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소원이 ‘아내의 맛’에서 보여준 일상이 대부분 가짜 설정으로 드러나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과거 비슷한 사례들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tvN 대표 예능으로 꼽히는 ‘삼시세끼’와 ‘윤식당’ 시리즈 성공의 주역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에서 의도적으로 자막을 오역해 내용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됐다. 출연자 검증에 실패해 조작 방송을 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여행 콘셉트의 리얼리티 예능의 시대를 연 KBS 2TV ‘1박2일’과 SBS ‘패밀리가 떴다’가 미리 짜인 구성안의 대본을 충실히 따르는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함소원은 햇수로 3년 동안 18살 연하인 중국인 남편 진화와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아내의 맛’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줬다. 하지만 방송에서 보여준 함소원의 생활이 대부분 ‘설정’으로 이뤄졌다는 폭로가 이어지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함소원은 ‘아내의 맛’에서 하차했고 TV조선은 ‘아내의 맛’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사진=TV조선 ‘아내의 맛’ 방송 화면 캡처
#‘아내의 맛’ 폐지
함소원이 4월 13일 자신을 비방한 누리꾼을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고소했다. 악의적인 글을 게시판에 올린 이들에 대해 선처 없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여론은 싸늘하다. 대중에게 거짓된 일상을 소개하고 그로 인한 후광효과를 톡톡히 누린 장본인이 다름 아닌 함소원이기 때문이다.
함소원은 햇수로 3년 동안 18살 연하인 중국인 남편 진화와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아내의 맛’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줬다. 연상연하 커플이 서로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는 일상이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고, 함께 사는 시어머니와의 고부관계도 줄곧 화제를 모았다. 2020년 ‘아내의 맛’ 시청률이 10% 안팎을 오가는 등 인기를 누린 배경 역시 함소원과 그 가족의 활약 덕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방송에서 보여준 함소원의 생활이 대부분 ‘설정’으로 이뤄졌다는 폭로가 이어지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시부모 소유로 소개돼 부러움을 샀던 고급 별장은 알고 보니 공유숙박업소로 드러났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선물하는 것처럼 묘사된 빌라 역시 처음부터 함소원의 소유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함소원은 시어머니의 동생인 척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다. 동시다발 터지는 논란에 함소원은 ‘아내의 맛’에서 하차했지만 이후 SNS 활동을 계속하면서 비판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조작 방송 오명 속에 결국 TV조선은 ‘아내의 맛’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아내의 맛’ 제작진은 “모든 출연진과 촬영 전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인터뷰에 근거해 에피소드를 정리하고 촬영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만 출연자의 재산이나 기타 사적인 영역에 대해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이기에 제작진이 사실 여부를 100% 확인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일부 과장된 연출에 대해서는 사과했지만, 제작진이 출연진을 선정하고 에피소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조작 논란을 전적으로 함소원 탓으로 돌리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제작진의 책임감 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여론과 함께 조작 방송으로 시청자를 속이는 행태를 제재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2018년 방송된 tvN ‘윤식당2’에는 한식당을 찾은 한 독일인 남성의 발언이 나오는데 방송에선 “여기 잘생긴 한국 남자가 있네”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독일인이 실제로 한 말은 ‘잘생겼다’가 아닌, 비하의 의미의 ‘게이(gay)’라는 뜻으로 드러났다. 사진=tvN ‘윤식당2’ 방송 화면 캡처
#나영석 PD 예능도 소환
함소원과 ‘아내의 맛’ 사태로 인해 예능프로그램 전반으로 그 의혹은 확산되는 가운데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이 논란에 직면했다. 제작진이 원하는 방향을 위해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발언을 왜곡하고 조작한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면서다. 2018년 방송된 tvN ‘윤식당2’가 대표적이다.
‘윤식당2’는 배우 이서진, 박서준 등이 스페인의 한 작은 마을에 한식당을 차리고 외국인 손님들을 맞는 내용이다. 한식을 접한 외국인들의 생생한 반응을 담아내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 상황을 잘못 묘사하거나 전달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조작 방송이라는 오명을 썼다.
문제가 되는 내용은 한식당을 찾은 한 독일인 남성의 발언을 전달한 자막 부분이다. 이 남성이 서빙을 하는 이서진을 향해 내뱉은 말을 제작진은 “여기 잘생긴 한국 남자가 있네”라고 번역해 자막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독일인이 실제로 한 말은 ‘잘생겼다’가 아닌, 비하의 의미의 ‘게이(gay)’라는 뜻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독일 여성은 “여기 사람들 팬케이크 못 만드네”라고 말했지만, 제작진은 이를 “이 팬케이크 정말 잘 만들었어”라는 자막으로 내보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걸러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실제 발언과 전혀 다른 뜻으로 자막을 달아 제작진 의도대로 내용을 조작했다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윤식당2’의 해당 방송 장면을 유튜브 등에서 삭제하면서 실수를 자인했다.
예능의 조작 의혹은 출연진끼리 상황을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리얼 버라이어티, 일상을 들여다보는 관찰 예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꾸준히 제기됐다. ‘리얼’을 기대한 시청자의 믿음을 저버려 뭇매를 맞은 경우도 있다.
2009년에는 ‘패밀리가 떴다’ 출연진들의 대사가 담긴 대본이 유출돼 논란에 휘말렸다. 특별한 구성 없이 출연자들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인기를 구가했지만 알고 보니 출연자 개개인의 말 한마디까지 주어진 대사를 따른 것이란 사실이 드러나나 시청자에게 충격을 안겼다. 대사뿐만 아니라 출연진 개개인이 취해야 하는 행동, 지문까지 명시돼 배신감까지 줬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방송한 tvN ‘화성인 바이러스’는 진위 논란이 가장 많은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내용이지만 출연진의 거짓말 논란에 자주 휘말렸다. 홍보 등 특정한 목적을 위해 출연한 이들도 많았고, 간혹 작가 등 제작진이 강요해 무리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꾸렸다는 폭로도 잇따랐다.
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 관계자는 “아무리 리얼리티를 추구한다고 해도 설정이 가미되지 않는 예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극적인 재미를 위한 설정이 아니라 시청자를 속이는 수준의 거짓말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출연자의 말에만 기대지 않는 제작진 나름의 신중한 검증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