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아직도 강에 나가면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물고기를 몰고 물고기를 잡는 날에는 강가에서 활짝 핀 꽃을 따서 화전놀이를 하며 봄을 즐겼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요즘에는 배를 타고 나가 하룻밤만 그물을 쳐 놓아도 모래무지, 동자개, 피라미, 꺽지, 쏘가리, 누치가 한가득 걸려든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압록마을에 찾아온 봄은 변함없이 풍요롭다.
한삼호 씨가 어렸을 적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 민물고기를 뼈째 다져서 넣어 양을 늘렸다. 식구는 많고 고기는 적으니 그 옛날에는 그랬을 법도 하다. 이 댁의 큰며느리 이예순 여사는 민물고기 서너 마리만 있어도 열 식구 배불리 먹였다고 한다. 큰 그릇에 이 맘 때 나는 푸성귀를 가득 준비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을 더해줄 무채를 넉넉하게 넣는다.
여기에 잘게 다진 민물고기를 넣어 어머니의 손맛으로 조물조물 무쳐내면 민물고기뼈채무침을 맛볼 수 있다. 이맘때쯤 섬진강에는 소가 밟아도 안 깨질 정도로 단단하고 속이 꽉 찬 섬진강 참게가 올라온다. 참게는 힘이 좋아 껍질도 단단하고 육질 또한 쫄깃쫄깃해서 민물고기와 함께 탕으로 끓여내면 국물 맛이 아주 일품이다.
다진 민물고기를 완자로 빚어내 들깨국물과 함께 보글보글 끓여내면 섬진강의 오랜 세월과 추억을 맛볼 수 있다.
한편 매일 아침 9시면 섬진장에 배를 띄우는 정종규씨는 28년 경력 벚굴잡이다. 벚굴은 강에서만 나는 굴로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 서식하는데 양식하지 않기 때문에 굴의 10배에 달하는 크기로 유명세가 상당하다.
하지만 올해 벚굴 수확량은 작년의 25% 수준이다. 수해로 인해 폐사하건 쓸려나간 벚굴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정종규씨는 매일 오전 9시면 잠수복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28년 벚굴잡이가 어느새 체질이 됐다는 그는 변치 않는 섬진강이 있어 노후 걱정이 덜었다며 오히려 함박웃음을 짓는다.
소소하지만 변치 않는 것의 미덕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섬진강은 삶의 버팀목이 된다. 섬진강의 미덕을 밥상 위에 올려본다.
벚굴은 이맘때가 제철! 산란기에 접어들면 벚굴은 알을 품어서 사람이 먹기에는 적당하지가 않다. 그래서 정월부터 이맘때가 딱 먹기 좋은 상태다. 벚굴은 큼직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매력이다.
참깨를 이용해 굴의 수분을 잡아주고 갖은 채소에 초고추장을 올려준다. 벚굴을 올려 뭉개지지 않게 살짝 버무려 주면 하동의 봄을 알리는 벚굴회초무침이 완성된다.
벚굴의 크기가 매우 커서 하나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다. 이 벚굴에 밀가루를 듬뿍 묻혀 수분을 잡아준 뒤 벚굴이 살짝 익었다 싶었을 때 먹으면 쫄깃한 식감도 벚굴의 그윽한 향도 일석이조로 즐길 수 있을 터. 섬진강의 은은한 맛을 머금은 재첩과 벚굴이 더 해지면 섬진강의 풍미가 더해진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