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글로벌 기업 19곳이 참석한 반도체 회의에서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 계획을 알리고 투자를 요청했다. 사진=AP/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은 12일(현지시간, 한국시간 13일 새벽 1시) ‘반도체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재한 이번 회의에는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지나 러만도 상무장관이 합석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도 회의 후반부에 잠시 참석해 발언했다.
업계에선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세계 1~2위인 대만 TSMC, 삼성전자와 정보기술(IT) 기업 HP, 인텔, 마이크론, 자동차 기업 포드, GM 등이 참석했다.
앞서 백악관은 이번 회의가 최근 반도체 칩 공급난과 관련, 업계 의견을 듣고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라고 밝혔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회의에서 지속적으로 미국의 공급망 복원이 중심이 된 투자, 인프라 등의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이번 반도체 문제를 단순한 칩 수급난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기초 인프라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의에서 직접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보이며 “내가 여기 가진 칩, 이 웨이퍼들은 배터리, 광대역이다. 이 모든 게 인프라”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강한 견제 심리도 숨기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여야 상·하원 의원 65명으로부터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 계획을 지지하는 서한을 받았다면서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지배하려는 공격적 계획을 갖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중국과 세계의 다른 나라는 기다리지 않는다. 미국이 기다려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반도체와 배터리와 같은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과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회의에 참석한 글로벌 기업 CEO들에게 직설적으로 투자를 요청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의 경쟁력은 당신들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며 “그동안 미국이 연구·개발에서 뒤처졌는데, 직설적으로 말해 우리는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미국 일자리 계획’을 통과시켜 미국에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 투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글로벌 기업, 의회와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 개최 전부터 삼성전자 등 기업들도 미국 내 투자 확대 압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희토류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품목의 공급망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대만 당국에도 증산을 요청하는 등 반도체 부족을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대응해왔다.
2조 달러 규모 경기부양안에서도 500억 달러를 반도체 생산·연구 부문에 편성하고, ‘반도체 생산촉진법(CHIPS for America Act)’을 통해 입법적으로도 연구개발 확대와 공급망 확보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을 입법화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의 발언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작업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행사 뒤에 ‘미국 일자리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 의원과 간담회도 개최했다. 이 역시 미국 중심 반도체 계획 및 인프라 예산 통과에 초점을 맞춘 일정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미 TSMC는 올초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공장 투자를 결정했고, 인텔은 이날 회의 직후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6~9개월 내에 공급 부족 사태를 빚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제조에 직접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인텔은 지난 3월 200억 달러(약 22조 6000억 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 2곳을 짓고 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부문인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미국에서 파운드리 신규 투자를 검토해왔다. 그러나 지난 2월 텍사스주 한파로 파운드리 공장이 가동중단되는 등 투자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국내 투자와 달리 해외 투자의 경우,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시장인 중국에 대한 고려 등 지정학적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다. 다만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삼성전자도 미국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조만간 추가 투자계획을 확정할 것이라는 게 반도체 업계 관측이다. 신규 투자 규모는 150억~200억 달러가 거론된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