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포상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정황이 속속 포착되는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포상을 위해 대상자 공개 검증을 실시했다. 포상 대상자들의 명단과 공적 개요 등을 공개했다. 정부 포상의 공정성을 제고하려는 조치다. 장애인의 날 정부 포상 공개검증은 2월 17일부터 3월 13일까지 진행됐다. 이 자료를 보고 국민들은 담당자 이메일이나 홈페이지 의견 작성란을 통해 명시된 기간 동안 포상자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정부 포상 공개검증엔 파일이 첨부된다. 포상 대상자들의 소속과 성명 그리고 주요 업적에 대한 개요다. 이 자료엔 휴대전화 번호나 개인 이메일이 적혀 있진 않아 개인정보보호법 상으론 아무런 절차적 이상이 없다. 이 명단은 확정된 포상 대상자가 아니다. 국민 의견 개진과 기타 절차를 통해 최종적인 포상 대상자가 결정된다. 이런 가운데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은 ‘작은 틈’을 노린다.
경찰 관계자는 “성명과 소속, 소속 기관 정보를 토대로 유선 전화번호를 파악하면 보이스피싱의 제반사항이 갖춰진다”고 경고했다. 소속 기관의 유선 번호는 검색을 통하면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을 시도하는 이들은 해당 기관에 전화를 걸어 정부 포상 대상자와 통화를 시도한다. 포상 대상자와 직접 연결이 되는 경우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은 포상 대상자들에게 “정부 포상 심사위원과 잘 아는 사이”라면서 “잘 얘기해 줄 테니 물건을 사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포상자 공개검증 홈페이지 화면. 사진=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갈무리
공개검증에 들어간 포상 대상자의 경우 ‘울며 겨자 먹기’로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의 상품 구매 요구에 응하는 경우가 있다는 후문이다. 포상 대상자에 올랐던 한 사회단체 관계자는 “포상 대상자가 된 입장에서 이런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원래 정부 포상이 이런 절차로 진행되는 건가’ 하고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부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요구에 응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요구에 응한 일부 피해자들 입장은 난감하다”면서 “실제 정부 포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다고 해도, 이런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피해를 입었다고 알리는 것 자체가 정부 포상 대상자들 입장에선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면서 “포상 대상자들의 이런 심리적 상태가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에겐 공략하기 딱 좋은 최적의 먹잇감이 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엔 장애인의 날 정부 포상 대상자를 겨냥한 보이스피싱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이런 범죄 사실에 대한 공론화를 꺼렸다. 취재 결과 포상 대상자를 대상으로 ‘비누 세트’ 강매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정부 포상자 공개검증 자료엔 포상 대상자의 소속과 직급 성명과 공적사항이 굉장히 자세하게 노출돼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갈무리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는 “전화를 한 사람이 자신을 정부 포상 심사위원이라고 주장하며 ‘잘 봐주겠다’는 식으로 물건을 강매했다”면서 “2만 원도 안 되는 비누세트를 15만 원 정도 가격에 사라고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제보자는 “마치 물건을 사지 않으면 정부 포상 점수에 피해가 있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전화를 걸어 ‘비누 세트’를 사라고 요청한 사람이 내 공적사항과 소속에 대해서도 너무 자세하게 잘 알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상대는 내 정보를 꿰뚫고 있어 ‘보이스피싱’이란 의심을 할 여지가 생기지 않았다. 솔직히 인간이라면 포상에 대해 욕심이 나는 상황 아닌가. 그 순간엔 정말 정부 포상 심사위원이라고 생각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 포상을 받는 과정에서 포상 검증에 명시해야 할 정보는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면서 “정부가 포상의 공정성을 위해 공개하는 정보가 되레 포상 대상자들을 보이스피싱 피해 위험군으로 몰아넣을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뿐 아니라 다른 정부 부처에서 포상을 할 때도 똑같은 검증 절차가 이뤄진다”면서 “정부 포상 대상자들이 놓인 상황적 특성 상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의 보이스피싱 시도가 적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피해 사례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오지만, 막상 신고로 연결돼 수사에 돌입하는 건은 전무한 상황”이라면서 “정부 포상 시스템에 존재하는 작은 틈을 노려 범죄를 시도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 포상 심사위원이 점수를 미끼로 물건을 강매하는 것은 보이스피싱 여부를 증명하는 것과 상관없이 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