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 경호 기간은 최장 15년이다. 대통령경호법 4조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이 퇴임한 날부터 10년 동안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 경호를 경호처가 맡는다. 전직 대통령이나 배우자 요청이 있다면 경호처장이 판단해 경호 기간을 5년 연장할 수 있다.
다만 전직 대통령이 경호 기간 중에 사망한다면 그 배우자 경호 기간이 달라진다. 배우자는 전직 대통령 퇴임 10년을 넘지 않는 기간에 한해 사망 날부터 5년 동안 경호를 받게 된다. 경호 기간이 종료되면 경호 업무는 경호처에서 경찰로 이관된다.
청와대 경호처가 대통령경호법에 따른 경호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고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경호하고 있다고 확인됐다. 고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에서 권양숙 여사를 위로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권양숙 여사 경호 기간은 2019년 5월 22일까지였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24일 임기를 마쳤다. 노 전 대통령과 권 여사는 2018년 2월 23일까지 경호처 경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퇴임 1년이 조금 지난 2009년 5월 23일 서거했다.
권 여사는 퇴임 10년 이내 서거 날로부터 5년 뒤인 2014년 5월 22일까지 경호처 경호를 받을 수 있었다. 배우자 요청이 있을 경우 경호처는 경호 기간을 5년 연장할 수 있는데, 연장된 경호 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2019년 5월 22일이다. 경호처는 경호 기간이 끝났지만 권 여사 경호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경호처는 권 여사 경호 연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경호처 관계자는 “법에 따른 (권 여사의) 경호 기간은 2019년 5월 22일까지가 맞다”면서도 “경호처장 재량에 따라 그 이상 연장을 할 수 있다. 법제처 유권해석이 있었고 법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경호처가 내세우는 조항은 대통령경호법 4조 6항 ‘그 밖에 처장이 경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국내외 요인’이다. 이 조항에 따라 경호처장이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경호처가 언급한 법제처 유권해석은 2018년 4월에 나왔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고 이희호 여사 경호와 관련해서 논란이 불거졌을 때였다. 이 여사 경호 기간은 2018년 2월 24일까지였다. 김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25일 퇴임했고, 2009년 8월 18일 서거했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였던 김진태 전 의원이 2018년 3월 22일 “현행법에 따라 이희호 여사에 대한 대통령 경호처의 경호는 2월 24일 종료됐어야 한다”며 경호 관련 업무를 경찰에 넘기라고 요구하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그러자 경호처가 김 의원에게 공문을 보내 “4월 2일부로 인수인계를 시작했다”며 경호 업무를 경찰에 이관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 여사 경호를 경호처가 맡으라고 지시했다.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2018년 4월 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 대통령이 경호처에 해당 조항의 의미에 대해 해석 논란이 있다면 법제처에 정식으로 문의해 유권해석을 받을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 등 경호에 관한 법률 제4조 1항 6호에 명기된 ‘그 밖에 처장이 경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국내외 요인’에 대해서는 청와대 경호처가 경호를 할 수 있다”며 “국회 운영위원회 소위원회가 지난 2월 22일 전직 대통령과 부인에 대한 청와대 경호처의 경호 기간을 추가로 5년 늘리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음에도 국회 법사위에서 심의·의결되지 않아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데 대해 심대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고 김대중 대통령 부인 고 이희호 여사 경호를 두고도 논란이 불거졌었다. 이희호 여사와 악수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논란에 앞서 국회 운영위는 2018년 3월 22일 전체회의를 열고 전직 대통령과 부인에 관한 청와대 경호처의 경호 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대통령경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전직 대통령 경호를 현행 최장 15년에서 20년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정안은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하다가 20대 국회가 끝나면서 함께 폐기됐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청와대 경호처는 이 여사가 2019년 6월 10일 사망할 때까지 경호를 이어갔다.
청와대는 법제처에 대통령경호법 4조 1항 6호 ‘그 밖에 처장이 경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국내외 요인’을 적용해 이 여사 경호를 이어갈 수 있는지 유권해석을 문의했다. 법제처는 2018년 4월 30일 경호처가 이 여사 경호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놨다.
법제처는 “대통령경호법 제4조 1항은 경호 대상을 대통령 재임기간이나 대통령 퇴임 후 10년 등 일정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경호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적 경호대상’과 경호처장의 재량적 판단에 따라 경호 제공 여부·기간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임의적 경호대상’으로 구분해 규정하는 체계”라며 “‘의무적 경호대상’과 ‘임의적 경호대상’은 서로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보충적 관계로 한 번 의무적 경호대상이었다고 절대로 임의적 경호대상에 해당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제처는 “대통령경호법 제4조 1항 6호의 ‘그 밖에 처장이 경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국내외 요인’이란 같은 항 1~5호에 준하는 사람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경호를 제공해 보호할 필요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며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의 경우 재임 당시 국내외 상황과 업무 등에 따라 취득한 국가기밀과 적대적·우호적 이해관계자들의 범위 등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호 기간이 끝난 전직 대통령과 그 배우자라도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경호처장 판단에 따라 ‘경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국내외 요인’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법제처 유권해석을 두고 김진태 전 의원은 “지금 청와대 경호가 가능하다면 경호 기간을 연장하려는 법 개정안은 뭐 하려고 냈는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이희호 여사 한 사람을 위해 이미 7년에서 10년으로, 다시 15년으로 두 번이나 법을 개정했었다. 이번 유권해석처럼 무기한 종신경호가 가능하다면 그럴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2018년 4월 6일 “이희호 여사에 대한 경호처 경호 기간을 5년 늘리는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 한마디에 경호처 경호를 유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법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을 자처하는 꼴”이라고 하기도 했다.
헌법연구원장을 지낸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4월 9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같은 법에 전직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규정이 있기 때문에 ‘그 밖에’라는 보충 규정을 이 여사에게 적용하는 건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며 “대통령경호법이나 전직대통령예우법은 그 자체로 후진적이다. 다른 나라에선 우리나라처럼 전직 공직자를 극진히 예우하는 경우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고 김영삼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는 현재 경찰이 경호를 맡고 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