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예매니지먼트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때 아닌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폭력(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지수(본명 김지수)를 둘러싼 이슈가 시간이 흐를수록 확대되고 있어서다. 3월 초 학폭 의혹에 휘말린 지수는 주연을 맡은 KBS 2TV 드라마 ‘달이 뜨는 강’에서 중도 하차했다. 이에 제작사는 방송 차질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지수의 소속사 키이스트에 30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3월 초 학폭 의혹에 휘말린 지수는 주연을 맡은 KBS 2TV 드라마 ‘달이 뜨는 강’에서 중도 하차했다. 사진=KBS 제공
이럴 때마다 사태 수습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곳은 이들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다. 소속사가 자사 배우의 보호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번 지수의 사례처럼 데뷔 전, 학창 시절 벌어진 일까지 현재의 소속사가 책임져야 하는지를 두고는 연예계와 방송가의 의견이 엇갈린다. 반대로 김정현처럼 계약기간 내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 소속사의 노력을 배제한 채 전속계약 분쟁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지수 소속사 ‘30억 원 배상’ 처지
‘달이 뜨는 강’ 제작사인 빅토리콘텐츠는 4월 2일 지수의 소속사 키이스트를 상대로 30억 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주연배우가 드라마 방송 도중 하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제작사가 배우에게 그 책임을 물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드라마 제작사들과 매니지먼트사들이 이번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이다.
빅토리콘텐츠는 소송을 제기한 배경을 두고 “주연배우 교체에 따른 추가 제작비 발생 및 관련 피해 회복을 위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수의 학폭은 단순 싸움 수준이 아닌 금품갈취, 대리시험, 성범죄에 해당하는 수준의 끔찍한 행위들이었다”며 “불미스러운 일로 드라마에서 하차함에 따라 재촬영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해 손실이 큰 상황임에도 키이스트가 협상에 제대로 나서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달이 뜨는 강’은 6부가 방송된 상황에서 지수가 하차하자 신인 연기자 나인우를 교체 투입해 재촬영을 진행했다. 총 20부작 가운데 이미 18부 분량의 촬영을 마친 탓에 제작진은 물론 출연 배우들의 재촬영 부담은 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제작사는 키이스트에 합당한 배상을 요구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소송전으로 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빅토리콘텐츠 관계자는 “손해배상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려 했지만, 키이스트 측의 비협조로 인해 부득이하게 소를 제기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키이스트는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제작사와 소통하면서 원만한 해결을 모색하는 도중 돌연 소송에 휘말렸다는 설명이다. 키이스트는 “지수의 학폭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차한 것은 제작진에 피해를 덜 주기 위해서였다”며 “갑작스러운 배우 교체로 인한 제작사 및 여러 제작진이 겪는 어려운 상황에 공감해 추가 촬영분에 소요된 합리적인 비용에 한해 책임질 의향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소속사 책임 vs 배우 책임 어디까지…
지수와 ‘달이 뜨는 강’을 둘러싼 30억 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계기로 소속 배우가 일으킨 물의에 대해 소속사가 과연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의 문제가 연예계 핫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지수처럼 키이스트와 전속계약을 맺기 훨씬 전 학창시절 벌인 일까지 ‘소속사의 관리 책임’으로 묻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매니지먼트사 대표는 “배우와 전속계약을 맺을 때 과거의 일까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고, 확인할 방법도 현실적으로 없다”며 “지수의 사례처럼 10년여 전 일이 갑자기 불거졌을 때 현재의 소속사에만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합당한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배상액을 지수 개인에게 요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잘못이 없는 제작자에 그 손해를 떠안게 할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라며 “빅토리콘텐츠와 키이스트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이유도 명확한 해법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반대로 배우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묻게 하는 사건도 최근 불거졌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와 ‘사랑의 불시착’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김정현이 휘말린 전속계약 분쟁 사건이다.
과거의 일로 끝날 뻔한 김정현의 ‘시간’ 중도하차 문제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오른 이유는 소속사와 전속계약 만료시기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일요신문DB
김정현은 2018년 드라마 ‘시간’을 통해 첫 주연을 맡아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출발했지만, 촬영 도중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차했다. 당시 소속사 오앤엔터테인먼트는 “수면장애와 섭식장애로 인해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 제작진과 상의해 하차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공식 입장과 달리 당시 김정현의 하차를 둘러싼 잡음은 계속됐다. 주연배우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이유로 작품에서 하차한 경우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김정현이 빠지면서 결국 ‘시간’은 남자 주인공이 없는 상태로 이야기를 황급히 마무리했다.
과거의 일로 끝날 뻔한 김정현의 ‘시간’ 중도하차 문제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오른 이유는 소속사와 전속계약 만료시기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속사는 ‘시간’ 하차로 인한 금전적 손해와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드라마 제작사와 각종 관계사들과 조율을 거듭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속사가 직접 나서 갈등을 무마했고, 드라마 하차 이후 연예 활동 공백까지 가졌으니 이를 감안해 ‘전속계약 기간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정현은 당초 계약대로 5월 초 전속 기간을 끝내겠다고 맞서 양측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지수의 경우와는 또 다른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연예계 관계자들은 아쉬움을 표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금전적인 배상 여부를 떠나 소속사와 소속 연예인의 공동 책임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