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하나·우리 4대 금융지주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의사를 밝히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국내 한 시중은행 지점 모습으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온라인 금융 서비스가 활성화하고 오프라인 매장 방문 고객은 줄어들면서 한산한 모습. 사진=일요신문DB
#4대 금융지주 셈법은?
은행연합회가 최근 인터넷은행 설립 수요를 조사한 결과, 5대 금융지주 중 NH농협금융지주를 제외한 4곳이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은행연합회는 4월 내 이 같은 의사를 금융위원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금융지주사들이 인터넷은행 진출을 노리는 가장 큰 이유로는 비대면 금융 거래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같은 추세에 힘입어 기존 인터넷은행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카카오뱅크의 수신 잔액은 ‘2018년 10조 8116억 원→2019년 20조 7119억 원→2020년 23조 5393억 원’으로 급증했다. 케이뱅크의 수신 잔액은 최근 10조 원을 돌파했다. 이들의 고속 성장세를 지켜볼 수만은 없는 금융지주사들이 별도 인터넷은행을 만들어 이를 견제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인터넷은행은 기존 은행업과 비교해 장점이 뚜렷하다. 인터넷은행은 점포 없이 운영해 고정비 부담이 적고 비교적 완화된 규제 속에서 설립·운영이 가능하다. 조직 차원에서도 혁신성과 편의성을 강조하고 IT 인력 중심이다 보니 유연한 변화가 가능하다. 반면 시중은행은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덩치가 커 금융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한 대응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은 다양한 기능을 담고 있어 다소 무겁고 복잡하다. 따라서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처럼 특정 기능만 담은 가벼운 플랫폼으로 별도 세그멘테이션을 통해 신규 고객 유입에 나설 수도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프라인 점포가 많이 줄고, 그간 온라인과 디지털뱅킹 쪽 인프라가 많이 개선됐는데도 최근 카카오뱅크 실적이 좋은 모습을 보니 오히려 점포를 많이 줄여 비용 절감하고 금리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이 고객 유치에 도움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며 “카카오뱅크을 보면서 은행이 중장기적으로 지향할 방향을 인터넷은행으로 정한 것 같다”고 봤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디지털 전환은 오래 전부터 주요 과제로 과거 은행들마다 위비톡(우리은행), 리브(국민은행) 등 인터넷영업채널의 브랜드화에 나섰지만 기존 영업점 내 조직과 본사 온라인 조직 간 마찰로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지주사 아래 별도 인터넷은행을 만들고 시중은행이 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내부 갈등도 없고 디지털 전환도 더 수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KB·신한·하나·우리 4대 금융지주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해 카카오뱅크 견제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카카오뱅크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혁신성 떨어뜨리고 금융 독과점 우려도
금융지주사가 인터넷은행을 설립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금융당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금융당국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까지 제정하며 ICT 금융 혁신을 취지로 인허가를 내줬다. 시중은행들이 인터넷은행 시장에 진입해 금리 및 가격경쟁으로 승부하면 혁신 금융에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의 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은 기존 은행보다 규제를 덜 받는다. 금융지주사들도 인터넷은행을 만들면 같은 수준의 규제가 적용될 텐데, 이럴 경우 같은 지주사 소속임에도 점포가 있는 은행은 규제를 받고, 인터넷은행은 규제를 덜 받는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금융당국은 이러한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무 중복 우려도 나온다. 금융지주사마다 이미 모바일 앱을 중심으로 각종 비대면 금융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은행 자회사가 설립되면 계열사 간 경쟁이 불가피해 ‘제 살 깎아먹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지용 교수에 따르면 일본 포털 야후와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인터넷은행 재팬넷은행 출범 이후 개인 고객을 재팬넷은행에 빼앗긴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실적이 나빠진 사례가 있다.
인터넷은행 진출이 금융권의 구조조정을 가속화시켜 내부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지주는 인터넷은행 설립을 원하는데 은행권은 시큰둥한 분위기다. 지주사가 인터넷은행을 키우면 계열사 내 시중은행의 입지가 약해지면서 구조조정의 빌미가 되고 처우가 나빠지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금융지주사가 인터넷은행 시장에 뛰어들면 기존 인터넷은행 업체들과의 경쟁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고객의 선택 폭을 늘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있다. 그러나 ICT 기반 인터넷은행들이 타격을 입고 혁신 의지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금융지주사가 인터넷은행 진출을 허가 받으려면 나름의 혁신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단순 중금리 대출을 넘어 신탁상품 등 대중화되지 않은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이종업계와 함께 설립해 신규 고객을 끌어와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본 인터넷은행 지분은행은 일본 통신사 KDDI와 도쿄미쓰비시UFJ은행이 공동출자했는데 통신고객이 지분은행 이용 시 통신 부가서비스를 제공해 고객 유치에 적지 않은 효과를 봤다. 미국의 경우는 자동차업체나 제조업체도 인터넷은행 출자가 가능해, 자동차기업 GM이 설립한 얼라이뱅크는 자동차할부금융 서비스로 본업 장점을 살리고 차별화에도 성공했다.
서지용 교수는 “이종업종끼리 결합해 모기업이 가진 경쟁력을 고객 유치에 적극 활용할 경우 성공하지만 가격 경쟁만으로 승부하면 단기로는 실적을 쌓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며 “인터넷은행 진출에 앞서 어느 쪽에 강점을 가질 수 있는지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