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 판교오피스 입구. 사진=일요신문DB
#온라인 경쟁 본격화한 IT·유통·패션업계
최근 온라인 패션플랫폼 1위 무신사가 여성 패션플랫폼 ‘29CM’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은 충분하다. 앞서 무신사는 3월 세쿼이아캐피털과 IMM인베스트먼트로부터 130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무신사는 투자금을 여성복, 명품, 골프웨어 등의 신규 카테고리 확장과 물류 시스템 확충, 해외 진출 등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신사는 29CM 인수와 관련해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무신사의 약점으로 꼽히는 여성 패션을 강화하지 않으면 업계 1위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어 인수에 나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실제 IT·유통 대기업들이 패션 플랫폼 사업에 속속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지난 4월 14일 카카오는 카카오커머스의 스타일 사업 부문을 인적 분할해 여성복 패션플랫폼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과 합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합병 법인은 지그재그가 확보한 빅데이터와 카카오의 기술력·사업 역량 등을 결합할 계획이다. 특히 카카오는 물류 접근성이 용이한 일본·중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글로벌 패션 플랫폼으로 키울 방침이다. 지그재그는 동대문 등 전국의 소호 의류쇼핑몰이 한데 모인 곳이다. 현재 4000곳 이상의 업체가 입점해 있다.
네이버는 브랜디, 신상마켓 등과 제휴를 맺고 동대문 패션 분야 중소상공인(SME)들의 글로벌 진출을 꾀할 방침이다. 네이버와 손잡은 SME들은 물류·배송에 대한 고민 없이 제품 셀렉션과 코디, 큐레이션 등 판매와 마케팅에만 집중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지난해 네이버는 국내 물류업계 1위인 CJ대한통운과 지분을 맞교환하고, 브랜디에 100억 원을 투자했다.
4월 1일 SSG닷컴은 무신사와 경합을 벌인 끝에 여성 패션 플랫폼 더블유컨셉코리아(W컨셉)을 인수했다. 지난해 신세계그룹은 벤처캐피털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의 1호 투자 기업으로 에이블리를 운영하는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을 선정해 30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이번 인수와 투자는 SSG닷컴이 오픈마켓 서비스 도입 이전 경쟁력 있는 상품을 공급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성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SSG닷컴이 종합몰로 성장하기 위해선 오픈마켓 진출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며 “최근 네이버와 전략적 제휴도 좋지만, 직접 판로를 통해 중·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 W컨셉 인수로 경쟁력이 약한 의류 판매 기반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SSG닷컴이 무신사와의 경쟁 끝에 W컨셉 인수에 성공했다. 사진=SSG닷컴 제공
#몸값 높아지는 패션 플랫폼의 숨은 경쟁력
IT·유통 대기업들의 패션플랫폼 인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자라잡고 있다. 우선 패션을 잡으면 종합 쇼핑 플랫폼으로 발돋움할 수 있고 동시에 실적까지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온라인 쇼핑 거래액(약 161조 원) 중 패션이 45조 4976억 원(28.2%)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가방, 신발, 액세서리 등을 제외한 의복 쇼핑 거래액 비중만 9.5%로 약 20조 원 규모다.
고객수와 거래액, 입점 브랜드를 확보해 놓은 패션 플랫폼을 인수하면 단기간에 경쟁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지난해 연간 거래액을 살펴보면 △무신사 1조 2000억 원 △지그재그 7500억 원 △에이블리 3800억 원 △W컨셉 3000억 원 △브랜디 3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위 5개 패션 플랫폼의 월 이용자 수는 300만~400만 명대에 이른다. 특히 500만~800만 명에 이르는 고객들이 대부분 MZ세대(1980년생~2004년생)로 구성됐기 때문에 미래 사업 방향과 마케팅 전략 수립에 활용될 수 있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아마존, 쿠팡 등 국내외 이커머스 강자들이 공을 들여도 장악하지 못한 곳이 패션 시장”이라며 “국내 이커머스업계가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새롭게 플랫폼을 구축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을 선점하리란 보장도 없다. 이 때문에 IT·유통 대기업들이 기존의 패션 플랫폼을 인수해 카테고리를 강화·확대하는 방편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 플랫폼이 애플리케이션(앱)에 구축한 쇼핑 편의 서비스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고객 맞춤형 상품 추천 AI(인공지능) △소비자들의 구매 행동을 종합한 순위 △‘검색-쇼핑-결제’ 원스톱 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것은 기본이다. 브랜디는 AI 알고리즘 분석을 통한 수요 예측 시스템을 구축해 당일 배송 시스템을 가능하게 했다. 무신사는 AI 기술 기반 이미지 검색 서비스, 키와 몸무게에 따라 체형을 세분화해 상품 착용핏을 총 16가지로 보여주는 ‘16핏 가이드’ 등을 도입했다.
패션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지그재그만 보더라도 전체 직원 중 개발 관련 인력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며 “패션 플랫폼들은 수년간 수천 곳의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AI, 알고리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패션에 적합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