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28개 지자체에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우리 동네 미술’은 문체부와 지자체가 함께 추진 중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2020년 3차 추가경정예산안 통과로 시행됐으며 목적은 코로나19로 피해 입은 예술인들에게 일자리를 지원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의 문화예술적 재생과 그 성과 기록을 공유하는 데 있다. 쉽게 말해 전국의 예술인들과 협업하여 지자체 공공미술 작품을 만들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피해의 시급성을 고려하여 2021년 2월 사업 완료가 목표였다.
이번 프로젝트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막대한 예산 때문이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들어간 예산은 문체부(759억 원)와 지자체(179억 원)를 합쳐 약 1000억 원. 인구와 무관하게 전국 228개의 시·군·구에 약 4억 원씩 할당됐다. 이는 문체부의 지원 사업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관광업 분야 지원에 당시 배정된 예산이 354억 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공미술 프로젝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문제는 들어간 돈을 무색하게 만드는 결과다.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주민들의 보편적 정서가 담겨있어야 할 공공미술에 난데없이 ‘짝퉁’ 논란이 일어난 까닭이다. 경기도 양주시는 올해 1월 공공미술 프로젝트 결과물로 백석읍 신촌마을의 벽화와 옥정호수도서관의 조형물 등 5개소의 문화공간을 공개했다.
백석 신촌마을의 벽화. 사진=양주시청 제공
그런데 벽화에 그려진 그림이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키스 해링 작품인 ‘무제-춤(Untitled-dance, 1987)’과 매우 흡사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픽토그램 같은 간결한 윤곽선과 원색의 사용, 성별과 나이가 구분되지 않는 인간이 춤을 추는 모습의 구성 등이 키스 해링 작품의 특징과 매우 유사했다. 벽화 중간에는 키스 해링의 대표 이미지로 불리는 ‘짖는 개’도 발견됐다. 한편 벽화 상단에 그려진 달항아리는 김환기 화백의 ‘달항아리 시리즈’를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나왔다.
키스 해링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키스 해링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재단에 따르면 재단의 명시적인 서면 허가 없이는 작품을 복제할 수 없으며 이를 이용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거나 상업적 용도로 쓰는 것 역시 금지되어 있다.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작품. 사진=키스 해링 재단 홈페이지
그렇다면 양주시는 키스 해링 재단에 허가를 받았을까. 이에 대해 양주시 관계자는 15일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고 (원작과) 구성을 조금 다르게 했다고 한다. 표절이 아닌 패러디로 봐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재단의 허가는 받지 않았으며 원작과 구성을 조금 다르게 한 패러디 작품이라는 것이다.
패러디는 사회적 현상을 풍자하거나 비판하기 위해 기존에 널리 알려진 원작의 이미지를 비틀어 완전히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표현의 한 방식이다. 패러디가 하나의 표현으로 인정되는 이유는 패러디의 결과로 모방의 대상과 결과물이 각각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될 때다. 그러나 해당 작품의 의도를 알 수 있는 해설이나 작품 아카이브는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는 게 양주시의 설명이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작가들을 감독하는 자문위원회가 별도로 있었다. 앞서 문체부는 “결과물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자문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양주시 관계자는 “자문위원회는 사업 협약안과 이후 변경사안 등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타 지역 자문위원 A 씨는 1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자문위원이 행사할 수 있는 힘이 크지 않았다”며 “사업 계획서 등 서류가 거의 완성이 된 채로 넘어왔다. 일부 작품의 경우 기존 작품과의 유사성이 발견돼 수정을 권고했는데 실제 작품에 반영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면피용 자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미술계 내부에서는 이런 상황을 공공연하게 예견해왔다. 문체부가 해당 사업을 추진할 때부터 “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니냐” “공공미술에 대한 몰이해로 갈등이 생길 것”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까닭이다.
실제로 문체부 ‘공공미술 프로젝트 추진일정’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사업 준비를 시작해 9월~12월 사업 시행, 지난 1월~2월에는 정산 및 사업 정리를 하도록 돼있다. 작가 선정과 협의 등을 제하고 나면 실제 작품을 만들고 준비하는 기간은 3~4개월 남짓인데, 제대로 된 공공미술 작품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지난해 10월에는 고속철도 기업인 SR의 발주를 통해 서울 수서역 승강장에 그려진 벽화가 뱅크시의 작품을 모방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에 휘말렸다. 사진=뱅크시 작품과 SRT 벽화
그러나 대부분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실제 사업 추진 현황을 보면 계획된 추진일정이 지켜지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이월 중이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경상남도는 최근 11개 지자체에 대해 공공미술사업 마감을 2월에서 6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서울시도 아직 공공미술사업 대상지 9곳을 선정하지 못해 지난 2월 재공모를 했다. 경기도 동두천의 경우 3월에서야 대상지 선정에 대한 사업 준비 및 협의를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정대로라면 사업이 끝났어야 하는 시기이지만 팀 선정조차 못한 것이다.
홍경한 예술평론가는 “공공미술의 목적은 주민을 주체로 한 사회적 의제 발굴 및 공공의 장에서 미술을 매개 삼아 새로운 모더니티를 생성하는 데 있다. 하나 둘 나타나는 이번 프로젝트의 일부 결과물들은 우리나라 공공미술의 현주소다. 공공미술에서 ‘공공성’을 배제하고 그저 ‘거리 미화’ 혹은 ‘볼거리’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충분한 연구와 고민이 없다면 1000억 원의 세금을 결국 조악한 작품 만드는 데 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20년 10월에는 고속철도 기업인 SR의 발주를 통해 서울 수서역 승강장에 그려진 벽화가 뱅크시(Banksy)의 작품을 모방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프로젝트는 한 대학 교수의 지도 아래 미대생들의 재능기부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해당 교수는 표절 논란에 대해 “약간 패러디나 오마주의 느낌으로 했다”고 답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