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수감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왼쪽)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4·7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압승을 거뒀다. 정당 지지율도 국민의힘 당명 변경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사임했지만,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쇄신과 개혁을 이어나가겠다는 다짐이 나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거론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론’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재보선에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4월 21일 청와대에 초청 받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공개 건의했다. 국민의힘 원내 최다선(5선)인 서병수 의원은 4월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불복하는 발언까지 해 논란이 됐다.
이들이 제기한 사면론을 두고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과 당내 청년 인사 등 소장개혁파는 강하게 반발했다. ‘도로 한국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 조수진 의원은 자신의 SNS에 “대통령이 탄핵 받아 물러난 것은 역사와 국민에게 큰 죄를 저지른 것”이라며 “탄핵을 받아 물러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것이 정당정치고 책임정치”라고 지적했다.
김재섭 비대위원도 비대위 회의에서 “(대정부질문에서) 사면 얘기가 나왔는데, 민주당이 재보선에서 회초리를 세게 맞는 걸 보고서도 떠오르는 게 없는지 우리 당 의원들께 진지하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상승하고 있던 국민의힘 지지율은 하락세로 바뀌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이 나온 직후인 4월 23일과 24일 이틀간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실시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힘은 전주보다 4.9%포인트(p) 하락한 29.1%를 기록했다. 반면 민주당은 전주 대비 1.9%p 오른 30.9%를 보였다. 민주당이 오차범위 안에서 국민의힘을 다시 앞섰다.
국민의힘 중진들은 당 차원 입장이 아닌 개인적 견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전직 대통령의 사면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은 4월 21일 당 비상대책회의 이후 “당 전체 의견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면서도 “전직 대통령들이 오랫동안 영어 생활하는데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한 3선 의원은 “내부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이 교도소에 오래 있는 것에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나아가 탄핵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 내부 분위기가 그렇다보니 오세훈 시장이나 박형준 시장, 서병수 의원도 이렇게 역풍을 불지 생각을 못하고 사면론을 꺼냈을 거라고 본다”며 “서병수 의원 이후 ‘탄핵 부정’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다. 당에서도 사면에 대해 더 이상 말 안하기로 했다. 사면론이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 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주호영 권한대행은 4월 26일 당 비대위회의 직후 “사면에 대해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면서도 “우리 당의 입장은 대통령이 결단할 사항이고, 우리가 사면을 구걸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5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면론이 다시 떠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차기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후보들이 보수 성향 당원들의 지지 결집을 위해 사면론을 꺼내들 수 있기 때문. 당권 주자인 홍문표 의원은 4월 21일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국민 화합 차원에서 문 대통령의 용단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이 사면에 손 한번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앞서 3선 의원은 “전당대회에서 당권주자들의 사면론에 대한 입장이 다시 나올 수 있다. 후보들은 무엇이 당원들의 지지를 더 받을 수 있을지 계산을 해보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지금도 사면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참고 있는 것을 보면 사면론을 꺼내면 오히려 고립된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전당대회와 사면론은 무관하다고 본다”며 “여당이 사면론을 주장하면 관용과 포용, 국민통합이 된다. 하지만 야당이 얘기하면 과거지향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면 중도층을 포섭할 수 없다. 사면론이 국민의힘에 좋은 전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논의되고 있는 룰 개정이 사면론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현행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투표결과 70%에, 일반시민 여론조사 30%를 반영해 당대표를 선출한다. 하지만 최근 일반 여론조사 비율을 상향하는 룰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100% 국민전당대회’를 주장하기도 한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전당대회에서 일반시민 중도층의 비중이 높아지면 사면 주장이 힘을 더욱 잃게 될 것”이라며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는 당원 비중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뤄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4월 21일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과 박형준 부산시장(왼쪽)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에 앞서 청와대 상춘재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사면론에서 후퇴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을 넘기고 있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고, 문재인 정부에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킨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에 결자해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세훈 박형준 시장의 사면 건의에 대해 “전직 대통령 두 분이 수감돼 있는 일은 가슴 아프다. 두 분 모두 고령이고 건강도 안 좋다고 해 안타깝다”면서도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도록 작용돼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야당의 태도가 문재인 대통령의 두 전직 대통령 사면 결정에 동력을 잃게 했다는 비판도 있다.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차기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임기 내에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스스로 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야당이 대통령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야당을 보면 오히려 퇴로를 막아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국민의힘이 국민들께 반성하고 국정과제 해결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도 정부여당이 사면을 고려해볼까 말까인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입장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사면해 달라 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사면 반대여론이 높아지니까, 주호영 권한대행은 ‘사면을 구걸하지 않겠다’고 발언까지 했다. 이러면 정부여당이 사면을 어떻게 해줄 수 있고, 해주고 싶겠나. 국민의힘이 오히려 자신들의 당 출신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KSOI의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2.2%가 “사면을 말하기에 이르다”고 답했다. “사면을 고려할 때가 됐다”는 응답은 40.3%였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