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구단 역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패색이 짙어진 경기에서 마운드에 투수가 아닌 야수를 올리는 선택으로 주목을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카를로스 수베로(49)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내야수 강경학을 9회 초 첫 투수로 내보냈다. 강경학은 아웃카운트 2개를 잡는 동안 안타 3개를 맞고 추가 4실점 했다. 계속된 2사 1·2루 위기에서 외야수 정진호가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정진호는 공 4개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채워 이닝을 끝냈다. 한화는 최종 스코어 1-18로 졌다.
이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위원은 격한 반감을 드러냈다. “올스타전도 아니고 정규시즌 경기에서 한화 팬에게 이런 경기를 보여줘야 하나. 프로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야수가 투수로 올라오는 경기는 최선을 다한 경기가 아니다. ‘과연 입장료를 내고 이 경기를 봐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같으면 (이런 경기는) 안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베로 감독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수베로 감독은 한화가 창단 26년 만에 처음으로 영입한 외국인 사령탑이다. 미국 마이너리그 감독으로 잔뼈가 굵었고, 2016년부터 4년간 메이저리그(MLB) 코치로 일했다. 첫 시즌부터 다양한 경기 운영방식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내야와 외야 포지션 경계를 없앤 시프트, 선발투수 두 명이 한 경기에 앞뒤로 출격하는 ‘탠덤’ 운용 등이 대표적이다.
패배가 거의 확실해진 경기 마지막 이닝에 야수들을 투수로 투입한 이 장면도 금세 큰 관심을 모았다. 비난의 시선은 많지 않았다. 중계 해설위원의 거침없는 발언이 오히려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야수의 투수 등판이 모두가 환영하는 작전은 아닐지 몰라도, “프로답지 않다”는 비난을 받아야 할 만큼 잘못된 선택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한화는 9회의 선택으로 인해 ‘더 크게’ 지긴 했다. 강경학은 가볍게 투아웃을 잡았지만, 몸에 맞는 볼과 연속 볼넷으로 만든 만루에서 두산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에게 싹쓸이 3타점 적시 2루타를 맞았다. 이후 연속 안타로 1점을 더 내준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9회의 ‘두 번째 투수’로 선택된 정진호가 시속 110km 직구로 두산 신성현을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시킨 뒤에야 기나긴 마지막 수비가 끝났다.
그럼에도 비판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해설위원의 거침없는 비난이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야수의 투수 기용’이 바람직한 작전은 아니라 해도 수베로 감독 입장에선 충분히 합리적인 결정이었다는 해석이 많아서다. 1-14 패배와 1-18 패배 모두 정규시즌 성적에선 동일하게 ‘1패’로 계산된다. 13점 차를 뒤집어 이길 수 없다면, 감독 입장에선 필승 불펜을 굳이 내보내 힘을 빼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여기에 ‘과연 평소 친분이나 인연이 있는 한국 감독이 그 작전을 냈다면, 해설위원이 그렇게까지 신랄하게 비난했겠느냐’는 합리적 의심도 비난에 불을 붙였다.
지난 10일 두산전에서 외야수 정진호(사진)는 내야수 강경학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작 가장 태연한 건 수베로 감독이었다. 그는 다음날인 11일 “지금까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내겐 평범한 일인데 이렇게 이슈가 될 줄 몰랐다. 앞으로도 내 입장에선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놀라움으로 다가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계진의 발언과 관련해서는 “그렇다면 누군가 9회에 1-14 스코어를 뒤집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반박하면서 “(이미 3연전 첫 경기에서 1승을 확보했기에) 불펜을 아껴 라이언 카펜터가 나오는 다음 경기에 집중하면, 3연전을 2승으로 마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만약에’ 다음에도 그런 상황이 또 생긴다면, 나는 같은 이유로 같은 선택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결과는 정확히 수베로 감독의 의도대로 나왔다. 한화는 11일 경기에서 두산을 꺾었다. 3-2 살얼음판 승부에서 전날 휴식한 불펜 필승조 김범수-강재민-정우람이 차례로 등판해 1점 리드를 지켰다. 그러나 설사 한화가 이날 필승조를 내고 패했더라도, 앞선 경기 9회의 선택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선수 기용과 투수 교체는 프로야구 감독에게 주어진 고유 권한이다. 수베로 감독은 불펜 소모를 줄여 11일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을 최대한 높이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낀 투수들을 다음날 리드 상황에 정석대로 투입했다. 감독의 역할과 책임은 거기까지다. 그 확률을 더 위로 끌어 올려 ‘승리’에 도달하게 만드는 건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몫이다. 한화 감독과 선수는 그저 각각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뿐이다.
한화 구단 역시 수베로 감독의 지휘봉에 힘을 실어줬다. 투수 출신인 정민철 한화 단장은 “수베로 감독이 야구 규칙과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날 경기 중 상황과 앞뒤 경기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상식적인 운영이었다. 감독들은 저마다 팀 운영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고, 구단은 그 운영방식을 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단장은 이어 “프런트는 경기 운영과 관련해 현장에 절대 피드백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선수 기용 문제는 어디까지나 수베로 감독의 고유 권한으로 남겨놓고 싶다”고 강조했다. 구단도 수베로 감독의 야구관과 판단을 신뢰하고 지지한다는 의미다.
#2019년에만 90번, 빅리그에선 특별한 일 아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경기에선 한쪽으로 크게 승부가 기운 경기 마지막 이닝에 야수가 투수 대신 마운드에 오르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미국에선 오히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방적인 경기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팬 서비스’로 인식되기도 한다.
심지어 그 횟수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2005년엔 단 한 차례에 불과했지만, 2018년 75회에 이어 2019년 90회로 정점을 찍었다. 지난 시즌 코로나19 여파로 52경기 단축시즌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야수의 투수 기용 사례는 더 늘어났을 공산이 크다. 미국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한 수베로 감독에겐 그 자신의 말대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던 셈이다.
잘 알려진 메이저리그 스타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일본이 낳은 최고의 빅리거 스즈키 이치로는 마이애미 말린스 소속이던 2015년 시즌 최종전에서 2-6으로 뒤진 8회 투수로 나서 1이닝 2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당시 42세였던 그는 최고 시속 142km 강속구를 던진 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꿈을 이뤘다”며 기뻐했다. 팬들 역시 특급 선수의 특별한 이벤트에 즐거워한 건 물론이다.
LA 다저스에서 류현진(현 토론토 블루제이스)과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포수 러셀 마틴도 ‘투수 재능’을 직접 보여준 선수로 유명하다. 그는 2019년 투수로만 4경기에 등판해 4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해 마틴이 투수로 등판한 상황은 18-5로 크게 앞선 9회, 2-8로 뒤진 8회, 9-0으로 리드한 9회 등이다. 마틴은 최고 시속 145km를 찍어 “류현진의 직구 평균 구속과 큰 차이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고, 변화구인 체인지업과 커브도 능숙하게 던져 감탄을 자아냈다.
다저스는 마틴 이전에도 이 전략을 적극 실행에 옮긴 구단이다. 2013년 6월 29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 내야수 스킵 슈마커를 마지막 투수로 내보냈다. 8회까지 1-16으로 뒤져있던 터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슈마커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이던 2011년을 포함해 이미 두 차례 투수 등판 경험이 있던 선수였다. 마운드에서도 남다른 위기관리능력(?)을 뽐냈다. 2사 만루에서 대타 험브레토 킨테로를 삼진으로 돌려세워 동료들의 박수를 받았다. 최고 시속 145km 직구에 너클볼까지 구사했다는 후문이다.
올해도 이미 한 차례 같은 사례가 나왔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외야수 카아이 톰이 지난 5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 2-9로 뒤진 9회 투수로 등판했다. 톰의 직구 최고 시속은 92km. 그럼에도 이날 등판한 오클랜드 불펜 투수 중 유일하게 무실점을 기록했다. ‘너무 느린’ 직구가 오히려 휴스턴 타자들의 눈을 어지럽힌 듯하다.
#한국에선 드문 일, 앞으로 변화 생길까
물론 보수적인 KBO리그 문화에선 아직 보기 드문 일이기도 하다. 2000년 이후 야수의 투수 기용 사례는 총 7회에 불과하다. 강경학과 정진호 전엔 2009년 LG 트윈스 최동수와 SK 와이번스 최정, 2019년 KT 위즈 강백호, 2020년 KIA 타이거즈 황윤호와 한화 노시환만 투수 등판을 경험했다. 정규시즌이 아닌 포스트시즌에선 2015년 플레이오프 5차전 마지막 투수로 나선 NC 다이노스 나성범이 유일한 사례다.
이들 중 강백호는 학창시절 에이스로도 활약했던 선수다. 프로 입단 당시 잠시나마 ‘투타 겸업’ 가능성이 제기됐을 정도다. 그는 프로 2년차였던 2019년 9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5-0으로 앞선 7회 마운드에 올라 시속 149km짜리 강속구를 던졌다. 성적은 1이닝 1볼넷 무실점. ‘투수 강백호’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해 이강철 KT 감독이 특별한 기회를 줬다.
나성범은 아예 투수로 입단했다가 김경문 당시 NC 감독의 권유에 따라 타자로 전향한 케이스다. 연세대 시절 왼손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지만, 프로에서 거포 외야수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역시 팬서비스의 일환으로 2015년 NC의 가을야구 마지막 경기에 마지막 투수로 나섰다. 그가 최고 시속 147km 직구를 던지자 타석에 있던 두산 타자 오재원이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강백호와 나성범이 ‘팬서비스’를 위해 등판했다면, 지난해 황윤호와 노시환은 강경학·정진호와 같은 이유로 마운드에 올랐다. 비로소 본격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인 시기다. 황윤호의 깜짝 등판은 역시 메이저리그 출신인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지난해 5월 9일 삼성전에서 KIA가 2-14로 크게 뒤진 채 8회 2사 만루 위기를 맞자 윌리엄스 감독은 투수를 내야수 황윤호로 교체했다. 황윤호는 삼성 박해민을 포수 파울 플라이로 잡고 임무를 마쳤다.
윌리엄스 감독은 이와 관련해 “다음 경기를 위해 불펜을 아껴야 했다. 메이저리그에선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수베로 감독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 달 뒤엔 한화에서 다시 같은 시도를 했다. 6월 5일 대전 NC전에서 0-11로 크게 뒤진 9회 팀의 여섯 번째 투수로 2년 차 내야수 노시환을 기용했다. 선발 투수가 3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간 뒤 불펜 4명이 1이닝 이상씩 이어 던진 후였다. 불펜에 남은 승리조 대부분은 전날 경기에도 나섰고, 마무리 투수 정우람을 11점 뒤진 상황에서 내보낼 수도 없었다. 결국 한용덕 당시 한화 감독은 노시환을 마운드에 올려 급한 불을 껐다. 프로 입단 직전까지 경남고에서 투수로도 활약했던 노시환은 최고 시속 145km 직구를 던졌지만, 나성범에게 2점 홈런을 맞았다. 그의 프로 첫 ‘등판’ 성적은 1이닝 1피안타 2실점으로 기록됐다.
반면 2009년 최정이 마운드에 오른 이유는 조금 특별했다. 팬 서비스도, 불펜 보호 차원도 아니었다. KBO리그 40년 역사에서 무승부를 ‘패배’로 동일하게 계산했던 시기가 단 두 시즌(2009·2010년) 있었는데, 당시 현장에서 느끼던 반감이 그대로 투영된 사례다.
SK는 그해 6월 25일 광주 KIA전에서 5-5로 맞선 채 연장 12회 초 공격까지 마쳤지만, 끝내 추가 득점을 하지 못했다. 에이스 김광현을 대타로 내보냈을 정도로 엔트리를 다 쏟아 부은 혈투였다. 그러나 12회 초 무득점으로 최소한 무승부가 확정되면서 SK에게는 사실상 ‘진’ 경기가 됐다.
그러자 김성근 당시 SK 감독은 12회 말 파격적인 투수 교체를 단행했다. 마운드에 내야수 최정을 올리고, 1루수에 투수 윤길현을 기용했다. 또 2루수를 유격수와 3루수 사이에 놓고 1루와 2루 사이를 아예 비워 버리는 수비 시프트까지 가동했다. 결국 SK는 ‘투수 최정’이 던진 공을 포수 정상호가 뒤로 빠트려 5-6으로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야구계는 이 상황을 ‘무승부=패’ 제도에 대한 반란으로 해석했다.
다만 이날 SK가 KIA에게 일부러 내주다시피 한 1승은 시즌 마지막 날 예상치 못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81승 48패 4무의 KIA가 80승 47패 6무의 SK를 제치고 아슬아슬하게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해서다. 이날 SK가 12회 말을 무실점으로 막고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면, KIA의 승수 역시 SK와 같은 80승이었을 터다. 상대를 이기게 하는 것보다는 ‘함께 지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던 셈이다. 결국 이 제도는 도입 2년 만에 자취를 감췄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