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송파구 송파대로 570에 위치한 쿠팡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쿠팡이츠 자회사 출범 배경은?
지난 4월 14일 쿠팡은 고객, 상점주, 배달 파트너 지원과 배달 파트너 운영 서비스를 관리하는 ‘쿠팡이츠서비스’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쿠팡이츠서비스는 쿠팡의 자회사로 쿠팡이 100% 지분을 소유할 예정이다. 쿠팡이츠서비스는 모든 고객, 상점주, 배달 파트너의 문의 사항에 실시간으로 응대할 방침이다. 다만 쿠팡이츠의 기획·개발 등의 핵심 업무는 여전히 쿠팡에서 총괄한다.
쿠팡이츠서비스 출범 배경으로 경쟁력 강화 측면과 별개로 전문 자회사를 통한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배달 수요와 함께 플랫폼 배달기사 관련 이슈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회사와 배달 파트너 간의 수수료에 대한 입장 차부터 사고 논란까지 이슈가 되는 분야도 다양하다. 실제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음식 배달기사를 포함한 플랫폼 기반 배달기사의 산업재해 신청은 지난해 1047건에 이른다. 전년(570건)의 2배 정도다. 이 중 산재 승인을 받은 배달기사 사고는 917건이다. 특히 지난해 산재 사고로 숨진 배달기사는 11명에 달한다. 전년(6명)의 2배 수준이다.
이에 발맞춰 쿠팡이츠는 최근 허행민 이마트 전 노사협력팀장을 임원으로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행민 팀장은 이마트에서 20년 이상 근무했고, 퇴직 전까지 인사팀에서 노무관리를 맡았다. 이마트는 임직원이 2만 5000명에 달하고, 노동조합이 3개나 존재한다. 앞서 쿠팡도 잇따른 노동자 사망 사건으로 사회적 질타를 받자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했다. 지난해 9월 유인종 전 삼성물산 상무를 안전분야 부사장으로, 박대식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경기북부지사장을 안전보건감사담당 전무로 영입했다.
규제에 대한 여론도 우호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오픈마켓·배달앱 입점업체 각각 500곳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정위가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에 대해 오픈마켓 입점업체의 98.8%, 배달앱 입점업체의 68.4%가 각각 찬성했다. 오픈마켓 입점 업체의 주거래 플랫폼은 쿠팡이 36.2%로 1위를, 배달앱에선 쿠팡이츠가 5위를 차지했다.
리스크 관리와 규제 대응을 위해 쿠팡은 정치·언론계 인사를 영입해 홍보·대관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강한승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정한모 전 청와대 일자리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추경민 전 서울시 정무수석 △국회 보좌관 출신 인사 5명 등이 쿠팡 대관 관련 직무에 영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태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은 매일경제신문, 경인방송 등을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쿠팡의 홍보·대관 관련 인력만 30여 명에 이른다.
쿠팡은 지난 3월에는 회원사들이 규제, 법적 이슈 등에 공동 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가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쿠팡은 경총 가입에 필요한 절차와 양식, 서류 등을 문의했다. 경총은 대한상공회의소 등 다른 경제 단체와 달리 자발적으로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쿠팡 노동자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가운데 노동 규제 등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경총 가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김범석 쿠팡 의장이 공동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만 맡고, 쿠팡은 2인 대표 체제로 전환한다. 왼쪽부터 김범석 의장, 박대준 대표, 강한승 대표. 사진=쿠팡 제공
#실질적 지배자 김범석 의장의 책임은 어디까지?
지난해까지 쿠팡 대표에 이름을 올렸던 김범석 의장은 올해 쿠팡을 2인 대표 체제로 전환하고 이사회 의장 직책만 맡게 됐다. 박대준 대표는 신사업을, 강한승 대표는 쿠팡 운영과 인사·노무 관리를 총괄하도록 했다. 문제는 시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내년 1월부터 산재 또는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해당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자회사 설립과 대표 체제 변경 등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문제 발생 시 김범석 쿠팡 의장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김범석 의장이 별도로 대표를 임명하고, 자회사를 출범해 독립 경영을 실행하면서 오너로선 리스크를 줄였다”며 “산재나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때 행위 주체는 쿠팡 대표와 자회사 대표지, 의장에겐 책임을 묻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미 쿠팡은 김범석 의장 대신 전문경영인이 대외적인 간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산재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쿠팡풀필먼트는 쿠팡의 자회사로 물류·배송 관련 노동자 사망에 직접적 연관성이 있는 곳이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엄성환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전무가 증인으로 나서는 선에서 정리가 됐다. 당초 김범석 대표를 증인으로 추진했으나,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환노위 소속 의원실 한 보좌관은 “지난해 국정감사 관련 증인을 채택할 때 쿠팡은 ‘김범석 의장이 실질적으로 물류·배송에 관여하지 않는다. 실무자가 나가는 것이 맞지 않냐’고 논리를 펼쳤다”며 “쿠팡이 대관에 여·야 출신 인력을 보강한 건 유명하다. 당시 여·야 간사 의원들이 증인 채택을 논의했고, 김범석 의장을 최종적으로 증인에서 제외했다. 그 과정에 쿠팡 대관이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쿠팡의 공정거래위원회의 총수(동일인) 지정 논란도 김범석 의장의 책임론과 맞닿아 있다. 오는 5월 1일 공정위는 자산 5조 원 이상의 대기업 그룹과 총수를 지정해 발표한다. 총수로 지정되면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한 공시의무와 함께 기업 제재에 따른 책임도 지게 된다. 쿠팡의 경우 김범석 의장의 국적이 논란의 핵심이다. 미국 국적을 보유한 자연인에게 총수를 지정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 여부를 전원회의 긴급 토의 안건으로 올릴 정도로 신중을 기하고 있다.
백광현 변호사는 “공정위가 김범석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형식적으로는 지배하지 않고 있는 것이 된다”며 “쿠팡에서 경영상 책임을 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법리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지배하지 않고 있는데, 창업주라는 이유만으로 경영상 발생한 문제를 모두 책임져야 하냐는 논리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