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미용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등록한 A 씨는 한 달 만에 학원을 뛰쳐나왔다. 학원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A 씨는 그곳에서 개농장의 번식견을 만났다고 했다. 철창에 갇혀 평생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농장의 번식견이 비임신 기간에는 미용 실습견으로 동원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에 시작한 일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큰 후회와 충격으로 남았다.
종양을 달고 있는 애견 미용 학원 실습견. 출산하자마자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동물보호단체 ‘유기동물의엄마아빠’ 제공
A 씨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번식견이자 실습견으로 살아가고 있는 개들의 실상을 알렸다. 그는 “농장에서 데려오는 순간부터 충격적이다. 생리 중인 개, 임신한 개, 교배를 너무 많이 해서 성기가 튀어나온 개를 암수 구분 없이 같은 철창 안에 넣어 발정이 온 것까지 봤다. 개 위에 개를 켜켜이 쌓아 바닥에 발도 딛지 못하고 서로를 밟고 밟히며 뒤죽박죽 섞인 상태로 학원에 보내진다. 비임신 기간에 온다고 하지만 새끼를 밴 개도 많다”고 말했다.
철창 안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새끼를 낳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배에 실밥을 달고 온 개, 수술을 너무 많이 해 뱃가죽이 걸레짝이 된 개, 경매장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배에 숫자가 새겨진 개, 혀가 잘린 개, 눈이 찢어져 실명한 개, 다리 크기의 종양을 그대로 달고 온 개, 다리가 세 개밖에 없는 개 등 상당수가 미용보다는 치료가 시급한 상태였지만 이들은 병원 대신 실습대 위에 올랐다.
A 씨가 다녔던 학원의 경우 수강 이틀 차면 실습이 가능했다. 골격에 대한 이론을 배우고 뼈 구조를 암기하고 나면 곧바로 실습에 투입됐다. 환자나 다름없는 상태의 개가 학원을 고작 두 번 나온 수강생 손에 맡겨지는 셈이다. 사실상 주인이 없는 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 한 마리를 거쳐 가는 실습생은 최소 5명. 그마저도 개는 모든 수강생이 수업을 마칠 때까지 실습대 위에 있어야 했다. 먼저 초급반 수강생이 슬리커 브러시로 엉킨 털을 풀어내는 작업을 했다. 슬리커 브러시의 얇고 뾰족한 핀은 털 사이사이를 깊숙하게 파고 들어가 엉킨 털을 풀어주는 데 적합하나 조심하지 않으면 피를 내거나 눈을 찌르기 쉬웠다. 이 과정만 족히 4시간이 걸렸다.
털 빗기 실습을 마친 수강생이 자리를 떠나면 그 다음 수강생이 4시간 동안 서 있던 개를 목욕시킨다.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학원은 한여름이면 오물과 땀이 뒤섞인 끔찍한 냄새가 났다. 여기에 털을 말리는 드라이어의 열기까지 더해지면 사람과 개 모두 탈진해버리곤 했다는 것이 A 씨의 설명이다.
개는 지칠 대로 지쳤지만 실습은 끝나지 않는다. 목욕 실습을 마친 수강생 뒤로는 가위로 컷을 하는 수강생, 클리퍼(일명 바리깡)로 몸통만 미는 수강생, 마지막으로 온몸의 털을 다 미는 수강생이 차례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다. 가위질이 서툰 수강생들은 실습견의 살을 베거나, 젖꼭지를 자르는 등 상처를 입히기 일쑤였다. 평생을 뜬장(동물 사육 철창)에 갇혀 땅에 발 한번 디뎌 보지 못한 개들은 온몸에 힘을 주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예민한 개들은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지친 표정의 미용 실습견. 사진=동물보호단체 ‘유기동물의엄마아빠’ 제공
반면 고통에 익숙한 듯 무엇을 해도 미동이 없는 개도 있었다. 눈만 깜빡이는 살아있는 인형 같았다. 반복된 교배와 출산으로 뱃가죽에 실밥만 남은 개는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서투른 가위질에 살이 패여도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시체처럼 누워있는 개의 눈은 공허했다. 이런 개들은 사람을 봐도 매달리지 않았다.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개를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법을 가르쳤다. 개의 뒷다리를 잡아 물구나무를 서게 한 상태에서 미용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거꾸로 뒤집혀 앞발로 몸을 지탱하는 작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또 다른 제보자 B 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B 씨가 다닌 학원은 온수 시설이 부족해 겨울이면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로 목욕 실습을 하는 날이 빈번했다. 원장은 물을 데워서 쓰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다른 수강생의 일정까지 모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한쪽에서는 다리가 세 개밖에 없는 개가 장시간 미용을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어디선가 “똑바로 서있지 못 한다”는 고함이 날아왔다. 개는 바들바들 떨었다. 사나운 개는 기를 꺾어야 한다며 슬개골 부근을 비틀어 꺾는 강사도 있었다고 했다.
치료는 자체적으로 하거나 아예 하지 않았다. A 씨는 “미용 도중 실수로 실습견의 발톱이 뽑히거나 피가 나면 학원에 구비된 생체용 본드 혹은 지혈제를 발라 처리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상처가 아닌 이상 대부분 원내에서 치료했다”고 말했다. B 씨가 다닌 학원에서는 “다치면 다친 대로 두라”며 약조차 바르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이렇게 미용을 마친 실습견들은 한데 모아 번식장으로 돌려보내졌다. 돌아간 개들은 다시 교배와 출산에 이용됐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실습견이란 이름으로 학원에 돌아왔다. 결국 B 씨도 학원을 중도 포기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배움의 기대보다는 ‘오늘은 또 어떤 불쌍한 아이를 만나게 될까’하는 두려운 마음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기동물보호단체 ‘유기동물의엄마아빠’는 “고통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펫숍에서 강아지를 구매하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애견 미용학원의 실습 행위를 ‘최소한의 관리’이자 ‘봉사’라고 반박하는 쪽도 있다. 송파구의 한 현직 애견미용사는 “개농장을 운영하는 견주들은 몇 백 마리의 개를 사육에 가깝게 기른다. 농장주가 그 아이들을 직접 씻기고 미용시키려면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기본적인 관리조차 해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이유로 실습견이 필요한 학원에서 봉사의 개념으로 데려와 관리해주는 것이다. 이들은 미용 실습이 아니면 철창 밖을 나올 기회조차 없다. 이렇게라도 땅을 한번 밟아보고 목욕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학대를 하고 있다는 일부 학원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건강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개들이 실습에 동원되는 일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유권이 견주에게 있기 때문에 수강생들이 마음대로 병원에 데려가거나 할 수도 없다. 다만 미용 과정에서 다리를 꺾거나 힘으로 제압을 하는 등의 행위는 명백한 학대다. 이런 학원들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애견 미용사들이 오해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의 부재도 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 미용업자는 동물의 건강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설 및 설비를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미용학원의 경우 사업장이 아닌 교육기관으로 분류돼 해당 규정의 적용이 불가한 상황이다.
한편 한국애견협회는 2019년 말부터 애견미용사 실기 시험에 위그(모형견)를 도입해 실제 개로 시험 보는 것을 중단했다. 실습 과정에서 동물 학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수렴한 것이다. 또 다른 대표 단체인 한국애견연맹의 경우 3급 시험에서만 위그를 허용하고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