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아동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 점 역시 디지털 성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고 보도했다. 등교를 하지 않게 되면서 자연히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성년들이 인터넷 곳곳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아동 성범죄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할 때 더욱 위험해진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아동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 점 역시 디지털 성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사진=박은숙 기자
독일 니더작센주 로네에 거주하는 ‘엠마’는 예쁘장하게 생긴 열다섯 살 소녀다.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엠마는 재치 넘치는 글을 쓰는 덕에 또래 여자아이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엠마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으면 ‘왓츠앱’의 비공개 그룹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놀자고 제안한다. 그룹 채팅방 이름은 ‘소녀그룹’이다. 단, 조건이 있다. 반드시 입장할 때는 본인 사진을 올려야 한다. 이렇게 채팅방에 들어온 소녀들은 지금까지 100명 정도가 된다.
그룹 채팅방에서 엠마는 간혹 몇몇 소녀들에게 개인 쪽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는 사진을 더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예를 들면, 상의를 벗은 사진이나 알몸, 혹은 알몸을 촬영한 동영상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런 요구를 듣고는 “왜?”라고 묻거나 아니면 “싫은데”라고 거부했다. 그러면 엠마는 이렇게 말했다. “에이, 그냥 장난이었어.”
장난이라고 말했지만 엠마는 상대가 거절할 경우에는 오히려 자신의 알몸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를 본 11~14세 소녀들 가운데 몇몇은 이에 동참하기도 했다. 소녀들은 알몸 셀카를 찍거나 야릇한 성관계 포즈의 동영상을 촬영 후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소녀들은 덫에 걸렸다.
사실 엠마는 소녀가 아니라 26세 남자였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은둔형이었던 그는 직업이 없는 전과범이었다. 그는 한 번 미끼를 문 소녀들을 상대로 끈질긴 협박을 하면서 계속해서 은밀한 사진과 동영상을 요구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협박했다.
“네 알몸 사진을 인스타그램이나 스냅챗 같은 SNS에 올려버리겠다. 아니면 네 부모님한테 보내버릴 테다.”
먹잇감이 된 소녀들은 공포감과 수치심에 점점 더 과격해지는 그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한 소녀는 변기물을 마시는 장면을 촬영해서 보여줘야 했으며, 또 어떤 소녀는 어린 동생의 알몸 사진을 찍어서 보내줘야 했다.
이런 ‘사이버 그루밍’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범죄 행위라고 ‘슈테른’은 비난했다. 공갈협박이란 게 항상 그렇듯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범죄는 소녀가 쓰러질 때까지, 아니면 부모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범죄 행위가 알려진 경우에는 모든 일이 신속히 진행된다. 경찰이 용의자의 IP주소를 추적하기 시작하면 범인을 찾는 작업은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된다.
브란덴부르크의 경찰대학에서 사이버범죄학을 연구하고 있는 토마스-가브리엘 뤼디거는 ‘사이버 그루밍’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다. 뤼디거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아동이라면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높은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강조한다. 전세계 인터넷망에는 음흉한 마음을 먹고 이들에게 접근하려는 잠재적 범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2019년 ‘EU 키즈 온라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2~14세 아동의 21%가 온라인상에서 누군가로부터 음란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2018년 오스트리아의 ‘SOS 킨더도르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11~18세 아동 및 청소년의 약 14%가 온라인에서 성적으로 불쾌한 일을 당했다고 답했다.
또한 2020년 말, ‘플랜 인터내셔널’은 15~25세의 독일 소녀 및 여성 약 70%가 온라인상에서 성적으로 불쾌한 일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뤼디거는 “이런 설문조사는 사실 완벽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많은 아동이 상대의 접근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심각해진 문제는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이버 그루밍의 피해자가 되는 아동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자동번역기로 인해 언어의 장벽이 사라졌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까닭에 현재 이런 음란 메시지는 전세계 아동들에게 무차별로 전송되고 있다.
사이버 그루밍에서 자유로운 공간은 거의 없다. 심지어 겉으로 보면 무해하고 안전해 보이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스냅챗 등도 마찬가지다. 사진=임준선 기자
온라인 게임에서도 비슷한 일은 종종 벌어진다. 매춘부와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장면이 노출되거나, 폭력이 난무하거나, 심지어 고문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 게임을 하는 아동들은 가상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어른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돈을 주고 아이템을 구입하는 게임인 경우에는 ‘그루머’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다. ‘그루머’들은 돈이 부족해 아이템을 구입하지 못하는 아동들에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주면 용돈을 주겠다고 유혹하기도 한다.
최근 베를린 법정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25세 남성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플레이스테이션 비디오 게임을 하다 만난 10세 소년을 성폭행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게임 속에서 만난 아동들을 상습적으로 유혹해 핸드폰 번호를 받아냈던 그는 10세 소년에게도 똑같은 수법으로 접근했다.
소년은 자상한 삼촌처럼 고민을 들어주는 남성에게 점점 의지했으며, 뛰어난 게임 실력에 반해 친구가 됐다. 결국 부모님을 졸라 집으로 남성을 초대했던 소년은 게임 친구였던 그에게 방안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말았다.
독일의 경우, 사이버 그루밍은 최소 3개월에서 최대 5년 징역형에 처해지는 강력 범죄에 속한다. 하지만 모든 범죄 행위가 처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니다. 2018년의 경우, 사이버 그루밍 범죄 가운데 1754건만이 검찰에 기소됐다. 이에 대해 뤼디거는 “디지털 성범죄는 은밀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아동들은 이 사실을 부모에게 거의 알리지 않는다. 때문에 처벌받는 경우도 드물다”라고 설명했다.
피해 아동들이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수치심 때문이거나 놀림이나 비난을 받을까 무서워서다. 혹시 사실을 알리면 부모님이 인터넷 사용을 엄격히 제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
또한 놀이터와 같은 오프라인 장소는 성범죄 전과자를 감시하는 엄격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이런 장치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위해 뤼디거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미디어 활용능력을 가르치는 일종의 디지털범죄 예방 수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잠재적 희생자만이 아니라 잠재적 가해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 사이버 그루밍 용의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미성년자로, 이들은 종종 성범죄와 불쾌하긴 하지만 합법적인 장난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부모는 자녀가 사용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어떤 성격인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자주 대화를 나누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꼭 알려야 한다는 조건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사이버 그루밍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후유증이다. 한번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정신적 충격과 상처가 오래 지속된다. 성범죄에 희생을 당하는 아동은 순진한 아이거나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학교에서 외톨이인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터넷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우쭐해지면서 좋은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에 감동받게 된다.
하지만 믿었던 친구가 자신을 이용했고,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충격은 헤아릴 수 없이 커진다. 이때 느낀 공포감과 수치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야 치유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어쩌면 평생 남을 수도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