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방연구원이 해병대 감축 방안을 제시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해병대 훈련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논란의 시작은 언론 보도를 통해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연구 자료가 알려지면서부터다. KIDA가 작성한 ‘장기 군 구조 발전 구상’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2만 9000명 규모의 해병대 병력 7000명을 감축하고, 해병대 2사단을 여단급으로 재편한 뒤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포항 소재 해병대 1사단과 서북도서 병력들도 일정 부분 감축한다는 것이 골자다.
보고서엔 육·해·공군 향후 병력 감축 방향성이 담겨 있다. 42만 명 규모 육군은 2020년대 중반까지 30만 명 규모로 축소하는 방안도 언급됐다. 공군은 6만 5000명 규모에서 6만 6000명 규모로 1000명 증강된다는 내용도 있다. 문제는 해군 병력 감축의 대목이다. 보고서엔 7만 명 규모 해군 병력을 6만 1000명 수준으로 9000명가량 줄이는 구상안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병대는 독립적 성향을 띠고 있지만, 소속은 해군이다. 해군 병력 감축 9000명 가운데 대부분인 7000명이 해병대에서 감축된다는 안이 이번 보고서에 담긴 셈이다. 이 보고서는 국방부 의뢰로 KIDA가 2년간 연구용역으로 작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KIDA 측은 2018년 ‘해병 제2사단의 역할 및 배치에 관한 연구’와 관련해 “해병 제2사단 역할 및 배치에 관한 연구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돼 오던 2사단 역할 재정립 문제를 검토하고 역할에 부합한 배치에 관해 여러 가지 안을 검토하는 중장기적인 기초연구”라고 설명한 바 있다.
2020년 국군의날 행사에 참석한 서욱 국방부장관과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국방부는 즉각 해명에 나섰다. 3월 29일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해병 2사단을 여단으로 축소해 후방으로 빼는 방안은 KIDA 자체의 아이디어 차원으로 이뤄진 연구”라고 했다. 부 대변인은 “(해당 연구는) 각 군과 협의 아래 진행된 것이 아니”라면서 “오는 2040년에 2차 인구 절벽과 과학 기술 발전 등을 고려한 연구원 차원의 장기 군 구조 방향에 대한 구상”이라고 했다. 부 대변인은 “추가적인 연구와 군 자체 연구를 통한 협의 등을 거쳐 계속 해당 연구를 추진하고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KIDA 연구 결과와 국방부 브리핑을 접한 예비역 군 관계자들 사이에선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 아니라는 얘기가 쏟아졌다. 한 예비역 고위급 군 관계자는 “KIDA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려고 2년 동안 연구를 하는 경우는 없다”면서 “병력을 감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우리 군 앞에 놓인 최대 과제라고 보면 되는데, 중요한 주제를 둘러싼 연구를 그저 아이디어 차원에서만 했다기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KIDA 연구의 흐름을 살펴보면 결국 해병대 2사단을 감축 재배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우리 군이 병력 수를 감축하는 건 시대의 흐름상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다만 병력 감축은 비전투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이뤄지고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부대에 대해선 일부 증강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부분이 기존 군이 밝혔던 청사진”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군이 ‘선 방어 후 공격’을 기반으로 편성돼 있는 상황에서 해병대는 북한과 군사적 마찰이 있을 시 공격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예 특수부대”라고 했다.
해안선을 순찰하는 해병대 병력들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연합뉴스
전직 해병대 장성급 관계자는 “이번 KIDA 연구 결과에 따라 해병대 편제를 축소하고 인력을 감축한다면, 이는 북한이 가장 바라는 일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해병대 2사단은 인천 강화부터 경기 김포에 이르는 80km 지역을 관할하는 수도권 방호의 핵심”이라면서 “해병대 2사단을 여단급으로 축소한 뒤 후방에 배치할 경우, 육군 2개 사단이 기존 해병대 2사단 영역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개성 예성강에서 이어지는 서부 축선을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 해병대 2사단의 임무”라면서 “그간 해병대가 수도권 서부를 마킹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북한이 느끼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해병대 2사단은 유사시 북한에 가장 빠르게 반격을 개시할 수 있는 전력이다. 북한 입장에서 느끼기엔 ‘뒷덜미의 독침’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군이 실시하는 병력 감축의 핵심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방어태세를 구축하는 것인데, 해병대 2사단은 우리 군에서 이런 명분에 가장 적합한 부대다. 적은 인력으로도 육군 2개 사단의 경계 범위를 커버하고 있는 까닭이다. 최소 인력 최대 효율 슬로건을 가장 잘 이행하고 있는 부대를 축소하고 재배치하는 연구 결과는 용납하기 힘들다. 어떤 방향이 가장 효율적인가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미리 방향성을 정해놓고 연구에 돌입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해병대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해병대 사령부를 비롯해 해병대 전략연구소, 해병 전우회 등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속속 고개를 들고 있다”면서 “현역 해병대 고위 간부들은 직접적으로 입장표명을 꺼리는 상황이지만, 병력을 감축한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해병대 사령부에서도 KIDA가 해병대 감축을 구상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면서 “해병대 또한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심도 깊은 논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KIDA 내부에도 해병대 출신 연구위원이 있다. 해병대 관련 연구가 있으면 관련 동향이 종종 소식이 온다. 그런데 이번에 ‘해병대 감축’ 내용이 담긴 연구는 2년 동안 진행됐음에도, 소식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2년의 연구 기간을 거쳐 공식 루트가 아닌 언론을 통해 공론화된 보고서에 해병대 사령부 역시 굉장히 당혹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바다를 가르는 해병대 장갑차. 사진=연합뉴스
전 해병대 사령관 A 씨는 “해병대 2사단은 서쪽 말도에서부터 김포까지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이 지역은 강과 바다, 땅이 만나는 지역으로 바다와 땅 모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방호해 내기가 쉽지 않은 지역”이라고 했다. A 전 사령관은 “해병대 2사단 병력은 육군 1개 사단보다도 훨씬 적은 병력으로 이 지역을 지키고 있다”면서 “해당 지역은 육군으로 치면 1~2개 군단이 방호해야 제대로 방호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했다.
A 전 사령관은 “여기다 해병대 2사단이 마주하고 있는 북한군은 북한이 자랑하는 최정예인 2군단과 4군단”이라면서 “적은 병력으로 상대방 핵심 전력과 대등하게 대치하며 최고의 효율을 보여주는 해병대 2사단 병력을 감축 및 재배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 전 사령관은 “전반적인 병력 감축 바람 속에서 해병대 전력을 유지·보존하거나 오히려 증강해도 모자랄 마당에 감축 논의가 있는 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해병대 2사단이 주둔하는 수도권 서북부를 비롯해 여단급 병력들이 주둔하는 서북 5도는 현대전에서 수도권 방호의 핵심이다. 상륙작전에 특화된 해병대는 ‘수륙 양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예 특수 부대다.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이곳의 해병대를 감축하면, 수도권 서북부를 방호하기 위한 육군 병력 수요가 훨씬 높아지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사단 병력조차 육군보다 적은 상황에서 북한 2개 군단과 대치하는 해병대 2사단의 감축과 재배치를 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한 안보단체 관계자는 “KIDA 연구 관련 소식을 듣고, 아무리 아이디어 차원이라도 누구를 위한 연구인가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면서 “이른바 ‘귀신 잡는 해병’으로 김일성이 두려워했던 전력을 최전방에서 빼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군이 병력을 감축한다고 핵심 전력에까지 손을 대려 한다면 그건 혁신이 아니라 퇴보”라면서 “군의 본질을 잘 살펴야 한다. 인력을 얼마나 많이 줄일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가 아니라 기존 방위 능력을 유지하면서 인력을 감축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되물었다.
“해병대 2사단을 후방으로 배치하면 최전선에서 귀신은 누가 잡나.”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