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
아름다운 삽교천이 흐르는 봄날의 홍성에는 3대째 이어오는 대장간과 한국 미술사의 자랑인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가터, 풍경처럼 살아가는 장곡면 오지마을노부부의 인생 등 오래 돼서 아름답고 변치 않아 향기로운 동네로 떠나본다.
천년의 시간 동안 홍성을 지켜온 홍주읍성, 읍성을 둘러싼 성곽의 본래 길이는 1772m였지만 일본에 의해 800m가량만 남아있는 상태다. 홍주읍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남문인 홍화문을 바라보는 배우 김영철의 마음이 경건해진다.
지나온 세월과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홍주읍성의 성곽길을 걸으며 홍성에서의 동네 한 바퀴를 시작한다.
예전부터 옹기마을로 불린 갈산면은 뱃길로 통하는 교통망과 땔감으로 쓸 목재가 풍부했으며 점토가 좋아 옹기를 만드는데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러나 옹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많은 옹기장이들이 마을을 떠났지만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5대째 옹골차게 옹기의 전통을 이어 온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방춘웅 옹기장과 전수자인 그의 아들이다.
생활고와 두 번의 화재로 겪은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고집스런 장인정신으로 옹기의 맥을 이어가는 방춘옹 옹기장의 가마는 오늘도 뜨겁게 타오른다.
70년의 역사를 가진 홍성전통시장에는 풀빵 기계로 호떡을 굽는 노부부가 있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귀한 호떡은 기름에 튀기지 않고 쇠틀에 구워내서 겉은 바삭하고 안에는 부드러우면서 촉촉한 식감이 일품이라고 한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호떡을 굽는 정겨운 모습은 먹지 않아도 배를 부르게 하고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대장간의 뜨거운 열기는 농민들의 농기구를 마련해주고 싶다는 대장장이의 열정 덕분에 식지 않는다.
190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파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온 삶을 그림으로 채운 예술가 고암 이응노 화백. 유럽 예술 무대에서 동양 정신으로 높이 인정받았고 한국에 돌아올 수 없었고 그의 활동은 한국에서 언급할 수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자신이 한국 사람 홍성 사람임을 잊지 않은 그의 예술세계를 접한다.
대기업에서 일본 급식문화와 기술을 습득하는 업무를 도맡았다는 정재춘 씨는 일제 강점기 때 사라진 우리 식초의 명맥을 살리기 위해 귀농을 결심하고, 팔순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걱정되어 귀농을 결심한다. 식초가 만들어지는 3년 동안 쉬지 않고 저으며 매일 정성을 쏟는 아들과 자식이 꽃길만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길가에 꽃을 심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기만 해도 흐뭇해진다.
홍동면 가시덤불이 많은 산길에서 이름도, 생김새도 생소한 무릇을 깨는 김향순 씨. 봄날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무릇을 캤던 기억으로 64세인 지금까지도 무릇을 캐러 다닌다. 그러나 무릇은 캐는 법도, 손질하는 법도, 가마솥에 끓이는 것도 인내심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녀는 가시덤불을 헤치며 갈 수밖에 없다는데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천 개의 시간이 모여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동네 그 세월을 한결같이 살아내는 충청남도 홍성의 이야기는 함께 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