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선출된 윤호중 신임 원내대표가 두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박완주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원내대표 선거에선 이변이 종종 일어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1년 주류 친이계 지원사격을 받았던 안경률 전 의원이 비주류 황우여 전 의원에게 패했던 게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후 실시했던 민주당의 원내대표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당권파 친문 김태년 의원이 친문 직계 전해철 의원을 누르고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 때 초접전 또는 전 의원 우세가 예상됐지만 김태년 전 원내대표가 1차 투표에서 과반 이상을 얻었다”면서 “전체 의원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초선 의원들이 대부분 친문으로 분류됐기에 전 의원이 유리할 것이란 관측이었지만 이는 빗나갔다”고 떠올렸다.
이는 원내대표 선거가 계파 간 이해관계뿐 아니라 후보 개개인의 선호도 따라 좌우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주류 인사에 대한 견제 심리가 발동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여의도에선 원내대표 선거를 두고 ‘사실상 인기투표나 다름없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돈다.
윤호중 의원이 일찌감치 김태년 전 원내대표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 풀이된다. 윤 원내대표는 우선 주류인 친문 지원을 받았다. 또 계파를 떠나 소속 의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사위원장을 맡았던 윤 원내대표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에 남아 있는 입법 과제를 마무리해야한다는 공감대도 퍼져 있었다.
그런데 돌출 변수가 등장했다. 민주당은 4월 7일 재보궐 선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고, 당은 쇄신안 등을 놓고 내홍이 불거졌다. 초재선 의원들, 비주류 중진들은 성명서를 발표해 ‘민심’을 받아들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친문 진영에선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말라는 ‘당심’에 무게를 뒀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 놓여 있던 친문과 비문 간 갈등이 고개를 든 셈이었다.
4월 16일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후보로 나선 윤호중 박완주 의원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사실 초선 의원들 중 상당수는 주류인 친문 성향에 가깝다. 이들은 지난해 이해찬 전 대표 시절 치러진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재보선 후 벌어지고 있는 당내 상황을 친문과 비문 대결로 볼 수 있느냐는 물음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이렇게 귀띔했다.
“굳이 어느 계파에 속해 있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초선 동료 의원들이 거의 그렇더라. 초선들을 친문-비문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런데 어느 순간 ‘비문’으로 분류돼 공격을 받았다. 이번에 조국 사태를 거론했던 이른바 ‘초선 5적’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게 친문 패권주의인가 싶더라. 반대를 하면 ‘비문’으로 낙인이 찍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모두가 입을 닫고 있다.”
재보선이 끝난 후 당내에선 조국 사태,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초선 의원 5명은 성명서를 통해 패배 원인 중 하나로 조국 전 장관을 언급했다. ‘검찰개혁 시즌2’에 대한 속도조절, 재보선 공천 당헌 개정을 밀어붙인 친문 강경파 인사들의 2선 후퇴와 같은 목소리도 뒤를 이었다.
그러자 친문 지지층으로 이뤄진 권리당원들의 융단 폭격이 시작됐다. 조국 전 장관을 거론한 초선 의원들을 향해 ‘배은망덕’ ‘쓰레기 같은 성명서’와 같은 표현이 담긴 반박 성명서를 냈다. 그리고 의원들 개개인 휴대전화엔 욕설과 인신공격성 문자메시지가 쏟아졌다. 의원실에도 항의가 폭주했다. ‘초선 5적’ 중 한 명이었던 장경태 의원은 결국 사과까지 했다.
봇물처럼 나왔던 쇄신 요구가 자취를 감춘 것도 이 무렵부터다. 비주류 중진 의원들이 권리당원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거나 일부 의원들이 SNS에 입장을 밝히는 정도다. 하지만 당 물밑에선 불만이 팽배하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원팀 기조로 일치된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는 게 (친문의) 판단이다.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은 힘들어졌다”면서 “지금 잠시 피하더라도 대선 과정에서 더 큰 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라고 했다.
4월 12일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전경련 회관에서 비공개 모임을 갖기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정가에선 이러한 당내 기류가 원내대표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윤호중 의원에 맞서 ‘비문’ 박완주 의원(3선)이 출마했기 때문이다. 원내대표 선거 결과, 그리고 박 의원 득표율 등에 따라 여권 지형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둘은 경선 과정에서 조국 사태 등을 놓고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윤 의원은 “조국 사건은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들 평가를 받았다”고 했지만 박 의원은 “조국 전 장관 자체를 논하는 게 마치 금기를 넘는 것처럼 하는 당의 문화는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윤 의원은 4월 16일 선거에서 투표수 169표 중 104표를 얻어 당선됐다. 쇄신 바람으로 막판 추격 가능성이 점쳐졌던 박 의원은 65표에 그쳤다. 친문 진영에서의 이탈표는 거의 나오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윤 의원 선출로 민주당은 지금까지의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윤 의원은 원내대표 정견 발표 때도 “속도조절, 다음에 하자는 말은 핑계일 뿐”이라면서 “개혁의 바퀴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재보선 참패 후 비대위원장으로 친문 핵심 도종환 의원을 내세웠던 민주당은 신임 원내대표마저 친문 인사가 차지했다. 5월 2일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홍영표 우원식 송영길 의원 모두 친문 또는 범친문으로 분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도부 ‘투톱’이 모두 친문 인사로 채워지는 셈이다. 재보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도로 친문’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이는 대목이다. 한때 친문 내부에서 “전략적으로 원내대표는 비주류 인사에게 표를 몰아주자”는 주장이 나왔던 것도 이런 배경과 맞물린다.
이러한 당내 구도는 향후 차기 레이스와 연관이 깊다. 재보선에서 나타난 민심과는 별개로 사실상 ‘마이웨이’를 선언한 친문계와 유력 대선 주자 이재명 지사 간 관계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가 중도층 공략 일환으로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모색한다면 당은 친문과 비문 간 대립이 극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비문 진영이 이 지사를 필두로 단일대오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 지사는 민주당 경선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벌써부터 친문계에선 3후보론, 경선 연기론을 띄우며 이 지사 압박에 나섰다. 이낙연 전 총리가 “문 대통령을 버릴 수 없다”며 친문 끌어안기에 나선 것도 이런 지점을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중립 성향의 한 중진 의원의 말이다.
“지금 친문은 재보선 민심을 거스르는 행보로 당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친문계가 이재명 지사의 지지율을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이 지사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오히려 친문은 향후 대선 경선 룰 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손보려 할 것이다. 이런 딜레마(관련기사 마이웨이? 친문과 동행? ‘포스트 재보선’ 이재명의 딜레마) 앞에서 이재명 지사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가 여권 차기 판세의 핵심 포인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