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고 이건희 회장이 남긴 유산에 대해 유족들이 부담할 상속세 납부액을 공개했지만, 구체적인 재산 배분에 대한 내용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일요신문DB
고 이건희 회장 소유의 삼성 계열사 지분은 삼성전자 4.18%, 삼성전자 우선주 0.08%, 삼성생명 20.76%, 삼성물산 2.88%, 삼성SDS 0.01% 등이다. 시가총액으로 약 24조 원, 지분에 대한 상속세는 11조 366억 원이다. 유족들이 납부할 상속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28일 이건희 회장이 남긴 유산 상속 방안을 공개했지만 유족들에게 이를 어떻게 배분할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상속세 납부시한인 4월 30일까지 1차 상속세만 내면 상속비율은 추후 정해도 문제가 없다.
#가장 중요한 내용 왜 빠졌나
분할 방식 공개가 미뤄진 배경에 대해 삼성 안팎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이건희 회장의 ‘유서’가 없거나, 있더라도 자세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관측에 우선 힘이 실린다. 유서는 2014년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부터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상속세와 삼성 지배구조의 열쇠로 재계와 시장의 관심을 받아왔다. 삼성은 최근까지 유서의 존재 여부를 밝힌 적이 없다.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도 구체적인 상속과 승계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지 않고 후계자로 이건희 회장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삼성 안팎에선 이번에도 별도로 유서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이건희 회장이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과 갈등을 직접 겪고 현대차그룹 등의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지켜보면서 유서를 남겼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지난 26일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금융당국에 삼성생명 대주주 변경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유서에 대한 의구심은 더 짙어졌다. 신청서에는 유족들이 삼성생명 지분을 공동으로 보유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개인별 지분을 특정하지 않고 공유 주주를 선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유서는 물론 이 회장이 생전에 상속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결국 재산 분할은 유족 간 협의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들 간 큰 이견은 없으나 협의가 완전히 마무리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구속됐고, 최근에는 충수염 수술로 한 달가량 입원하면서 유족들이 지분 분할을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 밖에 대규모 상속세 납부액, 사회 환원 계획과 지배구조와 직결될 지분 분할이 한꺼번에 공개될 경우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전략적으로 지분 변동 내용을 미뤘다는 해석도 있다.
#주식 배분 시나리오는
당초 시장에선 유족들이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건희 회장의 삼성 지분 일부를 계열사인 삼성물산에 증여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왔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사실상 삼성물산이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7.33%)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 4.18%를 삼성물산에 넘기면 이 부회장의 직접 지배력은 약해지더라도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이 5.01%에서 9.19%로 확대돼 실질 지배력은 더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삼성물산에 자산수증이익에 대한 막대한 법인세를 떠넘기는 모양새가 된다는 점, 간접 소유에 따른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 등 비판의 소지가 많다.
고 이건희 회장(사진)의 삼성전자 지분은 이재용 부회장이 대부분 상속받고, 삼성생명 지분은 가족들이 함께 보유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사진=연합뉴스
유족들은 이 방법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12조 원의 상속세를 모두 내겠다고 밝혔다. 세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이건희 회장의 삼성 지분을 직접 물려받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는 오너 일가 중심의 삼성 지배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유족 입장에선 그룹 내 매출의 80% 정도를 책임지는 삼성전자 지배력 확보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법정 상속 비율은 부인 홍라희 여사가 9분의 3(6조 3000억 원)으로 가장 높다. 이재용 부회장과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각각 9분의 2(4조 2000억 원)씩 상속 받는다. 하지만 시장에선 이 부회장이 확실한 경영권 확보 차원에서, 특히 삼성전자 지분을 단독으로 물려받을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지만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보유 지분은 0.06%, 0.7%에 그치는 만큼 가족들이 지분을 몰아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경우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3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지배력이 강화된다.
삼성전자 대주주인 삼성생명의 경우엔 거론되는 선택지가 더 있고, 변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지분 전부나 대부분이 이 부회장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첫 번째다. 특수관계인이 금융회사 지분을 매입하려면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 유족 가운데 이 부회장만 유일하게 특수관계인으로 등재돼 있어 절차상으로도 이 방안이 가장 빠르다.
다만 앞서의 삼성생명 대주주 변경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유족들이 공유 주주를 선택했고, 각자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지분 분산이 이뤄질 수도 있다. 현재 삼성생명 최대주주인 이건희 회장의 지분이 20.76%로, 지분이 분산될 경우 삼성물산(19.34%)이 최대주주로 올라서지만 결과적으로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지분 19.34%를 가지고 있어 이건희 회장 지분 20.76% 중 절반인 10%가량은 매각해도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어서다. 유족들이 지분 10%를 매각할 경우 1조 7000억 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인수할 수 있는 곳은 금융지주사나 대형 사모펀드 등으로, 시장에선 금융지주사 한 곳을 유력 후보로 꼽는다. 다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유족들의 지분 매각 목적이 상속세 재원 마련이라 대규모 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해야 하고, 10% 지분은 경영권 확보에 부족하기 때문.
변수는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하는 내용의 삼성생명법(보험업법)의 국회 통과 여부다. 현재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주식 보유분을 시가로 평가하고 총자산 3% 초과분은 처분해야 한다. 이 경우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8.8% 중 상당 부분을 매각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전체 지배구조가 흔들린다. 이 때문에 유족들이 서두르지 않고 법 개정 상황을 지켜보며 지분 분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분 분할 공개가 장기화될 수 있고, 만약 법 개정 고려 없이 지분을 분할하더라도 법안이 폐기되지 않는 한 삼성 일가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는다.
이부진·이서현 자매의 계열 분리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매가 보유한 삼성 계열사 지분이 삼성물산과 삼성SDS밖에 없고 이재용 부회장보다 지분율도 낮다. 이번 지분 상속을 계기로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20%를 보유해야 하는데 수십조 원의 재원이 필요해 당장 추진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유족 간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라 협의가 마무리되면 공시를 통해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