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가장 강력한 야권의 대선 후보로 떠오른 상황에서 어차피 대선주자는 비영남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은 만큼, 베이스캠프 강화 측면에서 당권도 텃밭이자 주류인 영남이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당 내부에 강하게 형성돼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당선된 김기현 의원(왼쪽에서 두 번째)이 4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경선 후보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흠, 김기현, 유의동, 권성동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주호영 대세론 굳건?
당심은 영남 출신 김기현 의원을 새 원내 사령탑으로 선택했다. 당초 2강으로 분류되던 강원도 출신 권성동 의원은 결선에도 오르지 못한 채 1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영남 이외의 지역 출신이 리더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권 의원 구호는 통하지 않았다.
‘영남당 탈피’라는 논리 속에 유일한 영남 후보 김기현 의원은 많은 공격을 받았지만 부산·울산·경남 의원들이 똘똘 뭉쳐 지원해준 덕분에 1차 투표를 통과했다. 김 의원은 결선 투표에서도 충청 출신 김태흠 의원과 겨룬 끝에 66표(100명 투표)를 획득, 의원들 대다수의 마음을 잡아챘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경선이 있었던 4월 30일 이렇게 말했다.
“지역에 얽매이지 말고 적임자를 뽑자는 기류가 강했다. 영남에서부터 확실히 다져서 더 큰 지지를 얻어오자는 영남 베이스캠프론도 먹혔다. 어차피 당의 주류가 영남인데 그것을 애써 감추려하기보다 솔직히 인정하고, 제대로 된 지도자의 인솔을 받아 더 큰 바다로 나가자는 당심이 나타났다.”
원내대표 경선이 있었던 날의 의총 분위기를 전달해준 여러 의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원내대표를 영남으로 뽑았으니 당대표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한다”는 논리는 당내에서 강한 지지세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을 잘 이끌 사람이라면 지역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기현 원내대표는 경선 레이스 내내 비영남 출신 주자 3명의 집중 견제를 받았지만 핵심 지지 기반인 영남을 기반으로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어정쩡한 자세가 아닌 “영남이라서 어떻단 말인가”라며 ‘영남당’ 논란을 정면 돌파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본다면 아직 주 전 원내대표가 출마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당 내부의 ‘주호영 대세론’은 갈수록 세를 얻는 분위기다. 영남당 논란 정면 돌파라는 당내 기류가 강한 것이 분명하게 확인된 데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보다 지명도에서도 확실히 앞선다는 이유다.
당대표 경선에는 3선의 조해진 의원(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이 후보군 중 가장 먼저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3선 윤영석 의원(경남 양산갑)과 5선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을)도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상태다. 4선에선 권영세 의원(서울 용산)이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이고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예산)도 5월 3일 출마 선언을 한다. 초선 의원 중에서는 김웅 의원(서울 송파갑)이 당권 도전에 나서면서 이미 전국을 순회하고 있다.
울산에서 원내대표가 나왔기에 부산·울산·경남권 당권 주자들의 설 자리는 일단 좁아진 것으로 보인다. 서울이나 충청권 의원들은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소수파여서 당원 투표가 70%를 차지하는 당대표 선출 구조상 당권을 거머쥐기에는 역부족이다. 주 전 원내대표가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국민의힘 당원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대구·경북(TK) 출신이기 때문. 총선 패배로 빈사 상태에 빠졌던 당을 일으켜 세우는데 큰 몫을 했다는 명분도 있다.
주 전 원내대표는 4월 30일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미래한국당과 통합해 한 식구가 되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켜서 4·7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하고 당 지지율이 10%로 올라간 것으로 위안 삼는다. 그 정도면 면피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의 큰 공적을 요약해 자랑한 것이다.
4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투표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강한 목소리를 내는 편이 아니어서 당 내부에 적이 별로 없다는 것도 주호영 대세론을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3선 이상 의원들이 가장 많은 불만을 품었던 상임위원장 포기와 관련해서도 주 전 원내대표는 4월 30일 의총에서 “(21대 국회) 개원 협상과정에서 부의장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우리가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궁합’도 주 전 원내대표가 내세우는 무기다. 윤 전 총장은 TK 출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TK에서 받았던 압도적 지지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싶어 하기에 TK 출신 당대표가 정치공학적으로 본다면 필요하다. 윤 전 총장 입장에서는 대구를 지역구로 둔 주 전 원내대표가 괜찮은 카드인 셈이다.
#나경원이 나온다면?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에 따르면 나경원 전 의원이 적극적으로 여론을 타진하고 있다. 국민의힘 당권 경쟁에 나설 뜻이 확실하게 감지되고 있다. 당 내부에서도 나 전 의원 출마 여부에 대해 “확실히 나갈 것”이라는 쪽에 손을 드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인지도가 높은 나 전 의원이 나설 경우, 경선 흥행 측면에서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나경원 전 의원은 4월 26일 페이스북에 “역사는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르게 다시 세운다는 것은 늘 힘겹고 지난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꼭 해놓고 가야 할 일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사실상 출마 선언이 아니냐는 해석이 꼬리를 물었다.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나 전 의원은 인지도 측면에서는 주 전 원내대표를 앞선다는 평가다. 나 전 의원 측은 당원들의 표심이 좌지우지하는 당대표 선거 특성상 당 내부 인기가 좋은 자신이 불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나 전 의원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경선 때도 당원투표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앞섰다.
나 전 의원이 출마를 결심한다면 주 전 원내대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면서 “도로 영남당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 결과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전망이다. 원내대표도 영남, 당대표까지 영남이 된다면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외면하면서 인구가 가장 많은 수도권에서 표를 얻지 못하고, 결국 내년 대선에서 또다시 패배한다는 논리다.
나 전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개인적 인연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제3지대로 갈 가능성도 있는 윤 전 총장을 국민의힘 안으로 끌어들여 대권 주자로 안착시키는 데 자신이 적임자라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발신한다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은 최근 저서에서 서울대 법대 선배인 윤 전 총장에 대해 “나와 같은 시기 대학을 다녔고 비슷한 시기 고시 공부를 했다”며 친근감을 드러낸 바 있다.
나 전 의원이 출마를 결행한다 해도 험로가 더 많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2019년 패스트트랙 사태 때의 초강경 이미지가 너무나 강해 당의 외연 확장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3월 3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총신대입구역 앞에서 열린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그는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자신이 원내대표를 했을 당시 짝을 이뤘던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와 확실히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4월 29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황 전 대표의 정계 복귀에 대해 “본인이 판단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실 수 있다”면서도 “지금은 천천히 계시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황교안 대표와 짝을 이뤘던 전력 때문에 당대표직에 도전한다 해도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라며 “나 전 의원은 ‘수도권 당대표’ 논리도 분명히 내세울 것인데 황교안 대표 체제 때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수도권 출신이었는데 결국 총선에 참패했다. 이것은 또 어찌 설명해야 하나.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웅, 투지 높이 사지만…”
초선의 김웅 의원이 당대표 출사표를 내놓은 상황인데 이번 원내대표 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전망이 매우 어둡다. 4월 30일 원내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선 101명의 의원 전원이 투표해 김기현 의원이 34표, 김태흠 의원이 30표를 받았다. 권성동 의원은 20표, 유의동 의원은 17표였다.
‘1970년대생’ ‘혁신’을 앞세운 유의동 의원이 1차 경선에서 꼴찌를 한 것을 보면 전체 의원의 절반을 넘는 초선 56명의 표는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뿔뿔이 흩어진 모양새다. 초선 의원들은 4월 26일 후보 토론회를 주최하며 당내 혁신과 변화를 촉구했다. 계파색이나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초선’이란 푯대 아래 뭉쳤지만 표심 표현은 달랐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초선이라고 해서 초선에게 표를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김웅 의원의 투지는 높이 사야 하지만 당대표는 대선 관리도 해야 하고, 거대 여당과도 맞서야 한다. 정치적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 자리라서 다선이 아니면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했다.
당원 투표가 70%를 차지하는 당대표 선출 구조도 당내 기반이 약한 초선의 도전을 어렵게 만든다. 더욱이 윤석열이라는 유력 대선 주자를 영입하는 당대표 역할도 초선에게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이 보수 정당이라는 점에서 기존 경로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의견도 많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판사와 울산광역시장을 지낸 ‘김기현’이라는 안정적 리더십을 선택한 것만 봐도 초선 돌풍에 몸을 싣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과 궤를 같이 한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렇게 전망했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이 안정 속에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중지가 모인 것으로 봐야 한다. 국민들이 보수정당에 바라는 것이 바로 유능한 경제 운용, 그리고 안정적 안보 아닌가. 가보지 않은 길을 무책임하게 찾아가는 지금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과 연결된 것이다. 당대표 선거도 이 부분에 집중될 것이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