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볼 테면 해봐’ 정권 출범 이후 줄곧 마찰을 빚고 있는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 세력과 소장파가 이번엔 개각을 놓고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4일 전당대회에서 이상득 의원이 곁눈질을 하며 정두언 후보의 정견발표를 듣고 있는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정가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개각을 둘러싸고 여권 친이계가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정권 출범 이후 줄곧 마찰을 빚고 있는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SD) 세력과 소장파가 개각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물밑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양측은 개각에 포함될 인물, 시기, 범위 등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에선 이러한 갈등 양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예산안 단독처리 후폭풍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 갈등까지 표출될 경우 민심이반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기 4년차를 맞게 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민간인 불법사찰 이후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개각을 기폭제로 다시 불붙고 있는 이상득-소장파 간 갈등의 뒤안길을 따라가 봤다.
‘개각’은 현재 청와대 내에서 금기용어 중 하나로 분류된다. 한나라당이 ‘국면전환용’ 조기 개각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쾌해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 한 관계자는 “당의 필요에 따라 (개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에 알아서 할 것이다. 당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2010년이 며칠밖에 남지 않았는데 연내 개각을 하자는 주장은 일정상으로도 무리”라고 말했다. 지난 12월 21일 김무성 의원이 “대통령이 올해 안에 공석으로 있는 감사원장을 임명해주기를 바란다”며 공개적으로 개각의 군불을 지폈지만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개각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는 것은 예산안 단독 처리와 안상수 대표의 실언 여파로 인해 가라앉은 여권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다. 또한 장외투쟁을 하고 있는 민주당을 인사청문회를 통해 원내로 끌어들이려는 계산도 담겨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무성 원내대표가 같은 공석이지만 청문회 대상이 아닌 국민권익위원장은 언급하지 않고 감사원장 임명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예산안 단독처리로 여야 관계가 얼어붙었는데 이에 대한 최종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는 게 일반 국민들의 인식이다. 인사가 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긴 하지만 청와대가 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여러 채널을 통해 이러한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했고 실제로 몇몇 참모들은 조심스럽게 개각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는 전언이다.
일단 청와대는 내년 1월 중순경 현재 공석인 감사원장, 국민권익위원장과 지난 8월 인사청문회 낙마로 교체하지 못했던 몇몇 장관들을 새롭게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인사 시기로는 ‘1월 10일’과 ‘1월 20일’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한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개각이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데 여러 사정상 미뤄졌었다”면서 “당의 (개각) 요청과는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 및 여러 사정기관 관계자들을 접촉해본 결과 현재 10여 명이 후보로 집중 ‘스크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명단엔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 박형준 전 정무수석, 이달곤 전 행정자치부 장관, 안대희 대법관,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 정동기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홍문표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김대식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류우익 주중대사 등의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정권 초 요직을 맡았던지라 ‘회전문 인사’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여권 일각에선 깜짝 인사의 발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선 이번 인사를 둘러싼 ‘SD 라인’과 소장파의 물밑 재격돌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벌어졌던 ‘궁중암투’가 또 다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MB 대선캠프 출신의 한 여권 고위 관료는 “누가 힘이 센지는 이미 결론 난 것 아니냐. SD와 정면승부를 벌이면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소장파도 잘 알고 있다”면서 “인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형님 세력을 상대로 소장파 일부 의원들이 ‘게릴라식’으로 공격하는 형국”이라고 귀띔했다. 이 대통령과 SD는 ‘핫라인’을 통해 인사는 물론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해 자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소장파가 ‘치고 빠지는’ 식으로 전략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스크린을 맡고 있는 경찰 측에 SD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와 관련된 정보를 흘리거나 야권의 청문회 타깃이 될 것이란 소문을 내는 게 소장파의 ‘작전’ 중 일부라고 한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소장파 측의 공세에 ‘형님 세력’은 처음에 비교적 ‘느긋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힘의 균형추가 이미 기운 상태에서 굳이 정면 대응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SD계로 분류되는 몇몇 정치권 인사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며 소장파를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SD 측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SD 라인이 적극 밀었던 한 인사가 스크린 과정에서 배우자의 부적절한 부동산 투기 문제로 낙마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SD가 후원했던 또 다른 인사는 과거에 연루된 비리가 적발되기도 했다고 한다. 자체적으로 경위 파악에 나섰던 SD 측은 그 배후로 소장파를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의 여권 고위 관료는 “스크린에 관여했던 실무진에게 정보를 전달했던 이가 소장파의 한 의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방심하고 있던 SD 쪽도 최근엔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털어놨다.
SD라인과 소장파는 내년 초에 있을 공기업 임원 인사를 두고서도 충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권 초 대부분의 공기업 요직을 SD 라인에게 빼앗겼던 소장파가 설욕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벌써부터 몇몇 공기업 내에서는 ‘낙하산 하마평’이 무성한 상태다. 한 공기업 고위 임원은 “누가 내정됐다더라 하는 말들이 파다하다.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줄서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한국전력, LH 등 주요 공기업 CEO 및 임원들의 교체설이 나오고 있는데 여권 핵심부에서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여의도에선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인사들이 최고 실세인 SD 라인과 접촉하려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기도 한다. 대선 승리에 기여하고도 ‘형님’ 세력에 밀려 소외됐었던 소장파 역시 비교적 수요가 많은 공기업 인사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양측의 ‘리턴매치’에 대해 ‘형님’ 측의 ‘KO승’을 전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컨설턴트 이재관 박사는 “이상득 의원에 대한 이 대통령 신뢰가 여전하기 때문에 소장파의 반격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도 소장파들 생각이 반영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SD 측 관계자들도 “이변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소장파도 이번을 ‘마지막 기회’로 판단,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수도권 출신의 한 친이계 의원 보좌관은 “이 대통령과 SD는 어차피 한배를 탄 것이다. 이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면 당연히 SD도 힘이 빠진다. 입각과 공기업 인사에서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세력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내년 4월에 치러질 재·보선과 2012년 총선을 위해서라도 (SD 라인에게) 절대 밀릴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인사는 어디까지나 임명권자의 고유권한”이라며 “그 누구의 뜻도 아닌 이 대통령의 판단과 의중에 따라 향후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임기 반환점을 돌며 후반기 국정 운영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추동력이 필요한 이 대통령이 여권 친이계의 주요 축인 SD 라인과 소장파의 의견을 그냥 흘려듣기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간 이상득 의원 측의 의견에 무게를 실어준 것으로 알려진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이번 인사와 관련해 ‘형님’과 ‘공신’들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까.
동진서 기자 jsdong@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