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이어 강하늘은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로 또 한 번 순정남 캐릭터를 갱신했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강하늘은 문득 추억 속에 떠오른 초등학교 동창에게 무작정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가 답장을 받게 되면서 설레는 풋사랑을 경험하게 된 삼수생 영호 역을 맡았다. 삼수생 시절인 2003년과 2011년 현재를 오가며 손 편지로 이어진 인연을 그리는 순정남의 모습을 ‘강하늘답게’ 잘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삼수생 시절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늘 찌푸리고 뚱해 보이는 표정을 짓다가도, 답장을 받는 날에는 세상 천지에 나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얼굴로 변하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까지 울렁이게 만든다.
“먼저 영호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삼수생으로서의 평상시 삶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뚱해 보이는 표정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소희의 편지로 영호의 하루하루 삶이 설렘과 기다림으로 물들잖아요? 마치 이제까지는 좀 밋밋한 색의 삶이었다면 좀 더 수채화처럼 물들어가는 그런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편지를 받았을 때의 반응으로 그런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무채색이던 영호의 삶을 잔잔하지만 눈이 부시도록 물들인 장본인은 아쉽게도 그의 추억 속 동창은 아니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동창의 여동생 소희(천우희 분)는 언니를 대신해 영호에게 답장을 보내고, 마치 화선지에 물방울이 번지듯 조용하고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게 된다. 다만 아무래도 편지로 이어진 인연이다 보니 러닝타임 내내 영호와 소희는 직접 얼굴을 맞대는 일이 없다. 촬영할 때는 각자 녹음한 내레이션을 들으며 맞추는 식이었다는 게 강하늘의 이야기다.
극 중 영호(강하늘 분)와 소희(천우희 분)는 편지로만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어 두 배우는 녹음 내레이션으로 연기를 맞췄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이처럼 소희가 영호에게 있어 서로를 위로하고 또 기댈 수 있는 존재이자 영호의 성장을 돕는 도움닫기인 반면, 또 다른 여성 캐릭터인 수진(강소라 분)은 다소 애매한 역할을 취하고 있다. 삼수생 시절 영호에게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수진을 영호는 제대로 밀어내지도, 그렇다고 받아들이지도 않은 채 모호한 관계를 유지한다. 우정을 떠난 남녀 관계에서 영호의 태도는 ‘어장관리’가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 강하늘은 “영호가 사랑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느낀 우리 영화의 매력은 ‘정확한 감정’이 없다는 거였어요. 딱 한 가지로 ‘좋아한대, 안 좋아한대’ 하고 표현하는 게 우리 영화의 톤과는 좀 맞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수진에게도 영호가 수진이를 좋아해, 안 좋아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얘 생각을 많이 하는데 내가 얘를 좋아하는 걸까?’ 하는, 좋아한다는 마음 바로 그 밑에 있는 지점에 머무르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 말로 하면 희망고문, 어장처럼 느껴질 것도 같은데(웃음). 개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영호는 그런 느낌은 아니고 사랑에 대해 많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소희의 편지는 무채색이던 영호의 삶을 수채화로 바뀌게 하는 마법같은 존재다. 사진=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스틸컷
이처럼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영호부터 2019년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용식이까지 최근 강하늘이 맡았던 캐릭터는 사랑을 잘 모르더라도 ‘직진부터 하고 보는 순정남’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유독 순정남 캐릭터를 맡게 되는 이유를 묻자 “저도 이유를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모르겠어요, 그 이유를(웃음). 아마 감독님이 (저를) 다루기 쉬워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제가 그 역할에 어울린다고 봐주시면 저는 너무 감사하죠. 다만 제가 순정남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 모습을 관객 분들이 믿게 해야지’ 하는 의도가 들어가면 관객 분들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 또 우리 모두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그런 의도가 드러나면 거부감부터 생기거든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캐릭터를 느끼고, 그걸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해요.”
그런 강하늘의 최근 고민은 자신이 세운 목표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라고 했다. 사람들의 앞에서 ‘배우 강하늘’이라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도록 배우로서의 자신을 가다듬고 싶다는 게 그가 꾸준히 밝혀 온 목표였다. 그런데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면 그 목표와의 거리가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후회나 조바심으로 채찍질하기보다는 그저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아직까지 사람들 앞에서 배우 강하늘이라고 당당하게 말해 본 적이 없어요. 사실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일이다 보니,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지금은 하루하루 더 재미있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엔 저 최종 목표에 다다르지 않을까 싶거든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