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지난 21일 시즌 네 번째 등판에서 5이닝 4실점으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AFP/연합뉴스
류현진은 지난 21일(한국시간) 보스턴 레드삭스와 메이저리그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 5이닝 4실점했다. 피안타 8개에다 3점 홈런을 내주면서 평균자책점(ERA)이 1.89에서 3.00으로 치솟았다.
이 경기 후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류현진의 직구 구속 저하가 문제의 신호였다’고 언급하면서 ‘평균 구속이 시속 88.7마일에 그쳐 평소보다 체인지업을 더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강속구 투수가 아닌 류현진은 시속 90마일의 공을 던질 때 좋은 성적을 낸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류현진은 이날 평소보다 이틀 더 쉬고 등판했지만 구속이 살아나지 않았다. 지난해 류현진의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90.17마일(145.1km)이었는데 이날은 평균 구속이 시속 88.7마일(142.7km)에 그쳤다.
류현진은 경기 후 화상 인터뷰를 통해 “구속이 조금 낮게 나왔지만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전과 똑같이 준비했음에도 4회 몸쪽 공 위주의 투구 패턴이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아 홈런을 맞았을 뿐 구속이 오르지 않은 게 전체 투구 내용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는 이야기다.
김광현은 시즌 첫 등판에서 3이닝 만에(5피안타 3실점) 마운드를 내려왔다. 사진=AP/연합뉴스
시즌을 앞두고 허리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김광현은 지난 18일 필라델피아 필리스 원정 경기를 통해 시즌 첫 선발 등판 경기를 가졌고, 3이닝 5피안타 3실점하며 일찍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날 김광현의 최고 구속은 시속 90.2마일(145.2km), 평균은 시속 88.5마일(142.4km)이었다. 지난해 평균 시속 89.9마일(144.7km)과 1.4마일(2.2km) 정도 차이가 있었다. 2019시즌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시절의 평균 시속 147.1km에 훨씬 못 미친다.
2019년 LA 다저스에서 류현진의 전담 트레이닝 코치를 맡았던 김용일 LG 수석 트레이닝 코치는 지금도 류현진의 경기를 빠트리지 않고 챙겨 본다. 2015년 겨울부터 2019년 겨울까지 오프시즌 동안 류현진의 개인 훈련을 맡아서 진행했던 터라 누구보다 선수의 몸 상태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김 코치는 류현진의 구속이 오르지 않으면서 체인지업 등 변화구 위주의 투구를 많이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지난 보스턴전에서는 포심패스트볼도 많이 던졌지만 다른 때보다 변화구를 많이 사용하는 걸 볼 수 있었다(보스턴전 83개의 투구 수 중 포심패스트볼 27개, 체인지업 27개, 컷 패스트볼(커터) 17개, 커브 12개). 류현진은 속구 구속이 시속 92~94마일이 나와야 경기 내용이 좋은데 그날은 이례적으로 많은 변화구를 사용했다. 변화구 제구가 좋은 편이라 계속 던질 수밖에 없었겠지만 속구 구속 올리는 데 좀 더 집중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류현진은 시즌 초반에 구속이 확 올라가는 편이 아니다. 시즌 초 5경기 선발 등판까진 지켜봐야 할 것이다. 최고 구속이 시속 91마일 정도 나온 걸 보면 앞으로 경기를 거듭할수록 충분히 구속은 오를 것으로 보인다.”
김용일 코치는 류현진의 자존심을 건 승부 근성이 상황에 따라 득과 실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류현진은 자존심이 매우 강한 선수다. 패한 팀과 재대결했을 때 어떻게 해서든 극복해내려고 노력한다. 결과가 좋을 때는 그게 플러스 요인이 되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독이 될 수 있다. 타선이 매섭기로 소문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는 뉴욕 양키스 외에 보스턴 레드삭스가 류현진의 새로운 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부분이 선수한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김 코치는 류현진의 마운드 운영을 통해 그가 지난 오프시즌 동안 얼마나 몸 관리를 철저히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무리 위기에 처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류현진의 강점이다. 그런 강점을 유지하기 위해 겨울마다 혹독하게 훈련하고 있는데 올 시즌도 변함없이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겨울 동안 김광현과 함께 김해 상동구장(롯데 자이언츠 퓨처스 구장)에서 동고동락했던 허재혁 롯데 트레이닝 코치는 11월 중순에 상동구장에서 김광현을 처음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말한다.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였다. 지난해 코로나19 탓에 운동량이 상당히 부족했고, 뒤늦은 시즌 개막으로 개인 훈련을 이어왔던 터라 체력이나 근력 등이 이전에 비해 떨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몸 상태로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게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겨울 훈련 동안 체력과 근력 보강 운동에 집중했다. 선수들은 30대 이후부터 조금씩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속도를 늦추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김광현과도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이어갔다.”
허 코치는 체력 보강 훈련에 집중하느라 김광현의 캐치볼 시작이 다른 해에 비해 조금 늦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김광현은 계속 캐치볼 하는 루틴이 있다. 이전에는 시즌 마치고 한두 달 만에 바로 캐치볼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체력 훈련에 집중하느라 캐치볼을 1월부터 시작했다. 그게 이전의 훈련 내용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캐치볼을 늦게 시작한 게 시즌 준비하면서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시즌이 진행될수록 구속은 오를 것이고 김광현도 자리를 잡아갈 것이란 점이다.”
허 코치는 선수 스스로 구속에 얽매이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른 선수라면 몰라도 타고난 신체 조건과 스마트한 머리,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김광현은 크게 걱정할 게 없다. 최근 통화하면서 다소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구속은 시즌 치르면서 자연스레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조언해줬다. 30대 이후 선수한테는 운동량을 늘리거나 강도 높은 훈련보다 잘 먹고 잘 쉬는 게 더 좋은 보약이다. 그래서 영양제와 식사 잘 챙겨 먹고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용일 LG 트레이닝 코치는 김광현의 구속과 관련해 트레이너 관점으로 이렇게 풀어냈다.
“지난해 단축 시즌으로 운영됐지만 김광현 입장에서는 메이저리그 데뷔 해에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가진 힘보다 과하게 사용했을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어깨나 팔꿈치에 긴장감이 올 수 있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지금 구속이 안 오른다고 해서 무리하게 힘을 쓰면 다른 부위에 긴장감을 준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천천히 빌드업해야 한다. 팀에서 관리를 잘해주겠지만 무엇보다 선수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시즌 중 속구 구속은 갑자기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선수 스스로 몸의 변화에 집중해서 맞춤형 몸 관리를 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