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는 4·7 재보궐 선거 결과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실제 여권은 패배했다는 사실보단 국민의힘 후보와의 득표율 격차에 더 당혹해하는 모습이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서 싹쓸이하다시피 한 서울 전 지역에서 패했다는 부분에선 ‘충격적’이라는 반응까지 나온다. 이번 재보선 패배로 여권은 국정운영 및 차기구도 등을 놓고 거센 내홍의 소용돌이에 빠질 전망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이 4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7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 사퇴를 발표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재보선 다음 날인 4월 8일 민주당 지도부는 총사퇴했다. 민주당은 도종환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4월 16일 원내대표 선거, 5월 2일 당 대표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재빨리 수습에 나선 셈인데, 오히려 이러한 모습을 두고 당 내에선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결과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나 반성도 없이, 당 지도부 사퇴라는 관행적인 이벤트로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고 꼬집었다.
당 내부에선 ‘친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도종환 의원을 비대위원장에 임명한 것을 두고도 쓴소리가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도 의원은 친문을 주축으로 하는 ‘민주주의3.0연구원’의 이사장 겸 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민주주의3.0연구원은 친문 핵심들이 과거 문 대통령을 돕기 위해 만들었던 ‘부엉이 모임’의 2기 성격을 갖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원내대표 선거 때까지 비록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비대위지만 상징적인 측면에서 비문이나 중도 성향, 또는 외부 인사를 임명했어야 한다”면서 “도 의원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당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이고, 선거 결과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의 초선 의원도 “지금 급하게 지도부를 구성할 때가 아니라, 선거에서 왜 졌는지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당헌을 바꿔가며 후보를 낸 것 자체가 잘못인데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아예 없다. 아니 있지만 다들 하기 두려워한다”면서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돼 있는 풍토가 지금의 민주당 현실이다. 친문계가 이대로 정치 일정을 밀어붙이면 당 내부는 물론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포스트 재보선’ 정국에서 민주당 내부 갈등이 적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선거 패배 진단을 묻는 질문에 친문 인사들 상당수는 ‘개혁을 더 밀어붙이지 못한 결과’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 등이라고 답한다. 선거가 끝난 뒤 일부 친문 강경파들은 남은 임기 동안 ‘검찰개혁’ 등을 완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정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는 묻히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 주류가 당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지도부를 꾸리기로 한 것은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초전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본선 채비를 일찌감치 갖추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문 진영의 차기 구상은 재보선으로 인해 차질을 빚게 됐다. 특히 이재명 이낙연 ‘양강’ 외에 다른 후보를 찾겠다는, 이른바 ‘3후보론’은 힘을 잃게 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3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일산대교-미시령-마창대교 공정한 민자도로 운영 방안 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3후보가 어려워진다면 친문계 선택지는 이낙연 전 대표로 좁아진다. 정세균 총리도 직에서 물러난 뒤 대선에 뛰어들 예정이지만 이 전 대표 대안으로 거론되기엔 아직 역부족이란 평가가 많다. 이낙연 전 대표는 선대위 상임위원장을 맡아 재보선을 진두지휘했다. 또 당 대표 시절 재보선 참여를 위한 당헌 개정, 후보자 경선 등을 이끌었다. 재보선 패배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차기주자 선호도 역시 윤 전 총장과 이재명 지사에 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친문계는 ‘이낙연 카드’ 외에 대안이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그동안 친문계는 차기를 앞두고 분화할 조짐을 보였다. 이재명 이낙연 3후보 등을 놓고 각자도생하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친문계가 재보선을 계기로 결집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위기를 맞은 이 전 대표가 오히려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친문 의원은 “친문과 이낙연 간 밀월관계가 시작될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득실을 놓고는 엇갈린다. 여권을 향한 부정적 시선이 높아졌다는 점은 이 지사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여당 내 야당’ ‘반문’ 이미지가 강한 이 지사에게 손해가 아니란 반론도 있다. 이 지사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포스트 재보선은 이재명의 시간”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민의힘 승리로 3지대 윤석열 전 총장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도 이 지사에게 유리한 변수로 꼽힌다.
이번 선거에서 중도층 표심은 ‘정권 심판’에 방점이 찍혔다. 그리고 선거 결과는 이들이 좌우했다. 이 지사가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선 중도층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엔 ‘화약고’나 다름없는 정치 공학이 숨겨져 있다. 과거 대통령 레임덕은 내부에서 촉발되곤 했다. 여권 차기 주자가 현직 대통령과 선을 그으면서였다. 권력의 중심축이 ‘지는 권력’이 아닌 ‘뜨는 권력’으로 급격히 쏠리기 때문이다.
재보선 패배 수습을 둘러싼 내부 갈등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 지사가 중도층 여론을 수렴해 친문과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민주당은 대대적인 차기 전쟁에 돌입할 전망이다. 한 친문 재선 의원은 “폭풍전야다. 이재명 지사가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 지켜보고 있다. 친문에서 생각하고 있는 당 쇄신 방향 등에 대해 이 지사가 다른 입장을 밝히는 등 우리와 각을 세운다면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지사 측이 민주당 세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결국 마이웨이를 가기로 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지사 딜레마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당 최대 계파인 친문과 등을 돌릴 경우 당 경선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고민이다. 정가에서 이 지사가 당분간 여의도와 거리를 둘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결국 친문도 이재명 대세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대안이 없다. 이낙연 전 대표도 힘들다. 3후보는 끝났다”면서 “친문이 이재명 지사를 대통령으로 밀고, 최소한 당권이라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