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2020년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예술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다양한 유형의 미술활동으로 문화를 통한 지역공간의 품격을 제고하기 위해 시행된 문화체육관광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공모사업이다. 투입된 예산만 약 1000억 원. 목표는 전국 228개 자치구에 공공미술작품을 1개씩 생산하는 것으로 사업 범위와 예산 면에서 모두 역대급 규모였다.
18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에 그려진 벽화. 사진=임준선 기자
사실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매년 마을미술 프로젝트라는 명칭으로 2009년부터 추진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사업을 전국 228개소에서 동시에 진행한 적은 지난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가장 사업 규모가 컸던 2009년조차 전국 21개소에서 시행됐을 뿐이다. 이후로는 매년 15개소, 10개소, 11개소 등 10개 단위를 유지하다가 가장 최근에는 그 규모가 5개소로 줄었다. 다시 말해, 228개소 가운데 절반이 넘는 지자체는 해당 사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함에도 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업이 시작된 2020년 6월 이후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사업 추진 일정은 계속해서 이월됐다. 당초 문체부가 계획한 사업 마무리 시점은 지난 2월이었다. 그런데 마감 시한이 다가오자 각 지자체들이 하나둘 사업 연장 신청을 내기 시작했다.
전라북도 순창과 부안군은 2월에 사업종료 기한 연장을 신청했다. 거제와 의령, 창녕, 고성, 남해, 합천, 밀양 등 경상남도의 11개 시·군은 3월이 돼서야 연장을 결정했다. 이들 대부분은 문체부가 정해놓은 촉박한 일정과 사업계획 변경 등의 문제가 겹쳐 제때 사업을 마무리하지 못 했다고 밝혔다.
수도권에서도 사업은 줄줄이 밀렸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2월 공공미술 프로젝트 선정 대상지 9곳의 재공모를 시작했고 4월 20일이 돼서야 작품에 대한 심의회를 열었다. 경기 동두천시도 3월 사업 주제 및 장소 선정, 작품 논의를 시작했으며 7월까지 사업을 완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 곳곳에서 사업 연장을 신청하자 결국 문체부는 2월 26일 사업기한 종료 이틀을 남겨두고 “공공미술 프로젝트 종료 시점을 6월 말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당초 계획한 일정에서 최소 4개월 이상 미뤄진 것이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코로나19에 따른 사업 지연과 기존 계획 보완 등의 문제로 정해진 기간 안에 사업이 마무리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의 논란도 잇따라 제기됐다. 세부적인 정부 지침이 없다 보니, 작가 선정에서 불공정 논란이 생기거나 인건비 차등 지급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일례로 거제시의 경우 한국예총 거제지회(거제예총)와 수의 계약을 맺었는데, 거제예총이 이 사실을 소속 회원이 가입된 인터넷 카페에 공지해 일반 지역 예술인들은 사업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예총 밀어주기 논란’이 일었다. 뒤늦게 문체부가 ‘주의’ 조치를 내리고 재공고하도록 했으나 지역 예술인의 분노는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대구 달서구, 울산 동구, 인천 계양구, 경기 양평군, 경남 창녕 등에서는 작가 선정 과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예산이 투명하게 집행되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예산을 총괄해야 하는 지자체에서 이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탓이었다. 강원도 삼척시는 최근 지역 작가팀의 대표가 일하지 않은 작가 11명에게 인건비 1200만여 원을 지급한 사실을 뒤늦게 적발해 지원금 환수 조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충청남도 홍성군의 경우 정산보고서 및 업무를 아예 사업소로 이관해버려 관련 자료에 대한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사업 지연 등을 이유로 작가팀과 협약조차 맺지 못해 예산을 처리하지 못한 지자체도 있었다.
‘키스 해링’ 표절 논란이 불거진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에 그려진 벽화. 사진=임준선 기자
과정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미술계 일자리 창출’이라는 해당 사업의 목표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사업에 참여한 예술인들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일회성’ 혹은 ‘단기 일자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 직업 예술인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1년에 한 번, 그것도 비정기적으로 돌아온다면 단기 아르바이트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마련해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며 “만약 코로나19 재난 지원금 명목으로 주는 것이면 더욱 화가 난다. 소상공인들은 무상으로 주면서 예술가들에게만 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공공미술의 확충과 경제적 지원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사업이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권순진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2020년 6월 발간된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자료집’에서 문체부 공공미술 프로젝트 운영 사업을 ‘과다 계상’이라고 분석하며 “문체부가 실제 사업을 수행하는 기초지자체의 인구나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기초지자체별 1개 프로젝트를 기준으로 4억 원의 예산을 일률적으로 배정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기존 5개 정도의 사업규모를 228개 정도로 대폭 확대할 경우 적합한 사업대상지 선정부터 교육, 컨설팅, 사업 모니터링, 사후관리 등 전반적인 사업관리가 기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부실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한편 김상철 문화정책연구소 이사는 “아쉬운 점이 많은 사업이다. 공공미술이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공공성’과 ‘예술성’ 양쪽을 모두 놓쳤고, 그렇다고 경제 정책으로서 일자리 창출 효과를 냈다고 보기도 어렵다. 사업 지원에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증명했어야 했던 것도 아니니 긴급재난지원금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사업”이라며 “급하게 지원 정책을 만들다보니, 전국적으로 지원금을 배분하기에 가장 보편적이고 용이한 방식인 공공미술 사업을 택한 것 같은데 결국 외형적인 측면에서도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형식적인 사업이 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더욱 안타까운 점은 작품의 유지·보수의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이라며 “협약서를 살펴보면 사업 종료 후 작품의 유지 및 사후관리에 대한 지자체의 의무가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다. 더 큰 문제는 현재보다 전시 계약이 끝나는 3년 뒤에 발생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