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하루가 멀다 하고 거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유력 차기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새 정치세력’ 구축의 운을 띄우고 있다. 일각에선 초선 의원들이 쇄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국민의힘에 실망해 김 전 위원장에 합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초선 의원들도 국민의힘을 이탈하기엔 딜레마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2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주호영 원내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8일 퇴임 이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을 향해 연일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아사리판’ ‘꼬붕’ ‘작당’ 등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지난 4월 20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거취에 대해 “지금 국민의힘에 들어가 흙탕물에서 같이 놀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백조가 오리밭에 가면 오리가 돼버리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신당을 만들어 킹메이커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제3지대 신당 창당 의지를 내보인 금태섭 전 의원과 4월 16일 조찬 회동을 가지면서 이런 전망에 더 무게가 실렸다. 또한 김 전 위원장은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차기 대선 구도 속 윤석열 전 총장의 거취에 대해 조언을 하며, 윤 전 총장과 조만간 만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하지만 김종인 전 위원장이 과거 본인의 말을 뒤집고 제3지대를 구축할지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을 비롯해 과거 사례들을 들며 ‘제3지대’ 무용론을 강조한 바 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금 전 의원과 회동 이후 신당 창당론에는 선을 긋기도 했다.
대신 김 전 위원장은 제3지대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세력’을 언급했다. 그는 4월 19일 TV조선 인터뷰에서 차기 대선에 대해 “강력한 대통령 후보자가 밖에서 새 정치세력을 규합, 선거 캠프에서 대통령 출마를 하면 그것도 가능하다고 본다”며 “윤석열 전 총장이 스스로 하나의 새로운 정치세력을 갖고 출마하면, 그 자체가 대통령 후보로서 준비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당선을 모델로 거론했다. 김 전 위원장은 “마크롱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할 때 누구도 제3지대라고 한 적 없다. 스스로 새 정치세력을 형성해 대선에 출마하고 당선되니까 전통적인 두 정당(공화당 사회당)이 무너지고 마크롱 대통령의 앙 마르슈가 다수 정당이 되는 형태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윤석열 전 총장과 손잡는 데 성공한다 해도 대선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조직력과 자금 등 선거 인프라가 필요하다. 제1야당 국민의힘과 관계를 무작정 끊어낼 수만은 없는 이유다.
이에 김종인 전 위원장은 외부 세력을 만들어 국민의힘을 흡수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TV조선 인터뷰에서 “외부의 큰 대통령 후보가 새로운 정치세력을 갖고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이 같이 합세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그 움직임을 주도할 세력으로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이 지목되고 있다. 국민의힘 전체 의원 101명 중 초선은 과반인 56명이다. 초선 의원들은 재보선 다음 날인 4월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힘을 바로 세우고 철저하게 혁신해 나가는 데 앞장서겠다”며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함께 한계를 극복해나가겠다”고 당 쇄신을 다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중진들은 김종인 전 위원장과 설전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차기 당권을 두고 갈등을 보이며 자중지란에 빠진 모습이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회동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제안하고, 최다선 서병수 의원 등 일부 중진들이 사면론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잘못됐다’는 ‘탄핵 불복’을 주장했다. 이에 초선 의원들은 ‘쇄신 노력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발언’이라고 반발, 당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차기 당권에 5선의 주호영 당대표 대행과 조경태 의원을 포함해 4선 홍문표 의원, 3선 윤영석 조해진 의원 등이 도전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초선인 김웅 의원도 변화와 혁신을 위해 전당대회 도전 뜻을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이 김웅 의원을 물밑에서 접촉했다는 말이 나온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사임 직후부터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을 비롯해 중진들을 향해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것도 초선 당대표를 세워, 국민의힘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게끔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4월 8일 국회 소통관에서 ‘4·7 재보궐선거 승리 이후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되겠다’며 기자회견을 가진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 사진=박은숙 기자
더 나아가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당대회에서 개혁적 당대표가 선출되지 않고, 이후 당이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에 실망한 초선 의원들이 대거 이탈해 김종인 전 위원장의 ‘새 정치세력’에 합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3선 의원은 “대선은 자금과 조직뿐 아니라 국회 원내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 전 위원장과 초선 의원들의 연결고리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은, 결국 김 전 위원장이 일부 초선 의원들을 당 밖으로 끌어내려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초선 의원들의 연쇄 이탈은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초선 의원 56명 중 32% 비중인 18명은 비례대표다. 비례대표의 경우 소속 정당이 제명을 해야만 당을 떠나도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어, 탈당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지역구 의원 38명 중 68.42%인 26명이 지역구가 TK(대구·경북) PK(부산·울산·경남)다. 국민의힘 텃밭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만큼 국민의힘을 떠나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의원들은 본인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윤석열 전 총장이 정치에 입문할지, 대선후보로 나서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없다. 그럼 의원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먼저 움직인다면 윤 전 총장과 정치철학과 가치관이 일치했을 경우 가능한데, 윤 전 총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대립 외에 비전을 보여준 것이 있느냐”며 “결국 대선을 앞두고 야권은 통합할 텐데 초선 의원들이 먼저 위험을 감수하며 탈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 역시 “초선들의 이탈 가능성은 전무하다. 김종인 전 위원장과 윤석열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 실체가 없는데 당적을 버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국 차기 권력이 유력한 곳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비례대표의 경우 탈당은 힘들다. 하지만 공천권만 확보되면 국민의힘에 남아서도 김종인 전 위원장의 새 정치세력에 지원을 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결국 관건은 김종인 전 위원장이 윤석열 전 총장과 새 정치세력을 규합할 수 있느냐, 국민의힘이 앞으로 치러지는 전당대회에서 쇄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김종인 전 위원장이 새 정치세력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이 바로 서면 힘을 잃는다. 누가 당대표에 선출되느냐에 따라 여러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