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재보궐 선거가 국민의힘 압승으로 막을 내림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국정 쇄신용 벚꽃 개각’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첫 단추는 정세균 국무총리 후임자 찾기다. 정 총리 다음 행선지가 차기 대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개각은 여권 미래권력 구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4년 중간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이 ‘급속한 레임덕이냐, 다시 국정장악이냐’의 갈림길에 선 셈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3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1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의결 후 정부측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중폭 이상 개각은 상수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8일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며 재보선 참패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민주한 한 당직자는 “이반된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쇄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최소 5∼6곳이 교체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와 경제 컨트롤타워, 산업통상자원·고용노동·해양수산·농림축산식품부, 금융위원회 등이 대상이 될 전망이다.
변수는 여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암투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여권 한 관계자가 개각 인선을 둘러싼 물밑싸움을 보고 던진 말이다. 애초 정 총리는 문 대통령과 주례 회동이 예정된 4월 12일에 사의를 표명할 예정이었으나, 이란 순방 일정 문제로 사의 표명 시점을 일주일(4월 19일) 늦췄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 총리 측 플랜은 순항했다.
재보선에서 패하더라도 정 총리의 마지막 행보를 ‘외교 해결사’로 매듭지으면 국정 투톱 이미지 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국무총리실이 추진했던 이란 방문의 주목적은 석 달째 계속된 한국 선박의 억류 문제 협의였다. 정 총리의 외교 해결사 역할론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발 투기 의혹과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4월 사의가 삐끗한 상황을 타개할 일종의 출구전략으로 보였다.
그러나 4월 5일 여권 내부에서 돌출 변수가 발발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가 후임 총리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천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고위 관계자가 정 총리라는 얘기도 들렸다. 정 총리 측 핵심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총리실 측 관계자도 “그렇게 (만나달라고) 요청하더니…”라며 평가 절하했다. 정 총리 측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충청 대망론으로 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영향력을 제어하고자 충남 보령 출신인 이 전 장관에게 총리직을 타진했다는 시나리오와 맞물려 ‘이태복 카드’가 급부상했다.
그간 사례도 있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인 2009년 9월 개혁적 경제학자로 평가받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깜짝 발탁했다.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 극한 갈등 국면에서 정 전 총리가 부여받은 핵심 임무는 세종시 수정안 통과였다. 민주당 한 전략가는 “당시에도 MB의 정운찬 카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충청권 대세론을 꺾으려는 회심의 한 수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세론을 일찌감치 형성했던 박 전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면서 MB의 정운찬 카드는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정 전 총리에게 지금껏 세종시 총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에 앞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행정수도 이전 등을 통해 충청 표심 잡기에 나선 바 있다. 여권발 이태복 카드가 확산한 이유도 캐스팅보트인 ‘충청권의 위력’과 무관치 않다.
3월 28일 열린 고위당정 협의회에 참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정세균 국무총리,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왼쪽부터). 사진=박은숙 기자
김진표 데자뷔도 막을 수 있다. 2019년 연말 총리 1순위로 경제통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거론됐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시민단체 등은 보수적 이념 등을 이유로 이를 비토했다.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이 전 장관은 신군부 시절 공안 조작 사건이었던 ‘학림사건’으로 7년 4개월간 복역한 민주화운동의 맏형이다. 청와대는 현재 거론되는 인사들의 추천만 받았을 뿐, 검증 작업에 돌입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 외에 현재 후임 총리 하마평에 오른 인사는 ‘영남 총리 1순위’인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63)을 비롯해 경북 의성 출신인 김영주 전 한국무역협회장(71), 여성 총리 후보군인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59),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65) 등이다.
전망은 엇갈린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영남 총리론은 차기 대선만 겨냥한 공학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여성 총리에 대한 문 대통령의 선호는 여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여당 일각에선 불러도 대답 없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차기 경제부총리 후보군으로는 구윤철 국무조정실장(56·행시 32회)을 비롯해 은성수 금융위원장(60·행시 27회),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사(60·행시 28회), 고형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대표부 대사(57·행시 30회), 노형욱 전 국무조정실장(59·행시 30회) 등이 꼽힌다.
국정 쇄신용 개각 셈법이 한층 복잡해지면서 정 총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태복 카드 부상과 정 총리의 사의 의사가 재보선 전에 나오면서 운신의 폭은 다소 좁아졌다.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이 후임 총리 지명 전에 정 총리 사의설이 흘러나오면서 경우에 따라 총리 공백이 불가피해서다. 게다가 재보선마저 참패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사의를 표명한 정 총리가 직을 계속 수행하기도, 그렇다고 후임자 공백 상태에서 떠나기도 애매한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며 “특히 재보선 패배로 당정청도 폭풍전야 그 자체”라고 말했다. 다만 정 총리는 조만간 사의를 표명하고 대선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 팬클럽인 ‘우정 특공대’가 3월말 발대식을 갖는 등 SK(정세균) 인사들의 결집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총리 퍼즐이 맞춰지면 부처 장관 교체도 연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뜨거운 감자는 사임 의사를 이미 밝힌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임자다. 김용범 전 기재부 1차관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윤성원 국토부 1차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출신인 정일영 민주당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올랐다.
홍남기 부총리와 유은혜 부총리도 경제 컨트롤타워 교체와 총리 인사에 따라 교체 내지 자리 이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장수 장관에 대한 교체도 단행된다. 재임 2년을 넘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이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청와대 참모진 개편도 불가피하다.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 3실장 중 일부를 포함한 고위 관계자들은 재보선 전 패배 수습책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한 실장은 “재보선에서 참패할 경우 직을 통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반대했다고 한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