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년차에 접어든 구현모 KT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디지코’ 성과가 빛을 보기도 전 본업인 통신에서 균열이 생긴데다 구현모 대표가 KT의 불법 후원금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있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사진=최준필 기자
#탈통신 몰두한 결과가…
통신 3사는 저마다 ‘탈통신’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통신 매출 감소에 따라 신사업을 다각화하고 새로운 매출을 창출하겠다는 것. SK텔레콤은 자회사 상장에 나섰고, LG유플러스는 신사업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결과 SK텔레콤은 지난해 연결기준 전년 대비 21.8% 증가한 1조 3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LG유플러스는 전년 대비 29.1% 증가한 8862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SK텔레콤은 미디어, 보안, 커머스 등 뉴 ICT 사업 매출 증가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성장했고 LG유플러스는 컨슈머사업와 기업인프라사업의 성장으로 서비스 수익이 증가했다.
KT는 2020년 1월 조직개편을 통해 AI/DX융합사업부문을 신설하고 AI(인공지능)와 DX(디지털융합) 사업에 집중했다. 그러나 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KT는 지난해 영업이익 1조 1841억 원을 기록, 영업이익은 2.1% 증가했지만 매출은 전년 대비 1.7% 감소한 23조 9167억 원을 기록했다. KT는 매출 감소 이유에 대해 “단말 수익 감소와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금융‧부동산 사업 부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KT는 본업인 통신업에서도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동통신 가입자의 감소세가 뚜렷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이동통신 회선현황에 따르면 2020년 2월~20201년 2월 1년간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가입자는 늘어났지만, KT 가입자는 감소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2월 2890만 2965명에서 지난 2월 2936만 1406명으로 늘었다. LG유플러스도 같은 기간 1428만 4074명에서 1478만 587명으로 늘었다. 반면 KT는 1826만 8420에서 1741만 4392명으로 줄었다.
그렇다고 디지코 성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KT는 지난해 4분기 성과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핵심사업 지속 성장, B2B‧성장사업 성과창출, 효율적인 비용집행으로 이익 턴어라운드 달성”이라고 밝혔다. 또 B2B 매출 현황을 알리며 “2020년 디지털 전환 수요 증가로 AI/DX 사업 두 자릿수 성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해 B2B 전체 매출은 2조 7000억 원으로 전체 매출 23조 9000억 가운데 11%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B2B 매출 가운데 AI/DX 매출(5507억 원)이 차지하는 비중도 20%에 불과했다.
더욱이 KT는 최근 ‘10기가 인터넷 품질 저하’ 논란으로 기업신뢰도가 추락했다. 해당 논란은 지난 19일 17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IT 전문 유튜버 ‘잇섭’이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잇섭은 KT의 10기가(Gbps) 인터넷 요금제에 가입했으나 실제 속도를 측정해보니 100메가(Mbps)로 서비스되는 것을 확인하고 문제제기 영상을 게재했다. 잇섭은 인터넷 속도 문제를 KT 고객센터에 문의하자 정확한 설명 없이 원격으로 문제가 해결됐고, 요금 감액 과정도 원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논란 확산 이후 KT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영상을 내려달라고 요구한 사실도 여론 악화를 부추겼다.
결국 KT는 지난 21일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이미 소비자들의 다양한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정부까지 나선 상황이다. 지난 2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KT의 10기가 인터넷 품질 저하 관련 사실 확인을 위한 실태점검을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방통위는 통신사의 고의적 인터넷 속도 저하 및 이용약관에 따른 보상 등을 점검하고, 과기부는 국내현황 및 해외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용약관에 대한 제도개선을 병행 추진할 계획이다.
KT새노조는 “인터넷 속도 제한 논란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KT 직원들 사이에서 제일 먼저 나온 반응은 ‘터질 게 터졌다’였다”며 “KT 직원뿐 아니라 KT서비스 설치기사들의 내부고발도 터져 나왔다”고 지적했다. 또 “구현모 체제 등장 이후 경영진은 디지코 전환 등 뜬구름 전망에 집착하며 통신업 부실관리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내부의 진단”이라며 “통신 본업 관리 부실에 대해 구현모 사장이 진지하게 반성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불법 정치자금 후원 사건 조사가 경영진으로 향하면 구현모 KT 대표 역시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사진=연합뉴스
#2년차 접어든 구현모 체제, 우려가 현실로
KT 이사회는 2019년 12월 구현모 후보를 차기 대표 후보로 확정하면서 “구현모 후보는 ICT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췄다”며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민첩한 대응이 가능하고 확실한 비전과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해 KT의 기업가치를 성장시킬 최적의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KT 안팎에서는 구 대표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된다. 구 대표의 불통 행보로 KT 내부 갈등이 심화됐고, 타 기업들과 협업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KT는 탈통신 일환으로 OTT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지만, 넷플릭스가 국내에 상륙할 당시 LG유플러스가 발 빠르게 협업해 치고나갔고 SK텔레콤 역시 지상파 방송 3사와 손잡고 웨이브를 키웠다”며 “반면 KT의 OTT 플랫폼 시즌은 존재감이 미미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KT가 손대지 않는 신사업은 없지만, 제대로 하는 신사업은 드물다”고 덧붙였다.
KT는 지난 1월 KT파워텔 매각을 발표했다. 그러나 매각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며 당초 3월 말 마무리될 예정이었던 매각 일정이 미뤄졌다. 정부의 공익성 심사 일정이 늦춰진데다 기습적으로 매각 결정이 이뤄진 데 대해 노조가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KT파워텔 노조는 “구 대표는 소통 없는 디지코 전환에만 매몰돼 국민기업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며 “KT파워텔은 KT그룹 내 통신관련 계열사 중 독자사업을 하며 이익을 내고 있는 몇 안 되는 회사”라고 주장했다.
구현모 대표는 KT의 불법 정치자금 후원 사건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은 지난 6일 KT의 한 임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등 최근 KT 불법 정치자금 후원사건 수사를 재개했다. 검찰 조사가 경영진을 향하면 구현모 대표도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구 대표는 쪼개기 후원이 이뤄졌던 황창규 전 회장 재임 시절 황 전 회장의 비서실장과 경영기획부문장을 지냈다.
구현모 대표는 차기 대표 후보로 선정될 때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후보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KT는 대표이사 취임 이전 발생한 문제는 사임 권고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낸다.
KT는 2020년 3월 주주총회에서 원안대로 승인된 경영계약서를 통해 “이사회는 대표이사가 임기 중, 대표이사 직무와 관련된 불법한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입히고 그러한 행위로 인하여 1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된 경우, 주주총회를 통한 대표이사 해임 절차를 거치기 전에 이사회 결의로 대표이사에게 사임을 권고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KT 관계자는 “CEO 경영계약서에 이사회의 사임 권고를 받아들인다는 조항을 넣은 것은 다른 기업에서는 거의 없는 사례”라며 “해석의 차이는 있겠지만 임기 이전 발생한 사안에 대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쓴 것이 아니라 대표 임기 중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사임한다는 내용을 담아 투명경영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구현모 대표 관련) 검찰 조사를 전망할 수 없으나 조사 결과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