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보니 부작용도 끊이지 않았다. 주로 막강한 권력에 따른 폐해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정희 전 대통령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이다. 차지철 전 실장이 자신의 지휘 아래에 있는 군·경찰부대를 만들고, 이들을 동원해 국군의 날 서열식을 본떠 매주 금요일 경복궁 연병장에 정·재계 인사를 초청해 자신만의 ‘하기식’을 열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대통령경호실장.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경호처장 주영훈 전 처장은 2020년 5월 교체 당시 각종 구설에 오르내렸다. 경호처 시설관리팀 소속 무기계약직 여성 직원을 본인 관사로 출근시켜 가족의 빨래와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등을 대신하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주 전 처장 아내가 청와대 경호원 체력단련 시설인 연무관에서 훈련·재활을 담당하는 체력담당 교관에게 허리 치료를 받았다는 의혹도 떠올랐다. 논란이 커지자 주 전 처장은 경호처 직원들 휴대전화 감찰 등으로 ‘제보자 색출’에 나서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결국 당시 대통령경호처 차장이던 현 유연상 처장을 임명했다. 청와대는 당시 “경질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주 전 처장 교체를 두고 ‘사실상 경질’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처장 교체는 문 대통령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 전 처장은 문 대통령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던 인물이었다. 대통령경호실 공채로 청와대에 들어온 주 처장은 2003년 2월 25일부터 2008년 2월 24일까지 노무현 정부에서 ‘가족부장’이라 불렸던 안전본부장으로 대통령 관저 경호를 담당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주영훈 전 경호처장. 사진=연합뉴스
주 전 처장은 2017년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광화문대통령 공약기획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엔 곧장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발탁돼 문 대통령을 3년 넘도록 경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임기가 끝날 때까지 주 전 처장이 대통령 옆을 지킬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 정치권 인사는 “경호처장은 대통령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만큼 개인적인 인연과 무한한 신뢰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만큼 경호처장이 구설에 휘말리면 정치적 타격이 곧장 대통령에게 올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대통령경호처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건 박정희 전 대통령 때다. 1961년 5월 군사 쿠데타로 전권을 장악한 박 전 대통령이 ‘국자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하자 박종규 육군 소령을 중심으로 ‘의장경호대’가 창설됐다.
이후 중앙정보부 산하 기관으로 운영되던 의장경호대는 1963년 12월 ‘대통령경호실법’이 만들어진 뒤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이 됐다. 초대 대통령경호실장은 군사 쿠데타 당시 장면 국무총리를 사로잡기 위해 무장한 채 반도호텔 808호를 습격했던 홍종철 실장이었다. 홍 실장이 육군 준장으로 전역한 직후였다.
그 이전 이승만 전 대통령 경호는 경찰이 맡았다. 1949년 2월 청와대 안에 창설된 ‘경무대경찰서’가 대통령 경호를 담당했다. 4·19 혁명으로 제2공화국 수립된 뒤인 1960년 6월부턴 서울특별시청 경찰국 경비과 ‘특정지역 경찰관 파견대’가 국가 원수를 경호했다.
장세동 전 대통령경호실장. 사진=연합뉴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호처장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경호처장 예우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과 대통령책임제인 우리나라에선 경호처장의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맞붙었다. 현재 경호처장은 차관급이지만 역대 경호처장은 장관급과 차관급을 오갔다.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경호실로 창설됐다. 당시 경호실장은 차관급이었다. 3대 실장인 차지철 실장이 스스로 장관급으로 격상하면서 경호실장은 줄곧 장관급 예우를 받아왔다.
장관급 예우를 받는 대통령 최측근 군인 출신 장성이었던 경호실장의 위세는 대단했다. 군사정권 시절엔 늘 2인자로 꼽힐 정도였다. 3대 경호실장인 차지철 전 실장은 작은 대통령이라는 뜻에서 ‘소통령’이라 불리기도 했다.
김계원 당시 비서실장이 10·26 수사 과정에서 남긴 증언에 따르면, 차지철 실장은 함께 운동을 한 당시 백두진 국회의장이 샤워장에서 빨리 나오지 않자 “이 늙은이가 무엇을 우물우물하는가.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호통 친 일도 있다. 그의 월권과 전횡은 10·26 사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경호실장은 때론 과잉 충성으로도 도마에 올랐다. 전두환 정부 실질적 2인자였던 장세동 경호실장이 대표적 사례다. 장세동 전 실장은 이른바 ‘심기 경호’를 펼쳤다. 대통령 마음이 편안해야 국정도 잘 되니 심기까지 경호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장세동 전 실장은 전두환 씨가 산책하다 돌부리에라도 걸리면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며 도로 평탄화 작업을 지시하는가 하면 대통령이 찾으면 5분 이내로 갈 수 있게 항상 대기했다고 알려졌다.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전 씨와 똑같은 향수를 뿌렸다고 한다.
경호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총신이 긴 스웨덴제 권총을 두 자루씩 차고 다녀서 ‘피스톨 박’이라 불렸던 박종규 경호실장은 1974년 8월 있었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경질됐다. 당시 박 전 실장은 저격범인 문세광이 총을 쏠 때 대통령이나 영부인을 먼저 몸으로 막아야 한다는 기본 수칙을 어기고 곧바로 범인에게 달려들어 맞대응 사격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전 경호실장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경호실장이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내려간 건 이명박 전 대통령 때였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경호실을 대통령비서실 아래 대통령경호처로 격하했다. 해외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경호처장 위상이 불필요하게 높다는 지적이 반영됐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비서실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대통령경호실로 격상했다. 경호실장은 다시 장관급 대우를 받았다.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대통령경호실을 경찰로 이관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당시 대통령경호실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등 청와대 ‘보안손님’ 출입을 검문이나 기록 없이 허용하는 바람에 국정 농단 사태 단초를 제공했다는 질타를 받았다. 대통령 명령을 온전히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대통령경호실을 대통령경호국으로 낮춰 경찰로 이관할 계획을 밝혔지만 지켜지진 않았다. 부작용 우려 때문이었다. 1980년부터 17년간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한 김두현 한국체육대학교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2017년 1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대통령 경호권이 경찰 하부조직으로 가면 권력이 집중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며 “권력의 힘은 정보인데 경찰이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남용할 경우 과거 군사 쿠데타와 같이 ‘제2의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연상 경호처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경호 업무 경찰 이관을 포기하는 대신 대통령경호실을 대통령경호처로 다시 내렸다. 이명박 정부 때와 다르게 대통령비서실과 더불어 독립된 기관으로 뒀다. 대통령경호처 독립성을 부여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경호실장 위상은 변화했다. 김영삼 정부 전까지 대통령경호실장을 역임한 8명은 모두 현역이나 예비역 장성이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처음 경호공무원을 공개 채용하면서 직업 경호 제도가 정착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군 출신이 아닌 경호관을 경호실장으로 발탁했다.
2005년 3월엔 대통령경호실법이 개정되면서 현역 군인이 대통령경호실장으로 임명될 수 있는 길을 원천 차단했다. 군인의 정치적 등용문으로서의 경호실장은 막을 내린 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군인 출신 경호실장을 등용하지 않은 정부는 없다. 유연상 경호처장이 임기를 이대로 마친다면 유일하게 문재인 정부가 군인 출신을 등용하지 않은 첫 사례가 될 수 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