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100. 아모레퍼시픽 건물. 사진=박정훈 기자
#74년 만에 빼앗긴 1위 타이틀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74년 만에 화장품업계 1위 자리를 LG생활건강에 내줬다. 지난해 LG생활건강은 코로나19 여파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액 7조 8445억 원, 영업이익 1조 2209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각각 2.1%, 3.8% 증가했다. 이 중 화장품사업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조 5524억 원, 9647억 원이다. 전년 대비 매출은 0.9%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5.4% 증가하며 선전했다. 2011년 2배 이상 차이를 보이던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을 9년 만에 넘어섰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매출 4조 9301억 원, 영업이익 1507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69.8%, 21.5% 급감한 수치다. 주력 계열사 아모레퍼시픽부터 로드숍 자회사까지 모두 실적이 하락했다. 2016년 매출 6조 6976억 원, 영업이익 1조 828억 원의 정점을 찍은 후 4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6년까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전체 매출이 LG생활건강 전 사업부문의 매출을 합한 것보다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두 기업의 최근 처지는 극명하게 갈린다. 결국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말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두 기업의 성패는 중국 사업에서 갈렸다는 평가다. 2018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중국 한한령(한류금지령)이 시작됐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LG생활건강은 중국 내 더페이스샵 매장 130개를 철수시키고 온라인 전환에 박차를 가했다. 또 ‘후’ ‘숨’ ‘오휘’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국내외에서 강화했다. 그 결과, ‘후’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 최초로 연 매출 2조 원을 돌파했다.
같은 시기 아모레퍼시픽은 오프라인 시장을 확대하고, 중저가 브랜드를 강화한 것이 결국 악수가 됐다. 뒤늦게 프리미엄 브랜드를 강화하고 온라인 판매 채널에 힘을 싣고 있으나 여의치가 않은 상황이다. 브랜드 오프라인 가맹점주들이 본사 전략에 따른 공급가 차별 등을 문제 삼으며 반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아모레가 LG생활건강보다 먼저 디지털 채널에 나서긴 했다. 다만 국내외에 직접 투자해 매장을 늘리고 가맹점을 늘린 것 때문에 경기가 안 좋을 때 직격탄을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리미엄 럭셔리 브랜드 강화보다는 대중들에게 많이 팔겠다는 전략도 실책”이라고 덧붙였다.
#해외시장·이커머스에 ‘사활’
한화투자증권은 LG생활건강의 올해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각각 2조 102억 원, 3585억 원으로 예상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 7.4% 증가한 실적이다. 이 중 화장품사업부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8.3% 늘어난 1조 1554억 원이다. 영업이익은 10.5% 증가한 2447억 원이다. 중국 법인과 면세점 사업 회복이 실적 상승을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LG생활건강은 화장품 브랜드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주력할 전망이다. 새롭게 추가된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확장·강화해 아시아를 넘어 해외 시장까지 섭렵하겠다는 포부다. 앞서 2019년 미국 화장품·생활용품 회사 뉴에이본과 지난해 더마화장품 대표 브랜드인 피지오겔의 아시아 및 북미 사업권 등을 인수했다.
서울 종로구 LG생활건강 본사. 사진=최준필 기자
아모레퍼시픽의 턴어라운드도 가시화되고 있다. 증권업계는 아모레퍼시픽의 올해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각각 1조 1842억 원, 1401억 원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7%, 129.7% 증가한 수치다. 내수 채널 매출과 해외 시장 실적 회복세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면세점이 전년 수준으로 회복됐다. 설화수가 프리미엄 정체성을 되찾으며 대형 거래선이 확대되고 있다”며 “지난해 기준 국내와 중국 모두 디지털 전략이 본격화됐다. 지난해 4분기 디지털 비중은 국내 20%, 중국 60%로 최고 비중을 시현했다”고 평가했다.
올해 아모레퍼시픽은 오프라인 중심에서 온라인으로의 전환에 ‘올인’할 방침이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141개의 이니스프리 매장을 정리했고, 올해 170개 매장을 추가 폐점할 예정이다.
올해 1월 공식 취임한 김승환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는 “디지털화, 브랜드 강화, 인력 효율화 등을 통해 디지털 전환에 돌입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올해 ‘글로벌 e커머스 디비전’ 조직을 새롭게 신설했다. 이를 통해 아마존, 세포라, 티몰, 쇼피 등 글로벌 이커머스를 통해 해외 시장 판로를 개척할 방침이다. 설화수가 쇼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이니스프리가 유럽 세포라에 입점한 것도 그 전략의 일환이다. 지난 2월에는 이베이코리아와 전략적 협업 강화를 위한 업무 제휴 협약(JBP)을 체결했다. 이베이코리아의 쇼핑 데이터, 물류배송 플랫폼 등을 활용해 편리하고 맞춤형 쇼핑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중국 시장이 승부의 최대 관건이다. 올해 1분기 중국 화장품 소매판매액은 전년 동기보다 약 40%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인다. LG생활건강의 화장품 해외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50%를 차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매출 중 중국 비중은 80%에 달한다.
‘선두’ 아모레와 ‘후발’ LG생활건강 경쟁의 역사 아모레퍼시픽은 1945년 9월 서울 중구 남창동에서 출발한 태평양화학공업사의 후신이다. 첫 출시한 제품인 메로디 크림과 추가로 출시한 남성용 헤어크림 ABC포마드가 모두 인기를 끌었다. 1959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1964년 방문판매제도를 도입한 ‘아모레’ 브랜드를 세상에 내놓았다. 설화수의 전신 한방인삼 화장품 ‘삼미’(1973년)와 ‘마몽드’(1991년)도 연이어 내놓았다. 1993년에는 상호를 태평양으로 바꾸고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였다. 라네즈(1994년), 헤라(1995년), 아이오페(1996년), 설화수(1997년), 미쟝센(2000년)이 당시 론칭된 브랜드다. 2005년에는 태평양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2006년 6월 지주회사인 (주)아모레퍼시픽그룹과 사업회사인 (주)아모레퍼시픽을 분할 설립했다. 1997년 대표이사 사장 취임 후 서경배 회장은 지속적으로 화장품 사업에 집중했다. 지속적인 해외 진출 역시 이때 이뤄졌다. 태평양화학공업사보다 2년 늦은 1947년, 고 구인회 창업회장은 당시 LG의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해 럭키크림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비누, 치약, 주방세제 등 생활용품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1974년 락희공업사는 이름을 (주)럭키로 사명을 바꿨다. 1984년 ‘드봉’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다시금 화장품 시장 공략에 나선다. 당시 아모레의 방문판매에 밀리면서 고전했지만, 1989년 프랑스 배우 소피 마르소를 광고 모델로 발탁하면서 드봉 화장품 업계 순위를 태평양에 이은 2위로 끌어올렸다. 1995년에는 LG화학으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화장품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업계 1위 태평양의 행보를 따라 1995년 ‘이자녹스’, 1996년 ‘라끄베르’, 1997년 ‘오휘’, 1998년 남성화장품 ‘보닌’ 등을 연이어 출시했다. 2000년에는 색조전문 화장품 ‘캐시캣’도 출시했다. 2001년 LG화학에서 분할 신설돼 지금의 LG생활건강으로 출범했다. 2003년 한방화장품 ‘후’와 ‘수려한’을 출시했다. 2004년 말 차석용 부회장이 LG생활건강 대표로 선임됐다. 후발주자의 선두 등극 전략은 적극적인 몸집 키우기였다. 차 부회장은 대표 취임 이후 24건의 M&A(인수합병)를 성사시켰다. 더페이스샵, 바이올렛드림, 긴자스테파니, CNP코스메틱, 제니스 등을 품에 안았다. LG생활건강은 화장품뿐만 아니라 생활용품, 음료 사업까지 거느리게 됐다. 지난해 3개 사업부는 모두 업계 1위를 달성했다. 2020년 생활용품사업부의 영업이익은 2053억 원으로 전년보다 63% 성장했다. 음료사업부 영업이익은 1928억 원으로 전년 대비 26.2% 증가했다. 그 결과 한한령, 코로나19 등의 악영향에도 16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는 진기록을 썼다. |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