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건이 되어 합법적으로 건축허가를 내 준 겁니다. 그런데 일부 주민이 흑막이 있는 것 같다고 고발을 했습니다. 수사결과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교회가 지어지고 있었다. 아파트에 사는 한 여자가 공사를 방해하고 돈을 뜯어내야 한다고 주민들을 선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 그녀는 교회의 십자가 불빛이 자기의 집으로 반사된다고 또 시비를 걸어 돈을 더 뜯어냈다. 그녀는 선동과 민원제기로 재미를 봤다.
코로나 사태로 아파트 안에서 재택근무들을 하는 것 같다. 건축설계사는 구석방에서 도면을 만들었다. 화가가 거실을 아틀리에로 썼다. 초등학교 아이들 몇 명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주부도 있다. 집에다 상품을 보관해 두고 인터넷판매를 하는 부부도 있다. 아파트에서 더러 찾아오는 사람에게 법률상담을 하는 늙은 변호사도 있었다.
주민을 선동해서 이웃을 괴롭혔던 그녀는 아파트 값 상승을 공약으로 관리단장이 되려다가 실패했다. 분노한 그녀의 공격성이 아파트 내부로 향했다. 아파트들 문 앞이나 붙어있는 상가에 물품들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 소방서에 고발했다. 몇 명 아이들을 불러 논술을 가르치던 주부도 경고를 받았다. 아이들이 드나들면 아파트가 더러워지고 전기료가 더 든다는 이유였다. 상습적인 선동과 민원제기는 폭력적인 힘이었다.
포퓰리즘 사회에서 행정관청은 민원에 약했다. 민원을 제기하는 사항마다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이기적이고 무관심한 주민들은 그녀의 선동에 놀아나기도 했다. 그녀는 아파트의 관리사무소를 무시하고 자신의 대자보를 벽에 붙이기 시작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주민을 공격하는 내용도 서슴지 않았다. 관리사무소에서 그 부착물을 수거하자 그녀는 관리사무소장을 손괴죄로 고소했다.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관리사무소장을 쫓아내고 관리단장을 그런 식으로 쫓아냈다.
주민들은 그녀를 피하고 이사를 가기도 했다. 그녀는 어느 날 전신마비 장애인이 아파트에 사는 늙은 변호사를 찾아가 법률 상담하는 걸 봤다. 그녀 자신도 찾아가 무료 법률상담을 했었다. 그녀는 주거인 아파트를 변호사사무실로 사용했으니 건축법상 불법용도변경이라고 고발을 했다. 명분은 장애인이 드나들면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는 것이었지만 아파트 대표로 출마하는데 자기를 지지해 주지 않은 변호사에 대한 보복이었다.
도시나 시골이나 곳곳에 그런 독초 같은 존재들이 자라나고 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증오하고 물고 독을 뿜어낸다. 자기보다 약해 보이면 무시하면서 갑질을 하고 잘난 것 같은 대상을 보면 배 아파하고 증오한다. 천박하고 이기적인 정신병에 도덕불감증이 사회에 만연해 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없이 살았어도 이렇게 가시덤불 같은 세상은 아니었다. 이웃이 아프면 죽 한 그릇이라도 끓여가고 옆에서 집을 지으면 넉넉한 마음으로 도와주는 세상이었다. 내가 대학입시 공부를 할 때 동네가 가난했어도 앞집의 할머니는 몰래 고기 한 근을 대문 밑에 밀어 넣고 가기도 했었다. 그런 온돌방 같은 따뜻함이 지금은 냉동고 속 같은 독한 냉기로 변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던 시절 우리는 잘살아보자고 외쳤다. 그런데 그때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 왜 잘살아야 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 같다. 경제성장의 수치가 오르고 재산만 생기면 성공한 것이고 갑질을 해도 당연하다는 정신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그런 속에서 수채가에서 자란 독초 같은 존재들이 무성해진 것이다.
황폐해진 국민들의 마음 밭을 갈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양심의 혁명이다. 비위를 맞추려는 정치인은 많지만 사람들의 영혼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은 비 오는 밤의 별같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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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