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진행하는 포스코 사업이 미얀마 군부와 연결고리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 사진=박정훈 기자
포스코는 4월 16일 미얀마 군부기업과 합작관계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스전 사업은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선 가스전 사업의 수익 일부가 미얀마 군부에 흘러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국제 인권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포스코를 향해 미얀마 군부와 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했고, 최정우 회장이 강조한 ESG경영 이념을 두고 지적이 나왔다.
#포스코의 알짜배기 ‘미얀마 가스전’
미얀마 군부기업과 합작관계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포스코가 가스전 사업은 놓지 못하는 데 이유가 있다.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이미 2000년부터 미얀마에서 가스전 사업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포스코인터내셔널 전신인 대우실업 때부터 진행됐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00년 미얀마 A-1, A-3 광권을 따냈고 2004년엔 3개의 가스전을 발견했다. 2008년엔 A-1, A-3에서 나오는 가스를 중국 국영석유회사에 2013년부터 판매하자는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포스코는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A-1, A-3에 확보한 지분은 51%로 가장 많다. 이어 인도국영석유회사(ONGC) 17%, 미얀마국영석유사(MOGE) 15%, 인도국영가스회사와 한국가스공사가 각각 8.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포스코가 미얀마 군부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미얀마 광권의 지분을 가진 MOGE가 미얀마 군부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포스코 관계자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MOGE가 탄생한 배경을 보면 포스코 측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MOGE는 1963년 네 윈 군부가 ‘버마 석유 산업’(Bermese Petroleum Industry)을 국유화해 설립한 국영 기업으로 미얀마 내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 등을 담당한다. MOGE는 2015년 아웅산 수치 정부가 들어선 뒤 군부와 유착, 불투명한 회계로 수차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 관계자는 “유엔(UN)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이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미얀마 가스나 석유에서 발생한 수익이 군부로 흘러들어가지 않게 제재가 필요하다고 적시했다”고 전했다.
미얀마 군부가 민주화를 상실한 채 정국을 움직이면서 포스코인터내셔널의 한숨은 깊어졌다.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통해 연간 3000억~4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기 때문. 심지어 매장된 가스가 모두 바닥날 때까지 계속 이익을 낼 수 있어 캐시카우(Cash cow)나 마찬가지다. 포스코인터내셔널 관계자는 “가스전 운영 사업은 합작사업이 아닌 국가사업”이라며 “미얀마 군부와 무관하게 지속돼왔다”고 해명했다.
#포스코 사업과 뗄 수 없는 기업, MEHL
포스코는 꾸준히 미얀마에 전략적 투자를 이행해왔다. 이때마다 계속 등장한 미얀마 현지 기업이 있다. MEHL(Myanma Economic Holdings Public Company Limited)이다. MEHL은 미얀마경제지주사로 일종의 군인복지법인이다. 이곳은 현지에서 광업, 금융, 관광, 통신 등 다양한 부문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미얀마군은 MEHL의 지분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다.
지난 1월 MEHL이 미얀마 투자기업관리국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MEHL은 총 38만 1636명의 개인 주주와 1803곳의 기관 주주가 소유하고 있다. 사진=국제앰네스티
세계최대인권센터 국제앰네스티에서 전한 보고서를 보면 국제법상 범죄 등 중대한 인권침해에 연루된 미얀마 군부대 및 군 고위급 인사가 MEHL의 주주에 포함됐다.
특히 지난 1월 MEHL이 미얀마 투자기업관리국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MEHL은 총 38만 1636명의 개인 주주와 1803곳의 기관 주주가 소유하고 있다. 38만 명에 이르는 개인 주주는 모두 복무 중이거나 퇴역한 군인이다. 기관 주주들은 지역사령부, 사단, 대대, 중대, 참전용사단체 등이라는 점도 서류에 명시됐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미얀마 쿠데타 발생 직후 MEHL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포스코는 1997년 MEHL과 합작관계를 이어왔다. 이들은 당시 아연도금강판 생산회사인 MPSC(미얀마포스코스틸)를 설립했고 이는 포스코 자회사의 미얀마 진출을 이끌었다. 2013년 포스코강판과 MEHL이 합작해 컬러강판을 생산하는 미얀마포스코C&C도 설립했다. 미얀마포스코C&C 지분은 포스코강판이 70%, MEHL이 30%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연간 매출은 200억 원대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2019년 5월 MPSC 지분 70%를 자회사인 포스코강판에 매각했다. 즉 미얀마 내 사업체를 미얀마포스코C&C로 통일한 것. 다만 MEHL이 보유한 30%의 지분은 유지했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로 해외 인권단체들은 포스코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MEHL과 합작관계를 끊으라고 촉구했다. 국내 많은 시민단체들도 포스코 본사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다. 결국 포스코강판은 지난 16일 “미얀마법인(미얀마포스코C&C)의 합작 파트너사인 MEHL과 관련한 이슈가 제기됨에 따라 MEHL과 합작관계를 종료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군부 자금줄 NO” vs “포스코 거짓말”
그러나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포스코강판과 달리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계속 하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포스코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정권 변화로 인해 군부를 지원한다는 주장은 근거도 미약하고 논리적이지 않다”며 “가스전 운영 수익은 계약에 따라 미얀마 정부와 가스전 컨소시엄사에 분배되고 미얀마 정부 수익금은 정부에서 관리하는 국책은행 계좌로 입금되기에 군부에 지급되는 자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측에 따르면 가스전 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미얀마 정부 55%, 프로젝트사에 45%로 배분되며 미얀마 정부가 관리하는 국책은행으로 바로 입금된다. 하지만 쿠데타 발생 후 미얀마의 임시정부 역할을 하는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를 현재 군부가 장악해 MOGE로 들어가는 가스전 수익금이 군부로 들어가고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진수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얀마가 가진 자원 때문에 (포스코 측에서) 시장적 가치가 커 손 떼기 힘든 것”이라며 “경제적 협력을 원한다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과 협력관계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이 같은 입장에 따가운 눈초리가 향한다. 특히 일부 기업들의 과감한 조치와 비교하면 포스코의 태도는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미얀마에서 의류 제조 합작투자를 진행하던 태평양물산은 국제앰네스티에 보낸 답변서를 통해 “지난 3년간 연평균 7만 5000달러를 MEHL에 지급해왔지만 윤리 책임을 담보할 방법에 대해 MEHL로부터 답변을 받지 못해 오는 9월까지 파트너십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기린홀딩스도 미얀마 쿠데타 발발 직후인 지난 3월 MEHL과 합작투자사업 계획을 접었다. 일각에선 해당 기업들과 달리 포스코인터내셔널의 가스전 사업은 연간 영업이익 절반 이상을 차지해 사업 철수를 고려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미얀마 10대 교역국 중 하나인 우리나라가 사업 투자를 철회한다고 하면 미얀마 군부에 적잖은 압력이 된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CRPH가 임명한 틴 툰 나잉 기획·재정·산업부 장관대행은 최근 “외국 기업들이 석유·가스 대금을 군부에 계속 지불한다면 이는 인권침해에 쓰일 수 있다”며 “미얀마 국민의 민주주의 복원 노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1년 유엔 인권이사회도 동일한 부분을 꼬집은 바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당시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기업활동이 인권침해의 원인이 되거나 이에 기여하는 것을 사전에 막고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해당 기업 측이 실사를 통해 확인해서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는 4월 27일 미얀마 군부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며 포스코의 사업 중단 조처를 강력히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열린민주당, 정의당 등 일부 의원들은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실질적 조치 이행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며 “수천억 원에 달하는 해상가스전 사업의 수익 역시 미얀마 군부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필요한 경우 사업 중단 및 배당금 지급유예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포스코가 사업을 진행하면서 군부자금에 대해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며 “이익만이 아닌 국가와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현명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최정우 회장의 ‘내우외환’
지난 3월 연임에 성공한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국내 노동자 사건·사고로 이미 정치권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질타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적인 악재까지 부딪쳤다. 특히 포스코를 둘러싼 국내외 일련의 사태는 최정우 회장이 강조한 ESG경영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ESG경영은 기업이 단순히 이익을 내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최정우 회장은 2018년 취임 직후 ESG경영의 개념을 담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을 새로운 경영방침으로 설정했으며 여러 차례 친환경·사회적 책임경영 및 지배구조 개선 등을 추구해왔다. 포스코 노조 관계자는 “기업시민을 최우선 경영 과제로 정했던 최정우 회장의 신념이 무색해졌다”며 “(국내의 경우) 안전예산 투자에 맞춘 별도 예산이 내려오지 않았고 현장 노동자가 원하는 안전시설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최정우 회장이 2018년 취임 때부터 ESG경영을 강조해온 만큼 국내외 기업윤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정우 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투명하고 건전한 지배구조를 더욱 발전시켜 기업시민 경영이념을 실천하겠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경제개혁연구소 출신인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은 “최정우 회장과 관련해 환경 문제, 인권 문제, 노동 안전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왔다’라는 비판이 존재한다”며 “ESG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말은 번드르르하지만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있다. ESG경영을 제대로 보여줘야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