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이노엔의 모태는 1984년 신설된 CJ제일제당 제약 사업부로 2014년 CJ헬스케어로 물적분할됐다. 이후 2018년 4월, 한국콜마 계열사 씨케이엠이 CJ헬스케어를 1조 3100억 원에 인수한 후 사명을 HK이노엔으로 변경했다. 현재 HK이노엔의 사업은 크게 전문의약품과 HB&B(Health Beverage & Beauty)로 나뉜다. 매출의 80% 이상이 전문의약품 사업부에서 발생하지만 헛개수, 컨디션 등 유명 건강음료를 생산하는 HB&B 사업부도 그 저력을 인정받고 있다.
HK이노엔이 최근 호실적을 기록하면서 한국콜마그룹의 캐시카우로 떠오르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한국콜마 건물. 사진=일요신문DB
2018년 초 HK이노엔의 매각을 앞두고 증권가에서는 매각가를 1조 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한국콜마가 그보다 3000억 원 이상 높은 가격을 투입하자 자연스럽게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시 한 증권사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콜마의 레벨을 올려주는 요인임에 분명하지만 현재 재무상황을 감안하면 상당한 재무적 부담 요인 또한 존재한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현재 HK이노엔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HK이노엔의 매출은 2018년 3351억 원에서 2019년 5399억 원, 2020년에는 5984억 원으로 늘었다. 영업이익도 2018년부터 매년 상승세에 있다. 실적 상승 배경으로는 HK이노엔이 자체 개발해 2019년 출시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이 꼽힌다.
반면 한국콜마의 매출은 2019년 1조 3789억 원에서 2020년 1조 3221억 원으로 줄었다.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화장품 사업부의 매출이 1000억 원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콜마에 대해 “화장품 사업은 여전히 부진했으나 HK이노엔 매출은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며 “2020년 케이캡 매출이 전년 대비 3배 증가한 700억 원에 달하면서 (한국콜마의) 실적 개선을 견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HK이노엔은 기세를 몰아 각종 연구개발(R&D)에 힘을 쏟고 있다. HK이노엔은 지난 1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 참가해 세포유전자치료제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어 2월에는 바이오 업체 보로노이와 글로벌 항암신약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지난 4월 30일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IN-B009’의 임상 1상 시험계획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HK이노엔은 IN-B009의 임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은 후 임상 1상 시험에 착수할 예정이다(관련기사 HK이노엔,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임상 1상 신청).
한국콜마는 HK이노엔의 IPO를 준비 중이다. 서울 중구 HK이노엔 본사. 사진=HK이노엔 제공
한국콜마 내부에서는 HK이노엔의 IPO를 추진 중이다. 윤상현 한국콜마홀딩스 부회장이 2020년 10월 HK이노엔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것도 상장 요건인 ‘계열사 간 대표이사 겸직 금지’ 조항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상현 부회장은 윤동한 한국콜마 창업주의 장남으로 HK이노엔 인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콜마는 HK이노엔을 인수한 후 한동안 윤상현·강석희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했다.
최근 실적 상승과 각종 R&D에 힘입어 HK이노엔의 IPO에 대한 전망도 긍정적인 편이다. 지난해 IPO 대어로 꼽힌 SK바이오사이언스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콜마가 지난 4월 HK이노엔에 5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해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콜마는 유상증자 이유에 대해 “채무상환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이라고 공시했다.
HK이노엔과 씨케이엠이 2020년 4월 합병함에 따라 씨케이엠의 부채(2019년 말 기준 5287억 원)가 HK이노엔으로 이전됐다. 그러나 2020년 말 기준 HK이노엔의 부채비율은 117.25%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2021년 안에 갚아야 할 차입금은 1766억 원이지만 HK이노엔의 유동자산이 2000억 원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사에 큰 부담이 되는 액수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한국콜마의 부채비율은 149.15%로 HK이노엔보다 더 높다.
눈에 띄는 점은 지분율 변화다. 이번 유상증자는 제3자배정증자 방식으로 진행돼 전액 한국콜마의 자본으로 이뤄졌다. 증자 후 한국콜마의 HK이노엔 지분율은 50.71%에서 52.70%로 늘었다. 이번 증자의 신주 발행가액은 주당 5만 3500원으로 향후 이보다 높은 금액으로 주가가 형성되면 한국콜마도 그만큼 차익을 거둘 수 있다. 한국콜마가 유상증자를 단행한 실제 이유도 HK이노엔의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반대로 HK이노엔의 주가가 기대에 못 미치면 한국콜마가 보유한 지분 가치도 하락하게 된다.
한국콜마홀딩스 관계자는 유상증자에 대해 “HK이노엔 채무구조 개선 목적과 함께 IPO의 성공을 위해 모기업인 한국콜마가 투자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HK이노엔의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각종 R&D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성과를 보인 것은 없다. 세포유전자치료제의 경우 시장성은 크지만 높은 비용으로 인해 판매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세포유전자치료제는 맞춤약물(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개발·투여되는 약물)이기에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생산에 있어서도 최근 세포유전자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바이럴 벡터(DNA 운반체)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IN-B009도 이제 임상 1상을 신청했을 뿐이다. HK이노엔 측은 영장류 비임상시험에서 유효한 중화항체 형성률과 안전성이 확인됐고, IN-B009 투여 후 면역세포 활성이 유도된 백신 시험군에서 코로나19의 증식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효능을 보였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와 관련, 한국콜마홀딩스 관계자는 “연내 HK이노엔의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자세한 일정을 말하기는 어렵다”며 “HK이노엔은 백신 사업으로 시작한 회사이기에 관련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코로나19 백신 수급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백신 자국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