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알뜰폰 사업을 2년 연장하게 된 가운데, 사업 취지인 ‘금융 혁신’에 물음표가 붙는다.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사진=연합뉴스
#금융위 힘입어 간신히 사업기간 연장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14일 정례회의에서 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 ‘리브모바일(리브엠)’에 대해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기간을 2년 연장하기로 했다. 리브엠은 금융위가 2019년 4월 국내 1호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한 사업으로, 금융권 최초 이동통신업계 진출 사례다. 은행은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법적으로 통신 등 이종산업에 진출할 수 없지만 금융당국이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근거로 2년간 규제를 풀어주는 샌드박스 특례를 적용해 허가했고, 국민은행은 2019년 말 리브엠을 출시했다.
리브엠 가입자는 유심을 휴대전화에 넣으면 복잡한 절차 없이 은행과 통신 서비스를 한꺼번에 이용 가능하고, 이용 실적에 따라 통신 요금 할인을 받는다. 국민은행은 금융·통신 결합정보를 활용한 신용평가 시스템을 토대로 금융상품을 제공한다. 국민은행은 규제 특례 기간이 16일 만료됨에 따라 연장을 신청했으나, 노조가 이에 반발하면서 금융위의 결정에 이목이 쏠렸다.
금융위가 사업 연장을 허용한 배경으로는 2년이라는 기간 내 성과로는 혁신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고, 사업이 중단되면 10만 명의 가입자들이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점 등이 꼽힌다. 금융권 1호 혁신금융서비스라는 상징성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금융위는 상징성을 지켰고 혁신금융 정책의 연속성을 가지게 됐으며, 국민은행도 사업 실패라는 오명을 일단 피했다.
은행권과 금융당국 간 이해관계가 부합하다는 점도 연장 배경으로 거론된다. 금융사는 최근 카카오와 네이버 등 IT업체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금융사 역시 금융업에 그치지 않고 통신과 핀테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고객을 자사 플랫폼에 ‘록인’하고 비대면과 융복합 시대 흐름에 맞춰 사업 다각화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리브엠을 통해 통신 3사를 견제함으로써 요금 인상 움직임을 막고 통신업계 전반의 혁신을 유도할 수 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은행은 그간 예대마진으로 수익을 냈으나 저금리와 대출규제로 수익이 기존처럼 나지 않고 비이자 수익을 강조하긴 하지만 그 역시 파이가 크지 않아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 다른 은행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판단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내부 반발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 그간 노조는 금융위가 2년 전 제시한 사업 승인에 따른 부가조건을 사측이 위반했다며 사업 연장을 반대해왔다. 금융위는 당시 △금융상품 판매 시 휴대전화 판매와 요금제 가입 등을 유도하는 행위를 막고 △판매 관련 영업점 및 은행 직원들의 과당 실적경쟁 등 통신사업이 은행 고유 업무에 지장을 미치지 않도록 내부통제 장치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온라인에서만 판매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오프라인으로 판매채널을 확대했다. 알뜰폰 연계 전용금융상품을 판매해 직원들의 창구 판매를 종용하고 영업점별 알뜰폰 전담직원까지 지정하며 고유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알뜰폰 가입자 유치 실적을 지역별 영업그룹장 인사평가 기준에 반영하고 실적에 따라 포상을 주고 순위를 나열하는 등의 방식으로 직원 간 과당 경쟁과 지속적인 가입을 강요했다며 지난 2월 혁신금융 지정 취소를 요구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의 연장 결정 회의 전날인 4월 13일에는 이 같은 내용의 기자회견도 열었다.
허가 연장을 결정한 금융위는 관련 사업에 부가 조건을 추가했다. 실적 경쟁과 관련해 지역그룹 대표 역량평가 반영 금지, 음성적인 실적표 게시 행위 금지, 직원별 가입 여부 공개 행위 금지, 지점장의 구두 압박에 따른 강매 행위 금지 등이다. 연장기간 내 알뜰폰 판매는 온라인 등 비대면으로만 하도록 했다. 노조는 사측의 조건 준수 및 서비스의 혁신 유무를 지켜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KB국민은행이 알뜰폰 사업을 2년 연장하게 됐지만 노조 반발과 혁신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알뜰폰 매장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일요신문DB
#노조 반발 넘어섰지만, 혁신성엔 여전한 물음표
또 다른 관건은 ‘혁신’이다. 카드로 세금을 납부하면 1만 원 청구할인해주는 등 기존에도 금융권과 통신사가 결합한 서비스가 있었는데, 리브엠의 서비스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통신 결합정보를 활용한 신용평가시스템 역시 이미 모든 대출 조건에 통신이용료 연체, 세금납부, 자산 등 전부 포함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새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뜰폰 자체도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기존 사업자가 많은 데다, 사용자를 크게 늘리기도 어려운 구조다. 알뜰폰에 가입하려면 단말기를 일시불로 사서 유심을 꽂든지 기존 약정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하기에 가입자를 크게 늘리긴 어렵다. 직원 강매 등 잡음을 감수하며 2년간 모은 가입자가 목표치의 10% 수준인 10만 명에 그치는 이유다.
류제강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통신업의 위치 기반 서비스를 통해 국민카드 가맹점을 소개해준다는 등 이미 있거나 기존 실패한 사업을 모델로 내놓는 모습은 혁신성에 의구심이 들게 한다”며 “통신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인데 알뜰폰 사업으로 수집 가능한 데이터가 어디까지인지 확실치 않고, 고객들이 어느 범위까지 데이터 수집에 동의할지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 국민카드를 쓰면 적립과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KB스타샵 가맹점’ 등 비슷한 서비스를 출시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는 평가다.
앞서의 서지용 교수도 “통신 이용 고객들한테 혜택을 주는 서비스는 고부가가치 사업은 아니다. 리브엠으로 정부가 생각하는 사업 취지에 맞게끔 얼마나 융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이종데이터 결합을 통해 고객 니즈를 파악하고 신상품을 출시하려는 노력이 확대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관련, 국민은행 관계자는 “리브엠은 금융-통신의 새 결합으로, 통신사 고객의 페인포인트(불편함을 느끼는 지점)를 해소하고 금융 노하우와 높은 고객 신뢰도를 바탕으로 편리하고 안전한 금융거래와 무약정을 통한 고객의 선택권 확대 등 고객 중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앞으로 통신과 금융을 결합한 혁신서비스를 꾸준히 제공하고 디지털 취약계층도 쉽게 서비스를 이용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