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과 옵티머스 등 잇따른 부실 사모펀드 사태로 지난해부터 피해본 금융소비자가 급증하면서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역할이 부각된다.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사진=최준필 기자
#거부하기도, 받기도 쉽지 않은 조정안
분조위는 금융 소비자가 전문성을 갖춘 금융사와 대등한 지위에서 분쟁을 해결하기 어렵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소송을 통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마련됐다. 소송 외 분쟁해결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누구나 분쟁조정 신청이 가능하지만 모두 분조위로 회부되지는 않는다. 합의 권고나 기각 및 수용하기 어려워 논쟁이 필요한 경우, 논란의 소지가 있고 피해당사자가 많아 객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안건, 기존 조정례(이미 조정된 사례)가 없는 경우 등만 다룬다”고 설명했다.
분조위는 판·검사 또는 변호사, 소비자단체 임원, 금융회사 및 유관기관·단체에서 15년 이상 근무경력이 있는 자, 전문의 자격이 있는 의사, 기타 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 등 위원장 1인 포함 총 3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다. 기존엔 30명 이내였으나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3월부터 시행하면서 5명이 늘었다.
분조위 구성 시 금융투자협회 등 금융 유관 단체와 한국소비자원 등 소비자단체 소속 직원을 각각 1명 이상의 동수로 지명해 위원으로 위촉해야 한다. 소비자 및 금융사 측 입장을 알 만한 위원을 동일 수로 뽑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조정위원은 필요할 경우, 151명의 전문위원 자문을 받는다.
조정안을 양 당사자가 수락한 경우 당해 조정안은 재판상의 화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분쟁 조정안은 권고 수준이기에 양 당사자 중 한 쪽이라도 반대하면 조정이 성립되지 않고, 법원의 소송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다만 금융사를 감시 감독하는 금감원의 위상 때문에 금융사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명분 없이 조정안 수용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권에서는 분조위를 합의기구 정도로 인식하고 있고, 따라서 사건마다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며 “조정안을 거부했을 때의 부담은 있지만 그렇다고 수용하면 배임 혐의로 주주들에게 소송당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사모펀드 이슈가 많아지면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워 분조위의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분조위를 통해 분쟁조정이 이뤄진 건수는 23건으로, 그 중 불수용이 8건(피해자 측 2건, 금융사 측 6건), 수용이 15건을 기록했다.
연이은 사모펀드 부실 판매 사태로 피해자가 급증하면서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라임펀드 대신증권 피해자 모임이 4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피해보호 촉구 집회를 하는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분조위 개선을 위한 숙제는?
조정안의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은 분조위가 가진 가장 큰 한계로 꼽힌다. 사안에 따라 금융사가 조정안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할 수도 있고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결국 거대 금융사들과 법적 공방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감원 내부적으로 분조위의 위상을 높이려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직무 정지·문책 경고·주의적 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뉘고 이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분조위가 제안한 조정안 수용 여부는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기준 중 하나다. 아울러 금융사가 분쟁조정절차 중에 일방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행위를 차단하고 분조위의 합의 권고 등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금융 소비자 보호실태 평가 때 불이익을 부과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앞서의 금융업계 관계자는 “감독당국이 분조위 조정안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징계 수위를 경감하겠다고 하니 금융사들은 감독당국의 권고안을 거절하기가 힘든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의 금감원 관계자도 “지난해 4월부터 제재 수준을 결정할 때 분조위 수용 여부를 경감 사유에 반영하도록 하는 내부 프로세스를 만들어 적용해왔다. 그 결과 최근 금융사들의 수용률이 높아진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해 8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편면적 구속력’에 관한 내용이 담긴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분조위 조정안을 금융 소비자가 수락한 경우 해당 조정안은 금융사의 수락 여부와 관계없이 재판상 효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분쟁조정의 실효성을 높이고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강화한다는 차원이다.
다만 이 법안은 법조계와 금융권, 정치권의 엇갈린 입장 때문에 입법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재판청구권 등 재판상 권리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위헌적 요소가 있고, 금융사에 지나치게 불리해 형평성이 어긋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법조계에서 편면적 구속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크고 사회적 합의도 되지 않아 도입하긴 이르다는 의견이 많다.
일각에서는 분조위 구성과 운영 방식의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35명까지 위촉 가능한 위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법조계(10명), 학계(10명)이고 소비단체(3명), 금융계(2명), 의료계(1명) 등은 소수로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것. 분조위에서 조정안 결정 시 제대로 된 선례나 명확한 기준을 따르지 않고 그때그때 다른 방식으로 배상률을 정하며 일관성 없이 움직인다는 지적도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라임이나 옵티머스 등 펀드 사태 관련해 여러 사람이 민원을 제출했음에도 일부 건만 분조위를 열어 정리하고, 나머지 건들은 금융사들이 알아서 피해자들과 합의를 보게끔 유도하고 있다.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면 직접 조정해야 하는데 책임을 회피하고 판매사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분조위 구성도 균형적이지 않다. 관변인사 위주로, 금융 실무를 잘 알고 소비자 보호와 관련해 꾸준히 정책 제안을 해온 시민단체나 전문가는 제대로 섭외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