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위) 이인람 위원장이 ‘천안함 재조사’ 결정을 두고 논란이 커지자 사의를 밝혔다. 사진=최준필 기자
사건은 신상철 씨(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가 2020년 9월 7일 ‘천안함 폭침 원인을 밝혀 달라’는 취지로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군사망위는 같은 해 9월 25일 신 씨에게 공문을 보내 진정을 반려했다. 군사망위 내부 규정을 보면 진정 접수에 관한 판단은 대외협력담당과장 전결 사항이다. 대외협력담당과장은 이례적으로 내부 조사총괄과 법무팀 검토를 거쳤고, 상임위원과 위원장에게 보고한 뒤 반려 승인을 구두로 받았다.
탁경국 상임위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구두로 보고 받았고 반려하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위원장에게도 보고가 된 것으로 안다”며 “당시 이미 민군합동조사단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더 이상 밝힐 진실이 없고, 관련 전문성이 부족한 위원회의 능력 밖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상임위원은 위원장 아래에서 위원회 조사를 총괄하는 자리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다른 사건과 함께 보고가 올라가서 천안함 재조사 진정을 비중 있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위원장에게 보고된 건 맞다”고 전했다.
진정이 반려된 것을 두고 신상철 씨가 고상만 사무국장에게 2020년 10월 14일 항의 전화를 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고 사무국장은 다음 날인 10월 15일 실무진을 불러 ‘신 씨의 진정서를 접수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내부 법률 검토를 거친 뒤, 상임위원과 위원장 승인까지 받은 사안을 뒤집으라고 시킨 것이다. 이때 이 위원장은 입장을 번복해 신 씨의 진정을 접수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군사망위는 10월 15일 천안함 재조사 진정을 접수 처리했고, 3개월 뒤인 12월 18일 ‘조사 개시’ 결정을 했다.
군사망위는 2020년 12월 14일 조사개시 결정안에서 “(진정인이) 어뢰 공격에 의한 폭발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고 있으므로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므로 조사 개시함이 타당”하다고 기재했다. 또 군사망위는 2020년 12월 7일 천안함 사건 처리방안 검토 보고서에서 “국가인권위원회 등 다른 조사기관은 제3자 진정에 대해 피해자가 조사를 원하지 않는 경우 각하하도록 되어 있으나, 우리 위원회는 이와 같은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어 천안함 전사자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에게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조사를 해도 된다고 봤다.
고상만 사무국장은 군사망위가 발족하기 전인 2017년 3월 29일 방송인 김용민 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김용민 브리핑’에 출연해 천안함 재조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고 사무국장은 당시 “북 어뢰에 폭발 침몰이라고 정부는 말하고 있는데, 폭발하기 위해선 매우 엄청난 화약이 폭발해야 하지 않나”라며 “그런데 사건 당시 화약 냄새를 맡은 생존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2020년 9월 14일 열린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활동 보고회에서 고상만 사무국장(왼쪽)이 사회를 보고 있고 이인람 위원장과 탁경국 상임위원 등은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또 다른 관계자는 “사무국장은 군사망위 사무만 관장하고 조사에 개입해선 안 되는 자리”라며 “위원장과 사무국장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무국장이 진정 접수 처리를 종용한 뒤 위원장도 입장을 바꾼 건 맞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이 위원장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고상만 사무국장도 여러 차례 연락에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고 사무국장은 4월 13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진정인이 유선으로 왜 반려했냐고 항의하며 접수를 다시 요구해 내가 담당자에게 규칙대로 접수 처리하라고 얘기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고 사무국장은 또 “진정에 대해 각하 또는 조사개시를 결정하는 건 위원장, 상임위원을 포함한 위원회 전체회의”라며 “나는 천안함 진정 사건에 대한 각하 또는 조사개시 결정에 개입한 바 없다”고 덧붙였다.
위원회 사무를 관장하는 고 사무국장이 조사에 관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고 사무국장은 군사상유가족협의회(유족회) 사건과 관련해 매달 3명의 조사과장에게 유족회 사건 진행 상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매달 이뤄지지 않았지만 보고는 진행됐다.
고 사무국장은 과장 면담뿐 아니라 사건 담당 조사관 개인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사무국장이 조사관을 만나 조사 속도를 높이라는 취지로 채근한 것으로 안다. 조사관들이 사무국장 면담을 끝내고 오면 스트레스를 받아 보고서를 집어 던지는 등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족회와 소통하는 역할을 하는 사무국장이 과장들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 받을 순 있다고 본다. 하지만 조사관을 개인 면담한다면 조사관은 압박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언급했듯 고상만 사무국장은 일요신문의 여러 차례 연락에 응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건들 개입 여부와 관련해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천안함 진정 사건 이외 다른 사건에서도 유족들이 국장인 내게 직접 의견을 내면 담당 과장에게 ‘사건을 잘 살펴보라’고 얘기한 정도”라며 “특정 사건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