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도깨비’, 영화 ‘부산행’·‘82년생 김지영’에 이어 장르 불문 종횡무진하고 있는 배우 공유는 첫 SF영화 ‘서복’으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다른 작품보다 감정선을 잡고 가는 것이 좀 더 어렵게 느껴진 게 있었어요. 기헌은 다혈질적인 면이 있는 캐릭터고 또 감정의 급변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연기해야 했지만 상대역인 서복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함께하지만 혼자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죠(웃음). 다만 (박)보검 씨는 보검 씨대로 또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뭔가 애매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안 난 것도 아니고… 기계적인 것 같지만 감정을 또 녹여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또 힘든 점이 있었겠죠.”
영화 ‘서복’에서 공유는 전직 정보국 요원이자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시한부 환자 민기헌 역을 맡았다. 국가 기밀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 분)을 안전한 곳까지 이동시키라는 마지막 임무를 받은 그는 생애 마지막 여정이 될지도 모르는 길을 뜻하지 않은 동행인과 함께하게 된다. 유한한 삶 속에서조차 데드라인을 선고 받은 인간과 무한하게 영생을 살아가야 하는 복제인간의 아이러니한 동행인 셈이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기헌은 끊임없이 찾아오는 고통과 발작을 이겨내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까지 복용해야 하는 인물이다. 분장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많이 상한’ 모습을 표현해 내기 위해 공유는 약 4개월 동안 체중 감량에 도전해야 했다고. 그동안 현장에서 함께 먹고 마실 수 없음을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 꼽기도 했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기헌을 연기하기 위해 공유는 약 4개월 동안 체중 감량에 나섰다고.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불신지옥’ ‘건축학개론’에 이어 ‘서복’으로 9년 만에 돌아온 이용주 감독은 시나리오 구상 단계서부터 공유와 박보검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에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한 차례 고사했다는 공유가 마음을 바꿔 출연을 결정하게 된 것도 이 감독의 ‘삼고초려’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공유는 “방향성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출연을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유독 ‘서복’이 제게 숙제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 질문에 답을 하려 하니 대답이 잘 안 나왔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다 감독님을 만났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까’라고 물었는데 제가 나름대로 해석했던 방향성이 감독님 말씀에서도 묻어나더라고요. 그렇다면 제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아서 ‘같은 생각이시라면 같이 가겠다’고 했어요. 만일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계셨다면 출연을 안 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가장 우려했던 지점에 대해 진지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복제인간이라는 캐릭터성에 맞춰 감정 기복이나 표정 변화가 적은 서복에 비해 매우 다혈질적이고 예민한 기헌이 너무나도 쉽게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또 감화되는 모습에 설득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기헌을 맡은 제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감독님께 말씀드렸어요. ‘관객이 기헌이 돼서 서복을 바라보는 게 중요 포인트인데, 관객이 기헌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기헌이 되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이 우려가 정말 컸거든요. 그렇기에 처음 기헌이 등장할 때부터 관객들이 기헌의 고통을 오롯이 본인의 통증처럼 느끼길 바랐어요. 연기도 그렇게 중점을 뒀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 첫 호흡을 맞춘 상대역 박보검에 대해 공유는 “애교가 넘치는 친구”라고 표현했다.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저는 후배한테 그렇게 권위적인 선배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웃음). 나이가 들고 점점 후배를 대하는 상황이 더 많아지면서 요즘 제 눈엔 다 예뻐 보이거든요. 보검 씨와의 케미스트리는 입이 아플 정도로 자연스럽고 편해요. 워낙 상대를 배려하는 유형의 사람인지라 저와도 잘 맞았고, 그리고 생각보다 애교가 참 많은 친구예요. 저도 남자 후배랑 처음으로 하는 거여서 처음엔 그 애교가 당황스러웠는데, 제가 애교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웃음). 그래도 보검 씨의 그런 살가움 덕에 현장 분위기도 밝아지고 함께하는 케미도 좋아졌던 것 같아요. 저를 어려워하지 않아서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박보검과의 브로맨스가 가미된 SF도 나름 성공적으로 끝낸 공유는 올해만 같은 장르의 2개 작품 공개를 앞두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와 박보검과 재회하는 영화 ‘원더랜드’다. 한국형 좀비물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평가 받은 ‘부산행’부터 사회적 이슈가 됐던 ‘82년생 김지영’에 이르기까지 최근 공유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종횡무진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공유에 대한 호감이나 판타지를 넘어선 무언가를 찾는 그만의 여정처럼 보였다. 그런 공유의 최근 관심사를 물었다.
“악역을 아직 안 해 봤어요. 뭔가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악역을 선택하는 데 좀 더 신중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역할에 대한 궁금함도 있고요. 캐릭터 말고 장르에서는 저 정말 B급 코미디를 해 보고 싶어요. 약간 루저 같은 캐릭터에 애착이 있거든요(웃음). 제가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는데 그 장르에서 보면 멀쩡하게는 생겼는데 루저인 캐릭터들이 나오잖아요. 그런 걸 꼭 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건 다들 제작들을 잘 안 하시더라고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