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동아쏘시오그룹의 주요 계열사로는 박카스 제조사로 유명한 동아제약, 오츠카제약과의 합작법인 동아오츠카 등이 꼽혔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원료 의약품 제조 계열사 에스티팜이 주목을 받고 있다. 에스티팜이 지난해 mRNA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 진출한 후 코로나19 백신 CMO 후보 업체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mRNA 방식 코로나19 백신으로는 미국 모더나와 화이자의 백신이 있다.
동아에스티, 동아제약 등 주요 계열사의 본사가 위치한 서울 동대문구 동아쏘시오그룹 웰컴센터. 단 에스티팜의 본사는 서울 강남구에 있다. 사진=일요신문DB
최근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는 모더나 백신의 CMO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박병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모더나는 2021년에 한국, 일본, 호주 등 3개 국가에 자회사를 설립해 코로나19 백신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주목할 점은 자회사가 있는 국가의 기업에만 CMO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으로 한국에 자회사가 설립된다면 한국 기업을 CMO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했다.
모더나는 크게 원료의약품(DS) 생산과 완제품(DP) 생산, 두 가지로 나눠서 CMO 계약을 맺고 있다. mRNA 백신의 DP 생산 과정은 조성·충진·포장 3단계로 나뉜다. LNP는 조성 과정에서 쓰이는 핵심 기술로 세계적으로도 해당 기술을 가진 업체는 몇 군데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티팜이 제네반트와의 계약을 통해 LNP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에스티팜은 지난 3월 자체적으로 LNP 기술을 개발해 한국 특허 출원을 마쳤다. 그러나 에스티팜의 기술은 임상이 완료되지 않아 최소한 수개월 후에야 기술 사용이 가능하다. 백신 CMO를 노리는 에스티팜으로서는 당장 사용이 가능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수주에 유리하다. 에스티팜 스스로도 이번 계약에 대해 “오직 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 및 상업화를 위한 것”이라며 “특허 소송 걱정 없이 자유롭게 코로나19 mRNA 백신을 직접 개발·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공시했다.
그간 모더나의 CMO 파트너로 거론된 업체는 녹십자, 한미약품, 에스티팜 등이었지만 생산 능력 등을 감안하면 에스티팜은 상대적으로 뒤처진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번 LNP 기술 계약 체결 이후 에스티팜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백신의 CMO를 위해서는 관련 기술을 이전받아야 하지만 LNP는 향후에도 신약을 만들 수 있는 핵심 기술이기에 바이오 업체들은 관련 기술 유출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며 “에스티팜이 LNP 기술을 가져옴으로써 모더나의 기술을 훔칠 생각이 없다고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다만 에스티팜이 DP 생산에서 필요한 충진·포장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 에스티팜 내부에서는 국내 충진·포장 전문 업체와 컨소시엄을 맺어 모더나 백신 CMO를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에스티팜은 DS 생산을 위한 핵심 기술도 갖고 있어 DP 대신 DS CMO 계약을 맺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에스티팜 관계자는 “CMO 수주는 모더나에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내부에서는 상당히 기대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백신은 단순히 업체 간 계약이 아니라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CMO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난 4월 26일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 사진=박정훈 기자
코로나19 백신은 단순히 업체 간 계약이 아니라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CMO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백영하 범정부 백신도입 태스크포스(TF) 백신도입총괄팀장은 지난 4월 15일 “국내 제약사가 해외에서 승인된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한 CMO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며 “해당 백신은 오는 8월부터 국내에서 대량 생산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해당 백신을 러시아 스푸트니크V로 예상했지만 다음날인 4월 16일,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어떤 백신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스푸트니크V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에스티팜에 따르면 이번 LNP 기술 계약총액은 약 1496억 원이다. 에스티팜의 자본총액(2020년 말 기준) 2968억 원에서 절반이 넘는 액수다. 에스티팜 측은 “계약금 약 25억 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액이 향후 상업화 후 매출액과 연동된 마일스톤(개발·허가 등 단계에 따라 기술료를 지불하는 방식) 금액”이라며 “에스티팜의 자금 부담은 크지 않을 전망”이라고 공시했다.
그럼에도 CMO 수주에 실패하면 비용을 떠나 어렵게 LNP 기술을 얻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 때문인지 에스티팜은 독자적인 코로나19 백신 개발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수주에 실패할 것을 대비한 ‘플랜B’로 보이지만 에스티팜 측은 백신 수주와 개발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아스트라제네카(AZ), 모더나, 화이자, 얀센 등 글로벌 기업들은 임상을 마치고 백신 판매를 진행하고 있지만 코로나19가 끝내 종식되지 않으면 백신 수요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고착화된 감염병)을 예측하고 있다. 에스티팜의 백신 개발이 무의미한 것은 아닌 셈이다. 에스티팜 관계자는 “독자적인 백신 개발은 아직 검토 단계”라면서도 “모더나가 약 8개월 만에 임상을 끝내고 백신을 출시한 만큼 이르면 2022년 상반기 출시가 가능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에스티팜의 행보는 회사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수준인 만큼 강정석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의 거취와 연관짓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2018년 리베이트 혐의로 구속된 강 회장은 2020년 9월 출소한 이후 아직 경영에는 복귀하지 않았다.
에스티팜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32.68%의 동아쏘시오홀딩스이고, 2대주주는 15.25%의 강정석 회장이다. 다른 주요 계열사인 동아제약, 동아에스티, 동아오츠카 등의 경우 강 회장의 지분이 없거나 1% 미만으로 보유하고 있다. 지주사 동아쏘시오홀딩스에 대한 지분율도 27.50%로 기업 오너 치고는 낮은 편이다. 이마저도 상당수가 금융권에 담보로 잡혀 있다.
에스티팜의 주가 상승은 강정석 회장 지배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강 회장은 2016년에도 에스티팜과 동아쏘시오홀딩스의 주식 교환을 통해 동아쏘시오홀딩스 지분을 확보한 바 있다. CMO에 대한 기대감 덕인지 2020년 초 3만 원 수준이었던 에스티팜의 주가는 최근 10만 원을 훌쩍 넘기고 있다. 반대로 국제 정세 등으로 인해 에스티팜이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면 강 회장 지배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