기존 통신기업에서 종합 ICT(정보통신기술) 업체로 전환한 일본 소프트뱅크를 여러 차례 언급하며 SK텔레콤을 ICT 사업자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 점이 이 의견의 근거다.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전환 등 까다로운 방식을 피할 수 있지만 이 경우 SK가 지난해 LG화학의 배터리사업 물적분할 당시 시장 후폭풍 사례를 참고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현재로선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시장이나 SK텔레콤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충격을 주기보다는 각 사업들이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쪽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