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슈퍼리그의 창설 발표는 찬반을 떠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들이 개설한 트위터 계정은 단 하나의 게시물이 없음에도 단숨에 10만 명의 팔로어가 따랐다. 사진=유럽 슈퍼리그 트위터
#갑작스레 발표된 빅클럽들 계획
지난 19일(한국시각) 축구계 전체를 뒤흔들 소식이 전해졌다.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유럽 슈퍼리그 창설 계획이 발표된 것. 20개 팀이 참여하는 슈퍼리그는 각국 리그, 유럽축구연맹(UEFA)이 주관하는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와 별개로 치러지는 경기였다.
15개 창립 멤버는 고정적으로 슈퍼리그에 참가하고 나머지 5개 구단은 유동적일 수 있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창립 멤버 중 12개 구단이 결정됐다. 스페인 3구단(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과 잉글랜드 6구단(리버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첼시, 토트넘 홋스퍼) 그리고 이탈리아 3구단(유벤투스, AC 밀란, 인터 밀란)이다.
슈퍼리그 참가를 천명한 이들은 일제히 유럽의 축구 클럽 모임인 ‘유럽클럽협회(ECA)’를 탈퇴했다. ECA 회장을 맡고 있던 안드레아 아넬리 유벤투스 회장은 슈퍼리그 부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ECA 회장으로서 챔피언스리그의 변화를 꾀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챔피언스리그를 부정하고 새로운 리그의 수뇌부로 옮기자 충격은 더했다. 슈퍼리그 창설이 발표된 시점은 UEFA가 챔피언스리그 개정안을 발표하기 직전이었다.
유럽 12개 빅클럽이 슈퍼리그를 결성한 큰 이유 중 하나는 코로나19로 인한 재정난이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 사진=연합뉴스
#빅클럽들 기존 체제에서 뛰쳐나간 이유
슈퍼리그 창설의 선두에는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 섰다. 그는 적극적으로 나서 슈퍼리그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구단 재정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고 점차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 축구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 각국 리그나 챔피언스리그의 수익 분배에 대한 빅클럽들의 불만 또한 슈퍼리그가 만들어진 이유였다.
결국 이들이 기존 체제에서 뛰쳐나간 것은 ‘돈’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이들의 계획대로라면 슈퍼리그는 큰 수익이 보장된 무대였다. 미국 최대 규모 금융기업 JP모건 체이스가 7조 원가량의 막대한 금액을 투자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이어졌다. 슈퍼리그 참가만으로도 각 구단들은 4000억 원 규모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받는 상금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축구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에는 일부 공감대가 형성됐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수 구단들은 재정적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리그와 구단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빅클럽, 빅리그도 예외는 아니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최근 재정 문제가 겹치며 장래가 기대되는 아르투르를 유벤투스에 내줘야 했다. 거금의 이적료로 선수들을 수집하던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손흥민 월드컵 못 뛴다? 격렬한 반대 부딪힌 슈퍼리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12개 빅클럽의 계획은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은퇴 선수나 현역 선수, 감독 등 축구인, UEFA와 국제축구연맹(FIFA) 등 단체, 팬, 언론 등이 일제히 이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맨유 레전드 출신 개리 네빌의 인터뷰는 특히 많은 팬들의 공감을 샀다. 그는 “굉장히 역겨운 행동”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15개 구단이 강등 없이 고정적으로 참가하는 슈퍼리그의 운영 방식을 지적했고 팬들을 고려하지 않은 그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팬들도 강하게 저항했다. 각 구단 지지 그룹들은 하나둘 응원 철회의 뜻을 내비쳤다. 일부 팬들은 거리로 나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21일 열린 첼시와 브라이튼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앞두고선 슈퍼리그 창설을 반대하는 팬들이 경기장으로 향하는 첼시 구단 버스를 막아서는 사태도 발생했다.
UEFA와 FIFA도 이를 반길 리 없었다. 슈퍼리그 창설은 UEFA가 주관하는 챔피언스리그의 관심도와 위상을 떨어뜨릴 수 있는 일이었다. 알렉산데르 체페린 UEFA 회장과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입을 모아 슈퍼리그 창설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며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구단 소속 선수들을 유로, 월드컵 등 국가대표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하겠다”고 경고했다. 토트넘 소속 손흥민이 당장 2022 카타르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각국 정부까지 대응에 나섰다. 슈퍼리그 참가 팀을 배출하지 않은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환영 의사를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반대 뜻을 밝혔다. 특히 영국 정부는 슈퍼리그 참가 구단들에 대해 코로나19 지원금 몰수, 소속 선수 워크퍼밋 발급 불가 등의 엄포를 놨다.
슈퍼리그 결성은 현지 팬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첼시는 거리로 나선 팬들에 막혀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제 시간에 치르지 못하기도 했다. 첼시 디렉터를 맡고 있는 페트르 체흐(사진 오른쪽 소리치는 인물)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직접 팬들 앞에 섰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실패로 돌아간 개혁
갑작스러웠던 빅클럽들의 개혁 시도는 다시 갑작스럽게 마무리됐다. 21일 잉글랜드 구단들의 ‘탈퇴 러시’가 이어졌다. 잉글랜드 6개 구단 모두 슈퍼리그 공식 탈퇴를 발표했고 곧 이어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 구단,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도 슈퍼리그를 떠났다. 3개 구단만 남은 슈퍼리그는 진행이 잠정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짧은 시간 내 재결성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슈퍼리그의 와해에는 격렬한 반대가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축구 클럽의 근간인 팬들이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특히 잉글랜드 구단들의 경우 정부의 강한 제재 시도 때문이라는 해석이 이어졌다.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재정적 문제가 다른 리그에 비해 심각하지 않기에 미련 없이 슈퍼리그를 떠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12개 창립멤버 중 6개 구단이 빠져 나가 실현 가능성이 적어지자 나머지 구단들도 발을 뺐다.
일부 빅클럽들의 ‘유럽 축구 개혁’ 시도는 삼일천하로 일단락됐지만 축구계에 많은 고민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향후 축구계에서 어떤 변화든 또 일어날 여지를 남긴 것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