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오가며 8차례 대수술
유기견보호소에 있던 순수, 발견 당시 코와 입이 절단되어 있었다. 사진=김연경 씨 제공
4년 동안 유기 동물을 구조해 오고 있는 김연경 씨는 2020년 5월 우연히 유기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한 강아지를 보게 됐다. 덥수룩한 털에 잘려나간 코와 입. 처참한 그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강아지가 지내고 있는 곳은 입소 2주 안에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행하는 곳이었다. 자신이 아니면 죽을 것만 같은 아이였다. 예상대로 아픈 강아지를 입양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김 씨는 이 강아지를 임시 보호하기로 마음먹었다.
강아지의 이름은 하얗고 작은 생김새처럼 ‘순수’라고 지었다. 이후로는 정신없이 치료에만 매달렸다. 콧구멍만 남아있는 자리에 흉살이 돋으면서 점점 숨 쉬는 것이 어려워진 까닭이다. 입 부근도 잘려 입술과 인중 복원 수술도 필요했다. 순수는 동물병원과 대학병원을 오가며 8차례의 수술을 받은 끝에야 지금의 모습이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영구적인 건 아니다. 상처부위가 벌어지면 계속해서 재봉합 수술을 해줘야 한다.
김 씨는 “처음에는 숨을 쉴 때마다 ‘쉭쉭’거리는 소리가 났다. 숨길을 뚫어주는 수술을 했는데 얼마 안 가 다시 막히는 바람에 수술도 여러 번 해야 했다”며 “콧구멍이 막히면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데 밥을 먹을 때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어 너무나 힘들어 보였다”고 말했다.
치료에만 전념하던 김 씨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게 된 계기는 시간이 갈수록 학대의 정황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순수가 입은 상처는 교통사고 등 우연한 사고만으로 생기기는 매우 어려웠다. 김 씨는 “치아와 잇몸에는 상처를 입지 않고 코와 입술만 단면으로 절단된 것은 누군가 도구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잘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순수를 치료한 수의사 역시 “상처는 창상에 의해 후천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밝혔다.
결국 김 씨는 가해자를 찾기 위해 올해 1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순수의 사연이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순수를 돕기 위한 움직임도 일었다. 적지 않은 후원금이 들어왔고 수사도 착실히 진행되는 듯했다. 문제는 신고하고 석 달이 지난 최근 경찰 수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는 점이다. 김 씨는 “수사관이 순수를 발견한 장소를 탐문해봤는데 특별한 소득이 없었다고 했다. CCTV 증거도 남아있지 않아 잠시 수사를 중단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사건 초기의 정황과 당시 증거품 등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 수사의 발목을 잡았다. 김 씨에 따르면 2020년 5월 최초 신고를 받은 동대문구청은 발견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김 씨는 “순수가 처음 발견됐을 때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는 이야기도 첫 목격자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임시보호를 결정한 시점에 바로 신고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현재로서는 목격자를 찾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순수가 발견된 곳은 재개발 지역으로 이미 동네를 떠난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과 지자체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는 목격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김 씨는 1월부터 동대문구청에 목격자 관련 현수막 게첨을 부탁해왔는데 최근에서야 구청으로부터 “현수막 게첨 장소가 협소하므로 직접 장소를 지정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처럼 동물학대 사건은 초기에는 국민적 공분을 사며 논란이 되지만 그 끝은 허무한 경우가 많다.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경찰조사 단계에서 종결되거나, 재판까지 가도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일이 다수다. 학대 피해자인 동물이 피해를 증언할 수 없어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거나 직접 증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2020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동물학대 관련 수사의 미흡함을 지적하며 “동물은 스스로 학대 상황을 증언하기 어렵기에 초기 대응에서 정황증거와 (사람의) 증언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경찰의 전문성 있는 수사가 필요한 때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광주의 한 동물병원 의료진이 수술을 마친 강아지에게 탈취제를 뿌리고 조롱하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됐던 이른바 ‘탈취제 사건’은 지난 12일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광주 남부경찰서가 의료진이 수술을 끝낸 강아지에게 탈취제를 뿌리는 행위는 확인했지만 숨진 강아지가 이미 화장되는 등 증거 부족으로 인해 동물보호법상 동물을 학대한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반려동물 분양 절차법 필요”
8번의 수술을 마친 순수, 학대 가해자를 찾고 있으나 증거 수집에 어려움이 있어 최근 경찰이 수사를 일시 중단했다. 사진=김연경 씨 제공
김 씨는 순수처럼 학대를 받는 반려동물이 생기지 않도록 보다 강력한 분양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지식이 없고 반려동물을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반려동물을 무분별하게 소유할 수 있어 학대와 유기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반려동물을 분양 받으려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기 위한 수강을 해 수료증을 이수하거나 자격증제를 도입해 아무나 분양할 수 없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아동 학대나 폭행 전과가 있는 사람은 분양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입양절차가 너무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장(유기동물보호소)에 있으면 안다. 까다롭게 따져서 입양을 보내도 파양돼 돌아오는 강아지들이 정말 많다. 특히 유기견의 경우 ‘공짜니까’라는 마음으로 일단 데려가서 키워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버리거나 지인에게 떠넘긴다”며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데 법적으로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현재는 개인 구조자들이 자체적으로 입양 조건을 만들어 최소한의 규제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반려동물 양육을 위한 사전 교육의 필요성은 수차례 제기돼 왔다.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민의 74.8%가 반려동물 소유자에 대한 의무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47.6%는 동물학대행위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에서도 목소리가 나왔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반려동물 보호자에 대한 교육 이수 의무화, 동물판매업자의 중개를 통한 가정 분양 허용, 반려동물 이력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반려동물을 소유·사육하려면 주소지를 지자체에 등록하고 반려동물에 관한 교육 이수 등 (소유·사육) 요건을 갖출 것 △동물학대 행위(동물보호법 제8조제1항~3항 위반)로 형을 선고받으면 5년 이내에 반려동물 소유·사육 금지 △사인 간 개·고양이를 분양(가정 분양)할 때 동물판매업자의 중개를 통할 것 △동물생산업자는 동물이 출생한 경우 지자체에 등록하고, 등록된 동물만 판매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부에서도 반려동물 양육을 위한 사전의무교육제도를 추진 중이다. 농식품부는 2020년 ‘동물복지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2022년부터는 생산·판매업자를 통해 동물을 구매할 경우 사전교육이 의무화된다. 초·중·고 교육 과정에도 동물보호·복지 교육 포함을 위해 관계기관 협의 추진한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