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멜로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천우희.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지금까지 연기했던 선이 굵은 캐릭터와는 많이 다르다 보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이제까지는 캐릭터를 충분히 표현해 내려고 세세하게 분석하고 표현했는데 이번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도, 어떤 연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전작의 캐릭터와) 대비가 좀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냥 제가 원래 가지고 있는 모습들, 호흡들을 많이 쓰려고 했죠.”
강하늘과 호흡을 맞춘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천우희는 아픈 언니를 대신해 언니의 초등학교 동창인 영호(강하늘 분)의 편지에 답장하게 된 ‘책방 아가씨’ 소희 역을 맡았다. 부산 골목 어딘가에 있을 법한 낡은 책방에, 그곳 어디선가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웃집 언니 같은 캐릭터다. 이제까지 대중들이 천우희에게 기대하고 또 기억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처음엔 이질감을 느꼈지만 연기를 할수록 자신 안의 자신을 다시 보게 됐다는 게 천우희의 이야기다.
“이제까지 연기가 좋았던 건 제 원래 모습이 아닌 모습을 표현할 수 있어서였는데, 막상 연기를 하고 보니까 이건 내 안에 있던 어떤 것을 확장시켜서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희도 마찬가지예요. 이제까지 제가 보여드리지 못했던 약간의 포근함과 따뜻함, 일상적인 모습들과 편안함, 그런 것들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보이고 표현 방법에 있어서도 최대한 간소화, 최소화 시키려 노력했죠.”
상대역인 강하늘의 연기를 스크린으로 처음 봤다는 천우희는 “너무 설레고 귀엽게 연기했다”며 칭찬을 이어갔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강하늘 씨가 굉장히 설레게 연기하더라고요(웃음). 침대에 막 ‘퍽’ 하고 뛰어들기도 하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굉장히 귀엽게 잘 표현해 준 것 같아요. ‘여성 관객 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잘 파악하고 저격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너무 예쁜 미소로 설렘을 잘 표현해준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웃음).”
극 중 강하늘이 맡은 영호는 편지로만 인연을 이어가는 소희와, 자신의 곁에 항상 있는 수진(강소라 분) 두 명의 여성 사이에서 사랑과 우정이라는 감정의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 있어 차분하고 정적인 소희는 잔잔한 울림이면서 나도 모르게 젖어들게 하는 비 같은 존재라면, 적극적인 수진은 하늘 위를 눈부시게 수놓는 별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문득 천우희라면 사랑에 있어서 이 둘 중 누구에게 더 가까운 모습인지 궁금해졌다. 질문을 받자마자 천우희는 “이건 정말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저는 연애를 하기 전, 만남을 갖기 전에는 소희처럼 정말 느려요. 제가 의심이 많아 가지고 연애할 때 거리를 좀 두는 편이거든요(웃음). 그런데 만남을 시작했다 하면 수진으로 바뀌는 거예요. 연애를 시작하면 굉장히 적극적이에요(웃음). 이 두 가지 모습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공존하는 거죠.”
사진= ‘비와 당신의 이야기’ 스틸컷
사랑과 현실 그리고 미래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나날을 그린 영화다 보니, 보고 있자면 누구나 자신의 20대를 떠올리게 된다. 10대에 데뷔해 쉴 새 없이 달려 왔을 천우희의 20대는 어땠을까. “그냥 바보였다”는 단호한 답변이 나왔다.
“20대 시절의 천우희는 그냥 바보였어요, 바보(웃음). 아무 것도 몰랐어요. 진짜 지금도 ‘나는 뭘 알고나 있나? 세상을 알긴 하나?’ 싶을 정도예요(웃음). 사실 20대 때는 굉장히 막연하고, 어떤 의도나 목표 이런 게 없이 그냥 하루하루 즉각적인 반응으로 살아갔던 것 같아요. 꿈을 찾아가거나 쫓겨가거나 그러지도 않고, 그냥 막연함이더라고요. 뭔가를 하고 싶은 열정이나 이루고 싶은 조급함이라든지, 그 감정도 되게 작았어요. 너무 뭘 모르고 살았단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기록한 하루하루를 보며 스스로에게 조금씩 너그럽게 대하는 변화를 겪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일 한 줄이라도 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천우희에게 일기장은 그의 필모그래피보다 더 정확하고 또 객관적으로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게 하는 이정표 같은 존재다.
“3년 일기장, 5년 일기장이란 게 있어요. 한 권에 본인의 3년, 5년이 다 들어있는 건데, 그걸 보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 모습, 미래의 내가 어떻게 할지가 잘 보여요. 그래서 저는 영화보단 일기장을 보며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 같아요. 떠올려 보면 20대 때는 채찍질하는 게 많고 저 자신에게 있어, 특히 연기에 엄격했어요. 하루라도 더 성장하길 원해서 자신을 다그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좀 바뀌었어요. 스스로에게도 너그럽게 됐고, 내가 더 재미있게 하거나 심적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것을 하도록 바뀐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