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차려진 2021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소에서 마스크를 벗어 본인 인증을 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4월 재보궐 선거가 끝난 후 김종인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으로의 복귀 가능성에 명확히 선을 그었다. ‘김종인 대표 추대론’에 불을 지폈던 일부 초선 의원에겐 직접 연락을 취해 “그럴 뜻이 없다”며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향해 ‘아사리판’ ‘꼬붕’과 같은 말을 써가며 연일 대립각을 세웠다.
대신, 김종인 전 위원장은 새로운 야권 세력을 만드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월 16일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을 만난 것도 그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 금태섭 전 의원은 현재 신당 창당에 나선 상태다. 정가에선 김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외부에서 거론되는 차기 야권 주자들을 한데 모으는 작업을 할 것으로 점쳤다.
특히 김 전 위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간 회동 성사 여부에 이목이 쏠렸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에 있을 때부터 윤 전 총장에게 호의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윤 전 총장의 ‘별의 순간’을 언급한 것도 김 전 위원장이었다. 김 전 위원장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막말에 가까운 비판을 쏟아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양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과 윤 전 총장은 그동안 대선 출마 방법, 시기 등을 놓고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김 전 위원장이 윤 전 총장의 ‘킹메이커’ 역할을 맡을 것이란 관측도 여기서 비롯됐다. 보궐선거 직후 김 전 위원장 한 측근 인사는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의힘으론 정권 교체가 힘들다고 본다”면서 “윤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차기 구도를 짜기 위해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최근 김 전 위원장 주변에선 윤 전 총장에 대한 회의론이 감지된다. 보수 야권이 아직 출마 여부조차 밝히지 않은 윤 전 총장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기류다. 이른바 ‘김종인 플랜B’다. 윤 전 총장의 대안을 찾거나, 또는 경쟁할 수 있는 후보를 찾아 판을 키워야 한다는 게 골자다. 앞서의 김 전 위원장 측근은 이렇게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출마를 안 할 수도 있고, 중도에 낙마할 수도 있고, 지지율이 급락할 수도 있다. 반기문 고건 등 과거 3지대 후보들을 보면 오히려 이렇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김 전 위원장이 직접 ‘돌발 변수’를 언급했는데, 아마 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후보들을 더 찾아야 한다. 기존 후보들도 다시 봐야 한다. ‘윤석열 메기효과(우월한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원희룡 지사도 4월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전 위원장이 제주도에 와 함께 식사했다”며 “김 전 위원장이 ‘흔히들 윤석열 지지율을 얘기하지만 지지율이란 것은 3개월, 6개월 뒤를 생각하면 허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원 지사는 “‘지금 (윤 전 총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쏠리지만, 어떤 내용과 역량 그리고 제대로 국가를 떠받칠 수 있는 민심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앞으로 6개월 정도가 거의 백지상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가에선 김 전 위원장 워딩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원론적인 발언이 아닌,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는 야권 재편의 연장선상에서 불거졌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윤 전 총장 외에 후보로 거론되는 김동연 전 부총리, 홍정욱 전 의원,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 등을 링 위로 부르기 위한 메시지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청와대 고위직 출신의 정치권 인사는 “김 전 위원장 정도 되면 어떤 후보가 대선에 나올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또 이길 수 있는지 계산이 나온다”면서 “김 전 위원장이 ‘윤석열의 콘텐츠’에 실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윤 전 총장이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 깜’이 안 된다는 게 김 전 위원장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 측에선 ‘플랜B’가 나온 이유를 두고 ‘윤석열 전 총장이 자초한 것’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김 전 위원장과 가까운 국민의힘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윤 전 총장이 시간을 끌고 있다’며 불쾌하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면서 “윤 전 총장이 삼고초려해도 시원찮을 판에, 김 전 위원장이 여러 번 신호를 보내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윤 전 총장으로선 신중해야 하겠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간을 볼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윤 전 총장 측에서도 제법 ‘센’ 발언이 나왔다. 윤 전 총장 ‘스터디 멤버’로 알려진 한 교수는 “우리가 김 전 위원장에게 도와달라고 구걸해야 한단 말이냐”고 반문하면서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의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김 전 위원장 측에서 윤 전 총장을 향해 마치 오디션을 보라는 듯한 식으로 일관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법조인 역시 “윤 전 총장 스타일상 준비 없이 쉽게 출마를 선언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외교 경제 분야 등 각계 전문가들과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면서 “윤 전 총장 지지율이 허상이라는 말을 하는데, 그런 분들은 같이 안 가면 된다. 굳이 윤 전 총장을 흔드는 것은 ‘대안’이 없거나, 최소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선 이러한 양상을 두고 김 전 위원장과 윤 전 총장 간 주도권 다툼에 무게를 둔다. 신당 창당, 야권 정계개편 등을 앞두고 양측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전 위원장이 굳이 차기 주자인 원희룡 지사에게 윤 전 총장 관련 발언을 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김 전 위원장은 원 지사뿐 아니라 보수 야권 차기 주자들을 연이어 만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격적인 ‘킹메이커’ 행보를 통해 윤 전 총장을 압박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을 향해서 다소 누그러진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B플랜’ 중 하나가 국민의힘 복귀 아니냐는 관측이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몇몇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만남에서 “애정이 없었다면 지적을 했겠느냐. 대선은 1야당 중심으로 치러야 한다는 소신엔 변함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앞서 김 전 위원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3지대 후보론 선거에 이기기 힘들다”고 강조한 바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