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럽게도 북한의 공격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첫 반응은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국군에 대한 당부였다. 그 발언은 국군의 적극적 대응을 원천적 봉쇄했고, 결국 우리는 북한의 무도한 공격을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과의 분쟁들에서 확전을 극도로 꺼려왔다. 천안함이 피폭되었을 때 이 대통령의 첫 발언은 “인명 구조가 우선이다”였다. 적군의 공격을 일상적 안전사고로 규정한 이 발언은 적극적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대통령이 보여온 이런 나약함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의 도발과 친북 좌익 세력의 비난을 꿋꿋이 견디면서 자신의 대북정책을 추구해 왔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그는 마음이 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황을 명쾌히 파악하는 정치 지도자다.
가장 호의적인 해석은 우리 시민들이 북한과의 전쟁을 너무 두려워해서 북한의 공격에 맞서는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대통령이 아주 깊이 새긴다는 것이다. 좌파 정권들이 편 유화 정책인 ‘햇볕 정책’은 우리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아무리 굴욕적이고 장기적으로 위험하더라도 전쟁을 회피하는 정책이 인기가 높다는 것을 아프도록 뚜렷이 보여주었다. 특히 “한나라당을 찍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좌파 야당들의 구호는 아주 효과적이어서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크게 졌다.
우리 사회에서 남북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흔히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이 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명제로부터 시작한다. 정치인들이므로, 이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그런 정치적 현실에 의해 엄격한 제약을 받고 차츰 전쟁 회피를 우선으로 삼는 정신적 상태 속으로 빠져들었을 터이다.
당연히 우리가 그런 함정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올바른 대응의 첫걸음이다. 북한의 위협과 공격에 대한 대응에서 궁극적 목표는 우리나라를 지키고 우리 후손들에게 삶의 터전을 물려주는 것이다. 전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피하는 것이야 물론 좋지만, 그것이 삶의 터전을 보존하는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북한과의 전쟁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미리 북한에 항복하는 것이다. 그런 논리가 냉전 시기에 유럽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죽는 것보다는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이 낫다(Better Red Than Dead)”라는 구호를 외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도덕에 어긋나는 일들 말고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도, 전쟁까지도, 미리 배제해선 안 된다.
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전쟁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전쟁에 대비하고 북한이 침공하면 끝까지 싸워서 이기겠다는 의지를 지니는 것보다 북한이 우리를 넘볼 수 없게 만드는 데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서양 격언대로, 영웅적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영웅적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북한에 대한 기대를 버린 이 대통령의 지도력에 기대를 건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