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예지에 대한 광고주들의 손절이 이뤄졌다. 사진=영화 ‘내일의 기억’ 홍보 스틸 컷
2004년에 연예인 한 명을 돕기 위해 무려 25명의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아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바로 고인이 된 최진실이었다. 당시 최진실은 경기도의 한 신도시 아파트 분양광고 모델로 활동하던 도중 가정폭력 등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이혼했다. 이에 광고주인 S 건설은 최진실의 불미스러운 가정사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광고모델에 대한 여론 악화로 중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며 30억 50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무료 변론에 나선 변호인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광고모델 때문에 아파트 분양사업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은 책임전가이자 반여성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의 일원인 강지원 변호사는 “최진실 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폭력 피해자이자 이혼한 여성 연예인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사회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대법원은 “광고주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광고계약을 하는 것은 이들의 신뢰와 명성 등 좋은 이미지를 이용해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라며 “최진실에게 이미지 손상에 대한 책임이 없더라도 그 손상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계약상 의무가 있는데 멍든 얼굴과 충돌 현장을 촬영토록 허락하는 등 품위 유지 약정을 위반했다”며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결국 서울고법이 2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여론의 역풍이 거셌다. 대법원 판결 직후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은 “가정폭력 피해사실을 밝히는 것은 품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며 “최진실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은 대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 최진실 사건은 여론이 연예인을 적극 지지하는 분위기였고 법조계와 시민단체 등까지 나섰음에도 패소로 마무리됐다. 이후 당시 대법원의 판결 내용은 물의를 빚은 연예인과 광고주의 소송에서 자주 활용됐다.
2011년에는 걸그룹 카라의 소속사 DSP미디어가 의류업체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멤버 3명(한승연, 니콜, 강지영)이 탈퇴의사를 밝혔다가 번복하면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됐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의류업체는 대법원 판례를 기반으로 “광고주가 유명 연예인과 광고계약을 하는 이유는 긍정적 이미지를 활용하려는 것인데, 카라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 계약을 위반했다”고 고소 사유를 밝혔다.
결국 DSP미디어가 의류업체에 5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다. 2014년 5월 서울고법은 “카라는 분쟁으로 부정적인 보도가 나오는 등 이미지가 상당한 정도로 하락했다”며 “카라와 소속사 사이의 전속계약 효력을 둘러싼 분쟁은 광고출연계약에 따른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2014년에는 이수근이 자동차용품 전문업체 불스원에게 피소됐다. 이수근이 불법도박으로 적발되자 그를 광고모델로 쓰던 불스원이 2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불스원 측은 “이수근의 불법 도박 탓에 자사 이미지가 급락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모델로 등장한 광고를 더는 집행할 수 없게 됐다”며 손해배상을 주장했다. 이 사건은 “이수근 씨 등이 불스원 측에 7억 원을 배상하라”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강제 조정 결정이 확정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요즘에는 이런 흐름은 더욱 강력해졌다. 광고모델인 연예인이 물의를 빚을 경우 바로 광고를 내리는 소위 ‘손절’이 이뤄지고 이후 대대적인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진다.
역사왜곡 논란이 일었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시청자들의 압박으로 광고주들이 손절에 들어가며 결국 2회 만에 종영됐다. 사진=박정훈 기자
연예계에서 ‘광고주 손절’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은 구혜선 인스타그램 폭로 이후 광고주들이 연이어 안재현과 손절한 2019년 즈음이다. 당시 구혜선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안재현과의 불화를 고백한 뒤 이혼 문제를 두고 폭로전을 이어갔다. 이에 광고계는 바로 안재현에 대한 손절에 들어갔다.
이런 흐름은 지난 몇 년 새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제는 아예 대중이 물의를 빚은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기업에 직접 손절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한다. 심지어 불매운동을 시작하겠다며 광고주를 압박하기도 한다. 연예인 관련 사례는 아니지만 최근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시청자들의 압박으로 광고주들이 손절에 들어가며 결국 2회 만에 종영됐다.
최근에는 서예지에 대한 광고주들의 손절이 이뤄졌다. 유한건강생활의 여성건강케어 브랜드 뉴오리진 이너플로라를 시작으로 마스크 브랜드 아에르, 메이크업 브랜드 루나, 화장품 및 뷰티업체 라 부띠끄 블루 등이 연이어 손절이 들어가며 광고와 공식 SNS에서 서예지 지우기에 돌입했다.
아직 법적 대응이 이뤄졌다는 소식까진 들려오고 있지 않지만 제품이나 브랜드 이미지의 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물론 법정 다툼을 통해 법적인 판단이 나오겠지만 손해배상 청구액이 수십억 원에 이를 수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